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용관 집행위원장 “화장실서 울며 만든 BIFF, 벌써 19살”

입력 2014-09-29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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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이 울었죠. 영화제 오라고 전화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여성 스태프들도 정말 많았죠. 그런 영화제가 벌써 19살이라니, 참 저도 겁대가리(?) 없이 돌진했군요. 하하.”

부산국제영화제 두 번째 집행위원장,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과거를 회상했다. 1회부터 함께 한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써 19살을 맞다니 마치 자녀 한 명을 양육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속도 많이 썩히고 대견한 순간도 있었다. 언제 다 키울까 걱정도 많이 했지만 그 세월은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1회부터 19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았던 어느 덧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를 바라 본 그는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맨 땅에 헤딩하는 거죠. 프로그래머였지만 배차 담당이기도 했어요. 의전차량도 없고, 자동차 렌트 서비스도 지금처럼 좋지도 않으니까 무작정 감독과 배우들한테 전화해서 ‘김해공항에 도착하면 그냥 택시 타고 와. 안 오면 죽는다’고 협박 아닌 협박도 했죠. 안 생길 오해도 많이 생겨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첫 회를 준비하며 스태프들과 내기도 했다고. 당시 프로그래머였던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최고 3만 명이 온다고 추측했고 각자 5만 명, 7만 명이 온다고 내기를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손님은 18만 명이 넘어섰다. ‘기적’과도 같은 수였지만 이들에겐 재앙 아닌 재앙이기도 했다. 대략 2~3만 명의 올 거라 예상했기에 18만 명을 감당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첫 번째 아닌가. 이래저래 실수도 많았지만 첫 회는 무사히 넘어갔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당시에는 기절초풍할 상황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무작정 참 잘 했구나. 뭘 모르고 했던 게 다행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프로그래머부터 집행위원장까지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생을 함께 해 온 그는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다. 대대적인 포럼도 열고 싶었고 아시안 필름 마켓 등 영화인들과 소통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우선 영화제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했다. 프로그래머 등 스태프들이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했고, 영화제의 몸짓을 서서히 키우는 것도 일이었다. 단 한 번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10년 이상이 걸리는 일이었다.

“20만 명의 관객을 감당하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예산도 부족하고요. 그런데 외부에서는 이미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가 돼버렸고 관객들의 기대치도 높아져버렸어요. 그래서 그동안 이래저래 고생도 많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위기 대처 능력도 생겼고 성장을 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사춘기를 막 벗어났으니 20회가 넘으면 엄청난 성장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인터뷰 중,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영화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을까. 어렸을 적, 자신의 글을 모아 보이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국문과를 가려 했으나 실패했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결혼을 했고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해보라”고 했고 영화학과에 지원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졸업 작품을 만든 그는 ‘영화 연출은 내 직업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던 중 한 교수님이 영화 비평에 관한 책을 번역해보라 시켰다. 거기서부터 그와 영화의 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글로 영화를 보고 비평을 하는 게 재밌더라. 책으로 영화를 접하고 평하다 보니 이게 내 천직이라 생각했다”고 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이 일 말고도 동서대학교 학장으로 있다. 자칭 ‘밥벌이 직장’이다. 학생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며 소주 한 잔씩을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기도 하다. 그는 “김동호 위원장님께서 내게 단독위원장을 제안하셨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우연히 동서대학교에 오게 됐다. 사람들이 욕심도 많다고 하는데 나도 돈 벌어야지, 아내한테 눈치 안 보이지”하며 호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가꿔낸 부산국제영화제가 마지막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이제 열흘도 남지 않은 영화제를 준비하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이래저래 바쁜 눈치다. 막바지 준비를 하며 부족한 것은 없는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불편한 점은 없을지 점검을 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해는 부산을 찾는 일반 관객들에게 영화관이나 개폐막식 좌석을 더욱 확보해놓고 있는지라 안전 등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 최근엔 예매사이트가 먹통이 되거나, ‘다이빙벨’ 상영 금지 요청에 머릿골치가 아픈 일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기분 좋은 마음으로 열아홉 번째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주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과 안정’이다. 올해 초 세월호 참사 등이 있었던 만큼 안전에 더 유의할 것이다. 또한 스무 살이 가까워진 만큼 이젠 화제성보단 안정단계에 돌입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젠 스태프들이 전문적으로 할 일을 잘 하는 단계까지 왔고 시스템도 20년 간 잘 갖춰져 왔기 때문에 이제는 발전을 위한 도약을 할 차례”라고 말했다. 그래서 올해는 특별히 영화인들을 위한 영화제를 꾸미기로 결정했다.

“많은 스타들이 오는 것이 좋지만 상대적으로 꼭 오셔야 하는 분들이 기피하시게 되더라고요. 시간은 부족한데 뭔가 휩쓸리듯 지나가니까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이제는 문화를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청작 중심의 영화인들을 모시려고 노력했습니다. 아 그런데, 요즘 한국영화나 배우들이 잘 나가서 다들 해외에서 촬영을 하고 있더라고요. 비자 등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썰렁하진 않을 것 같아요. (웃음) 점차 문화를 바꾸기 시작하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2~3년 정도는 해 봐야죠.”

레드카펫 이후 진행되던 스타들의 가두 행사인 에이판(APAN) 및 로드 스타쇼 등 영화 외에 특정한 것에 관심을 쏟던 과거 행사 대신 아시안 필름 마켓에 힘을 기울인다. 올해는 국내외 기존 세일즈사의 지속적인 참여와 중국의 해외 배급사와 아시아의 대표 매니지먼트 사들의 신규 참여에 힘입어 참여회사가 대폭 늘었다. 특히 국내 공동제작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프리세일 및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캐스팅을 아시안 필름 마켓을 통해 직접 정보를 얻고 결정할 수 있도록 아시아 대표 매니지먼트 업계와 전 세계 감독 및 프로듀서를 직접 연결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려면 마켓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오래된 숙제였기도 했고요. 화려한 개막식도 중요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안정되고 강화가 되려면 영화인들을 마켓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아시아 각국의 영화인들이 연결되고 소통한다면 순환구조가 제대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으면 아쉬움이 남았다. 별들이 수놓는 화려한 레드카펫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다. 각종 포털사이트에서도 어떤 배우가 왔는지, 무슨 드레스를 입었는지 등 소소한 것부터 관심이 많아진다. 반면 폐막일이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주목을 받지 못한다. 취재진들 역시 폐막에 대한 중요도를 다소 높게 생각하지 않아 늘 중반에 취재를 멈춘 곤 했다. 이에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우리 스태프들 역시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라며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아쉬운 사실이죠. 우리는 비경쟁영화제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쟁 부문을 강화시키려고도 노력하고 있고요. 올해부터는 컨퍼런스를 강화하려 합니다. 영화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학문적이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렇게 한다면, 부산국제영화제만의 특유의 색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사실 대대적인 포럼은 1회부터 꿈꿔왔던 것인데 처음부터 관객이 몰려서 그걸 감당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이제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데 힘을 기울일 겁니다.”

이어 “폐막식 역시 강화하고 싶어요. 하지만 예산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준비할 것이 아직 있습니다. 특히 계속 꾸준히 검토하는 것은 영화제 기간을 하루 더 늘리고 비경쟁영화제에서 경쟁영화로 강화하려고 합니다. 경쟁 부문을 강화시키는 것은 결국 유통입니다. 칸 국제영화제 등 세계적인 영화제는 강한 마켓 시장과 유통을 잘 시켜주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 역시 아시아 전역으로 유통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크나큰 숙제이기도 해요.”

올해 열아홉 번째 영화제가 끝나면, 스무 번째가 찾아온다. 스무 번째 부산국제영화제는 특별히 진행되진 않을 예정. 조용히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할 예정이다. 그동안 영화제를 뒤돌아보고 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를 한다. 국내 관객 뿐 아니라 해외 관객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상도 계획 중이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관객들에게 “발길 닿는 대로 즐기다 가는 영화제가 되길 바란다. ‘영화의 바다로 오세요’라는 슬로건처럼 푹 빠지셔도 되고 발만 담갔다가 가셔도 된다. 영화로 소통하고 힐링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호 전 위원장님께서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죠. 청렴함과 겸손함으로 영화제에 임하셨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늘 겸허하시고 반성하셨기에 문제점들이 빨리 개선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들은 늘 진심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큰 장점이죠. 그래서 매년 영화제를 준비할 때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합니다. 까불지 말고 늘 첫 번째 영화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해운대(부산)|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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