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의미 있는 ‘5년 만의’ 외침 “난 그냥 이대로”

입력 2014-10-19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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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태지 컴퍼니



과연 서태지였다. ‘문화 대통령’ 서태지(42)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5년이란 시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19곡을 쉼 없이 라이브로 소화해냈다. 과거 ‘시대유감’을 외치며 반항기 넘치던 서태지는 ‘소격동’으로 새로운 소통을 시도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크리스 말로윈’은 마치 미리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서태지의 5년만의 컴백공연인 ‘크리스말로윈(Christmalo.win)’이 18일 오후 7시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공연 시작 전부터 팬들은 기나긴 행렬로 서태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는 10, 20대의 젊은 층보다는 30, 40대의 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성숙했다. 팬들은 흥분하기 보다는 안내요원의 진행에 따라 차분하게 입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부부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진= 서태지 컴퍼니



이번 공연은 ‘크리스 말로윈(크리스마스와 할로윈의 합성어)’이라는 제목처럼 기괴한 복장을 한 팬들을 볼 수 있었다. 귀여운 산타클로스에서 섬뜩한 좀비 분장에 이르기까지 시작 전부터 콘서트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윽고 어둠이 내려앉은 잠실 주경기장에는 2만 5천 여 명의 팬들로 가득 찼다. 당초 6시에 시작할 공연 시간이 7시로 지연됐다. 그럼에도 팬들은 덤덤하게 데뷔 23년 차를 맞은 ‘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시작 전 ‘댄싱9’팀의 화끈한 댄스무대가 펼쳐졌다. 댄싱9팀은 밴드 퀸의 ‘don't stop me now’에 맞춰 무대를 달구기 시작했다. ‘댄싱9’팀의 리더 박인수는 “서대장님의 무대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다”는 소감을 말했다.

사진= 서태지 컴퍼니



서태지는 8집 타이틀곡 ‘모아이’로 공연의 첫 포문을 열었다. 검정색 턱시도로 한껏 멋을 낸 서태지는 아이유와 ‘소격동’을 함께 부르며 팬들의 커다란 환호를 이끌어냈다. 아이유의 기묘한 목소리와 서태지의 향수 짙은 보이스의 멋진 하모니가 눈 부시는 무대였다.

이어 서태지는 정규 9집의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을 열창하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할로윈데이를 연상케하는 무대 구성과 화려한 퍼포먼스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연이어 ‘버뮤다 트라이앵글’까지 부른 서태지는 객석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서태지는 팬들을 향해 “보고 싶었다. 너무 오랜만이다”라는 한 마디로 침묵을 깨트렸다. 짧은 한 마디지만 5년을 기다려준 팬들에게는 모든 것을 이해시킬 수 있는 소감이었다. 이어 “오늘 5년 만에 제가 여러분들 앞에 섰다.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여러분들 보니까 너무 좋다”면서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태지는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곡인 ‘내 모든 것’, ‘시대유감’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정규 9집 곡인 ‘숲속의 파이터’, ‘프리즌 브레이크’ 등의 신곡 무대도 선보였다.

사진= 서태지 컴퍼니



이날 공연에서는 역대급 스케일의 무대와 사운드 시스템이 돋보였다. 세계적인 음향 엔지니어 폴 바우먼이 디자인을 맡아 단일 뮤지션 공연 기준 최대 물량인 사운드 시스템이 준비됐다. 총 130 여대의 메인 스피커와 36대의 그라운드 서브 우퍼까지 설치돼 관객에가 강력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곧이어 드라마 ‘응답하라1994’를 통해 다시 사랑 받은 ‘너에게’는 팬들의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태지는 “이 노래가 또 다시 사랑을 받아 너무 느낌이 새로웠다”면서 “여러분 생각도 생각났다”고 팬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사진= 서태지 컴퍼니



공연 중간 서태지답지 않은 이색발언도 화제가 됐다. 공연 도중 관객들을 둘러본 서태지는 “왜 남탕이야”라면서 장난스럽게 말해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가하면 ‘널 지우려 해’, ‘인터넷 전쟁’을 부른 뒤 그는 “여러분이 좋아하던 당신들의 별이었던 스타들과 여러분의 인생도 같이 저물어가고 있다”면서 “한물간 별 볼일 없는 가수 전해드린다”고 9집 수록곡인 ‘나인티스 아이콘’을 부르기도 했다.

공연 막바지에는 래퍼 스윙스와 바스코가 서태지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서태지는 “과거 댄스,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해왔는데도 지금까지 날 사랑해준 팬들이다”면서 스윙스와 바스코를 “힙합계의 보물들”이라고 소개했다. 스윙스의 프리스타일 랩으로 시작된 무대는 서태지의 인기곡 ‘컴 백 홈’, ‘교실이데아’로 이어졌다. 서태지는 스윙스, 바스코와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팬들과 호흡했다. 서태지는 “이제 몸이 풀렸는데 끝이네요 젠장”이라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진= 서태지 컴퍼니



마지막 곡으로 서태지는 ‘하여가’를 선택했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와 화려한 무대매너로 팬들의 열광을 극대화시켰다. 무대의 열정이 식을 무렵 서태지는 앵콜곡으로 '테이크 파이브'를 불렀다. 곡이 끝남과 동시에 서태지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비행기가 하늘로 치솟으며 모든 공연이 막을 내렸다.

지난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한 서태지는 1995년 4집까지 발표하며 ‘난 알아요’, ‘컴 백 홈’ 등의 센세이셔널한 곡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6년 돌연 그룹 해체를 선언한 이후 솔로 가수로 변신한 서태지는 매 음반바다 획기적인 시도로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사진= 서태지 컴퍼니



이번 ‘크리스말로윈’ 공연은 가수 서태지에게도 팬들에게도 작은 변화를 느끼게 했다.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던 ‘아이돌’ 서태지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됐다. 데뷔 23년 차를 증명하듯 서태지의 팬들 역시 이제는 뜨거운 열광보다는 함께 한 추억을 공유하는 세대가 된 것이다.

공연 막바지 부른 ‘하여가’의 노래가사인 “난 그냥 이대로”가 바로 서태지가 팬들에게 전하고 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수히 오랜 시간이 지났을지라도, 지날지라도 팬들에게 서태지는 “난 그냥 이대로” 남아있다고 말이다.

한편 서태지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한 권의 동화책이라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소녀가 세상을 여행하며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와 그 소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서태지의 이야기를 테마로 삼은 앨범이다.

서태지의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는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과 선공개곡 ‘소격동’을 포함 총 9트랙을 담았다.

잠실|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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