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가 말하는 나의 AG] 임춘애 “육상해서 뭣 하냐는 인식이 안타깝죠”

입력 2014-09-23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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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기적을 만들어낸 임춘애(왼쪽)의 기록은 아직 그대로다. 이제는 후배들의 몫. 대한육상경기연맹 여성위원으로서 자신을 넘어 더욱 높이 도약할 후배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2. 임춘애

“요즘 잘 뛰는 아이들은 축구나 다른 종목 택해”
‘라면 소녀’ 신화는 옛말…한국육상 지원 절실

한국스포츠에서 ‘헝그리 정신’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였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악바리 같은 정신력으로 목표를 성취하는 태극전사와 태극낭자는 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웠다. 왕년의 여자육상스타인 임춘애(45) 대한육상경기연맹 여성위원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1986서울아시안게임 중장거리 종목에서 3관왕에 올랐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800m와 더불어 주 종목 1500m와 3000m를 석권했다.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지금까지도 임 위원을 능가하는 이는 나오지 않고 있다.


● 운 좋았던 아시안게임 출격

임춘애 위원은 19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여자골퍼 박세리, 발레리나 강수진 등과 함께 태극기 기수단으로 등장했다. 트랙에 서자 그녀는 가슴 속 먹먹함을 느꼈다. “영광스러웠어요. 절 기억하고 불러주시니 감사했죠. 이젠 잊혀질 나이인데, 시간도 한참 흘렀는데…. 계속 찾아주시니 행복하더라고요.”

임 위원은 육상뿐 아니라 한국스포츠의 상징이다. 그녀는 28년 전 아시안게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뻔했다. 고교 2학년(성보여상)이던 그해 5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아니, 이런저런 이유로 아예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반전됐다. 마음을 고쳐먹은 뒤 그해 6월 전국체전 등 각종 대회에서 한국기록을 세우며 맹위를 떨치자 대한육상경기연맹은 그녀를 태릉선수촌으로 불러들였다. 규정에 없는 선발이었다. 그야말로 ‘문 닫고’ 들어간 셈. 그렇게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위업을 이뤘다. 당시 느낌은 어땠을까.

“전혀 떨리지 않았어요. 기대를 아예 안 했으니까요. 기록도 중국선수들과 차이가 컸어요. 10초 이상? 800m 출전도 연습 중 한국기록이 나왔기 때문이에요. 정말 깜짝 태극마크였죠. 작전도 없었어요. 마지막까지 열심히 뛰고, 힘이 남으면 따라붙는 것? 운도 좋았어요. 800m 금메달도 1위가 파울로 실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죠.”


● 숱한 오해를 넘어

아시안게임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참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라면만 먹고 뛰었다”였다. 임춘애 위원의 이름을 떠올리면, 항상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라면’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말 ‘라면 먹고 싶어’ 육상을 하지 않았다고.

“초등학교 3학년 때 교장 선생님께서 운동에 나오는 친구들에게 라면을 나눠주셨다는 이야기가 와전됐어요. 그래도 ‘라면 소녀’란 표현이 싫지 않아요. 제가 잘 알려진 계기였으니까요.”

성별검사도 2번이나 받았다. 당시 대표선수라면 누구나 받아야 했지만, 짧은 머리카락의 깡마른 소녀는 서울아시안게임 직후 2회에 걸쳐 극비리에 성별 테스트를 받았다. “가슴도 밋밋했고, 고교 3학년 때 첫 생리를 했으니 오해받을 만도 했죠. 그런데 솔직히 기록이 엄청 좋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다 추억이에요. 아, 결혼하고 세 자녀를 낳았으니 훨씬 떳떳해요.(웃음)” 임 위원은 프로축구선수 출신인 남편 이상용 씨와의 슬하에 대학생 딸 지수 양, 중학교 1학년 쌍둥이 아들 현우·지우 군을 둔 엄마다.


● 한국육상을 위한 작은 힘 되고파

임춘애 위원의 어릴 적 꿈은 간호사였다. 어쩌다보니 ‘육상인’이 됐다. 그런데 그게 부담스러워 결혼도 빨리 했다. 대학(이화여대)을 졸업하자마자 가정을 꾸렸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여성이 지도자의 길을 쉽게 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도 ‘육상인생’에 결코 후회는 없다.

“일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 제 자식은 제 손으로 키우려 했으니, 주부로 지낸 시간은 후회하지 않아요. 빠른 은퇴도 많이 아쉽지 않고요. 다만 일본 유학을 생각하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대시해 결혼을 빨리 하게 된 건 아쉽지만.(웃음) 육상 트랙에서 완전히 떠나있었던 건 아니에요. 꾸준히 강사로 많은 활동을 했어요.”

그녀가 진짜 아쉬운 건 따로 있다. 발전이 더딘 한국육상의 현실이다. 허술한 인프라도 안타깝지만, 초등학교와 같은 풀뿌리 체육에서 기초종목인 육상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육상부가 없는 학교를 찾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일단 자녀수가 적고 ‘육상해서 뭣 하냐’란 인식도 많은 것 같아요. 잘 뛰는 꿈나무들은 축구나 다른 종목을 택하고요. 국가 차원에서 키워야 해요. 우리 육상계도 서서히 클럽시스템을 준비 중인데, 많은 지원과 관심을 주셨으면 해요.”

인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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