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 박지성도 행복하다

입력 2014-12-2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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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동아닷컴DB

■ 영국서 제2의 삶 준비하는 박지성 이메일 인터뷰

“필드 누빌 때가 가장 가치 있게 느껴져 ”
스포츠 행정 등 적성 맞는 분야 찾는 중

한 시절을 풍미했다. 200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당대 최고의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에서 7시즌을 뛰었고, 3차례의 월드컵에서 역사를 새로 썼다. 모두가 찬사와 갈채를 보냈다. 지금은 땀 젖은 유니폼을 벗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추억을 공유한다. 그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지도 어느덧 8개월이다.

박지성(33·사진)의 신분은 애매하다. 마땅한 호칭이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홍보대사)로 활동 중이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그래도 몹시 행복하다. 스스로는 “평범하다”고 했지만, 화려했던 24년의 축구인생에서 ‘선수’란 틀에 얽매여 누리지 못했던 자유로운 삶을 한껏 누리고 있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스포츠동아는 영국에 머물며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자유인’ 박지성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즐거움이 고통으로…은퇴 이유

5월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박지성은 김민지(29) 전 SBS 아나운서와의 결혼 발표와 함께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월부터 계속된 고민을 끝낸 순간이었다. 고질인 무릎 부상으로 “더 이상 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물었다. 오직 부상이 은퇴 결심의 모든 이유였느냐고. 박지성은 주저 없이 “그렇다”고 했다. 지금의 그를 만들었고, 또 그가 가장 좋아했던 축구가 고통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선수생활을 더 했을 거다. 축구를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이 고통으로 더 이상 즐거울 수 없게 됐으니, 그라운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극히 당연하다.” 지금 당장 경기에 나선다고 해도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10분도 채 뛰지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최선을 다해 선수생활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은퇴가 실감나지 않을 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문득 그리울 때는 있지만, 철저히 추억이 됐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그의 가치가 가장 빛나던 순간은 역시 그라운드에 있을 때였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위대하다’, ‘훌륭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 이름이 갖는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축구선수로 초록 필드를 누빌 때가 가장 가치 있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숱한 A매치(100회·2011년 1월 센추리클럽 가입)에서 2002한일월드컵이 크게 다가온다. 가장 순수하게 축구를 즐겼고,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축구의 위대한 힘을 보여줬던 최고의 기억이다.”


● 제2의 인생은 아직…

지금은 좀더 여유를 누리고 싶다. ‘선수’ 박지성이나, ‘자유인’ 박지성이나 모두 소중하고 행복하다. 진로나 공부의 방향에 대해선 고민 중이다. 구체적 밑그림을 아직 그리지 못했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뚜렷하게 정하지 못했다. 어떻게, 어떤 부분에서 내가 도움이 될 것인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최대한 다양한 부분들을 접하려 한다. “(스포츠 매니지먼트·행정을 위해) 전반적으로 많은 부분의 기초이론을 접한 뒤 그 틀에서 내가 가장 잘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찾는다면 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누차 강조했듯이 지도자의 길은 ‘아니다’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본인이 이상적 지도자상과 한참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특히 ‘관계’라는 측면이 그렇다. “지도자는 단순히 전술적 식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선수들과의 관계, 미디어와 팬들과의 관계 등 팀을 둘러싼 모든 부분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를 고려할 때난 절대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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