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비디오판독 ‘시간제한 딜레마’

입력 2014-08-08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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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비디오판독’으로 불리는 ‘심판합의판정제도’가 시행초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은 판독요청 시간제한 여부다. 삼성 류중일 감독(오른쪽)이 6일 청주 한화전 연장 11회말 심판합의판정으로 애초 판정이 번복되자 최수원 주심에게 어필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심판합의판정 도입 3주째… 무엇이 문제인가?

정확한 판정취지 불구 30초·10초 룰 싸고 잡음
리플레이 확인 위해 시간제한 없애자는 주장도
“상대 투수 어깨 식고 분위기 반전용 카드 오용”
부작용 들어 오히려 시간 당기자는 반론도 팽팽


‘한국형 비디오판독’으로 불리는 ‘심판합의판정제도’가 시행 3주째를 맞고 있다. 6일까지 치러진 후반기 48경기에서 심판합의판정은 총 20차례 나왔다. 그 중 9차례는 최초의 심판 판정이 번복(번복률은 45%)됐다. 판정번복 성공률은 차치하더라도, 합의판정 시행으로 오심 논란이 많이 사라진 데 대해서는 야구계나 팬들도 모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행 초기이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은 판독요청 시간제한 여부다. 현재 규정은 심판의 최초 판정이 내려진 후 각 팀 감독은 30초 내에 합의판정을 요청해야한다. 이닝 종료시와 경기 종료시에는 10초 이내에 요청하도록 돼 있다.


● 시간제한 없애자

현장에서는 30초룰과 10초룰에 대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중계화면을 확인하고 요청하다 보면 30초가 훌쩍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차피 오심을 없애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각 팀이 리플레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확보해야한다는 뜻이다. 메이저리그처럼 시간제한을 푸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실제 시간제한으로 인해 몇 차례 갈등도 발생했다. 6일 청주구장 한화-삼성전. 연장 11회말 1사 1루서 이창열의 투수 앞 번트가 병살로 연결되면서 이닝이 끝났지만, 한화 측의 합의판정 요청 후 최초 판정이 번복되자 삼성 류중일 감독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한화 측에서 최초 판정 후 10초를 넘겨 심판합의판정을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판진은 삼성 측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곧바로 다음 타자 정근우가 끝내기 2점홈런을 터뜨리면서 합의판정 하나가 승부의 향방을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반대로 류중일 감독은 지난달 24일 사직 롯데전에서 처음으로 심판합의판정을 요청하러 나갔지만 30초가 훌쩍 지나면서 합의판정 요청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은 적이 있다. TV 리플레이 화면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시간제한은 있어야

반론도 만만찮다. 현행 30초와 10초룰은 지켜져야한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30초룰을 없애고 더 빨리 합의판정을 요청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LG 양상문 감독은 비디오 화면 확인 없이 선수와 코치, 자신의 확신만 있다면 즉시 합의판정을 요청하겠다는 소신을 지켜나가고 있다. 성공률이 떨어지더라도 그래야 경기가 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판합의판정 제도를 도입한 것이 명백한 오심과 승부에 결정적인 오심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지, 초고속 느린 화면으로도 분간이 어려운 판정이나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의 판정까지 기계의 힘을 빌리자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합의판정 요청에 대해 시간제한을 두지 않으면 부작용도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상대투수의 어깨를 식히거나 경기흐름을 끊기 위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악용할 수 도 있다. 심판에게 계속 항의를 하다 뒤늦게 합의판정을 요청하면, 심판들은 또 중계 리플레이 화면을 확인하기 대기심판실로 들어가야 한다. 경기는 늘어지고, 수비 측의 진이 빠질 수 있다.

또한 이닝 종료 후 선수들이 모두 덕아웃으로 들어가 공수교대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뒤늦게 합의판정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중계방송사가 화면을 광고로 넘겨버리면 시간은 하염없이 지체된다. 6일 청주경기에서도 중계방송사인 XTM측이 연장 12회로 넘어가는 줄 알고 광고화면을 틀어주는 바람에 화면 판독을 하는데 시간이 더 지체 됐다. 그 전까지 호투하던 삼성 투수 권혁은 다시 마운드에 올랐지만 어깨가 덜 풀렸는지 정근우에게 연속 볼 2개를 내주다 3구째에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들어가다 끝내기 홈런을 맞고 말았다. 물론 한화 측에서 권혁을 흔들기 위해 합의판정을 요청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제한을 두지 않으면 얼마든지 상대가 그와 비슷한 일을 꾸밀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 한국형 비디오판독, 어디로 가야하나?

메이저리그는 비디오판독 제도인 ‘챌린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300억 원 이상을 투입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두고 준비한 메이저리그도 시행착오를 겪고있는 상황이다.

후반기 시행한 한국프로야구의 심판판정합의제도를 시즌 도중에 수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시행착오와 각계 의견을 수렴해 내년 시즌부터는 보완된 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LG 양상문 감독의 주장처럼 리플레이 확인하지 않고 바로 합의판정을 요청하는 것도 분명 장점이 있다. 이렇게만 해도 오심 논란은 많이 잠재울 수 있다. 그러나 각 팀이 리플레이 모두 본 다음 합의판정을 요청하도록 하려면 시간을 좀 더 여유 있게 줄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 사례를 참고하되, 정확한 ‘한국형 비디오판독’ 모델 만들 필요가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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