류진-김주혁-이광수(왼쪽부터). 사진제공|MBC·KBS·SBS
‘예능격전지’라 불리는 지상파 3사의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공통된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허당’ 캐릭터. 잠시라도 내용이 늘어지거나 지루해지면 곧 바로 채널이 돌아가는 무시무시한 예능전쟁터 속에서 ‘허당’ 캐릭터야 말로 시청자들을 붙잡아놓을 수 있는 대표 예능 캐릭터가 된 셈이다.
‘허당’은 2009년 KBS 2TV ‘1박2일’에서 이승기가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당시 ‘1박2일’은 물론 이승기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승기가 ‘1박2일’을 떠난 후 김주혁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고, MBC ‘아빠! 어디가?’의 류진, SBS ‘런닝맨’의 이광수 등 이들 모두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 대 없이 완벽해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허당’ 기질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해 프로그램 시청률 상승에 견인차 역할은 물론 본인들의 인기도 함께 얻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 류진 “이래봬도 ‘멋있는 실장님’ 역할만 하던 사람인데…”
류진은 ‘아빠! 어디가?’ 방송 초반, 드라마에서 ‘출연 제의가 안 들어오는 것 아니냐’며 되레 걱정하더니 이제는 ‘류진이 맞나’ 할 정도로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예능 속 류진은 186cm의 큰 키에 도회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허당기’ 많은 순진무구한 매력만 있다.
큰 키답게 붙여진 별명은 기린이지만, 큰 다리와 큰 팔을 허우적대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순진한 모습에 성동일, 김성주, 윤민수, 정웅인 등 다른 아빠들에게 몰래카메라에 매번 당하기 일쑤다.
무인도로 떠나는 여행에 옷걸이를 싸가는 모습이나, 돋보기로 불을 만든다며 옥상에 불을 낼 뻔 했던 모습 등 상상을 초월한다. 드라마에서 반듯한 실장님 역할만 하던 류진의 모습만 보다가 허술한 허점투성이인 모습에 시청자들이 눈길을 빼앗긴다.
‘아빠! 어디가’는 시즌2를 시작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최근 류진의 코믹한 모습에 다시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 김주혁 “빈틈이 많아 더 끌린다”
‘동생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그저 허허실실. 그들과 한발자국 떨어져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되’를 읊는 도인인 냥, 물과 기름처럼 예능과 동화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어느덧 누구보다 더 진지하게 예능에 물들어 있는 ‘예능초보’ 김주혁이다.
때로는 본업인 연기자를 떠올려 멋있는 척을 하려다가도 금세 ‘허당’ 본색을 드러내고, 무엇을 하던 진지하게 하지만 놀림거리가 된다. 그래서 붙어진 별명도 ‘허당 큰형님’ ‘순수 허당’이다. “그가 예능을 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라고 말을 할 정도로 그의 몸 개그와 허당 기질을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침체기를 맞던 ‘1박2일’이 시즌3을 시작하고 과거 전성기까지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김주혁의 허당기가 통한 덕분이다. 시청자들은 김주혁의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빈틈도 많고 운도 따라주지 않은 예능 적응기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이광수 ‘만만한 허당’
약육강식의 세계인 ‘런닝맨’에서 초식동물 ‘기린’이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기린’ 이광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허당기’였다. 허술하고 빈틈투성이의 매력 말이다. 뭔가 대단한 계략을 세워도 어딘가 모르가 부족하고, 어수룩하다.
긴 다리와 긴 팔이 마치 ‘바람풍선’ 같다는 핀잔을 들어도, 또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반복해 ‘욕먹기’도 일쑤지만, 그래도 이광수는 ‘런닝맨’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눈치 없고, 허당인 캐릭터로 출연하는 모든 캐릭터를 받쳐주는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덕현 대중평론가는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스타들의 황당한 실수와 행동은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그런 스타들에게서 순수하고 친근한 모습도 발견하고,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면서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