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기자의 고치 리포트] 배영수-권혁 “난 다승왕, 넌 홀드왕 못할게 뭐냐”

입력 2015-02-11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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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량이요? 정말 최고예요.” 한화 배영수(왼쪽)가 일본 고치 숙소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지옥훈련 경험담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있다. 옆에 있던 권혁도 웃음을 머금고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을 증언했다. 고치(일본)|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

■ 독수리 배영수·권혁이 말하는 지옥훈련·인생승부

● 자신감 찾은 배영수

극한 상황 견디자 공던지는 게 편안
어린 투수들 진지하고 가능성 많아
너무 착한 동료들 프로선 독기 필요
11월엔 시상식장에서 인터뷰할 것

● 코피 터진 권혁

사흘간 뛸 걸 여기선 단 하루만에
적응되니까 고통도 웃음으로 승화
나와 팀 위치 비슷…동반상승 기대
얼마나 통할지 빨리 게임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피를 흘렸다니까요.”-권혁

“은퇴하면 다시는 고치에 오지 않을 것 같아요.”-배영수

이런 훈련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프리에이전트(FA)로 삼성에서 한화로 이적한 배영수(34)와 권혁(32). 김성근 감독이 지휘하는 ‘지옥훈련’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한화 선수단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 마치 군대에서 가장 힘든 유격훈련을 받을 때 전우애가 솟아나는 것처럼, 이들은 힘겨운 훈련 과정을 하나씩 돌파해나가며 한화 선수들과 끈끈한 동료애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초원을 지배하던 사자에서 비상을 준비하는 독수리로 변신하는 두 사나이.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에서 배영수와 권혁을 만나 한화 적응기와 지옥훈련 경험담, 그리고 야구인생 건 승부에 대해 들어봤다.


● 지옥훈련 경험담


-한화에 와서 실제로 김성근 감독 밑에서 훈련 해보니 어떤가요?


배영수(이하 배)=(아무 말 없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음)


권혁(이하 권)=“안 해보면 몰라요. 며칠 전에 코피를 흘렸어요. 내 기억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피를 쏟은 것 같아요. 새벽에 자는데 뭐가 주르륵 흘러요. 닦고 보니까 피더라고.”


배=“저는 캠프 오면 쉬는 날 항상 밖으로 나갔는데, 여기서는 휴식일에 한번 나갔다가 1시간 반 만에 다시 들어왔어요. 너무 피곤하고 잠이 와서. 고치에 처음 와봤지만, 아마 내가 은퇴하면 다시는 고치에 오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삼성도 훈련 많이 하지 않나요?


배=“많이 하죠. 그런데 비교가 안돼요. 고치에 온 첫 날부터 기본적으로 단거리 30번을 뛰어. 70m, 50m, 30m를 계속.”


권=“처음에 외야 폴에서 폴로 2시간을 뛰더라고요. 뛰었어요. 근데 또 단거리를 30번 뛰래요. 그래서 속으로 ‘이게 메인 러닝인가’ 했죠. 2시간 뛰었더니 메인 러닝이 뒤에 또 있대. 삼성에서 3일 뛸 걸 여기서 하루에 뛰었어요.”


배=“투수는 그나마 나아요. 야수들은 죽어요. 새벽 6시 반에 유니폼 입고 밥 먹는 걸 한번 봐야 된다니까. 정말 먹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 겁니다. 아침 안 먹고 점심까지 못 버티죠.”


-이제 적응이 됐는지.


배=“거짓말 안 하고, 처음엔 힘들어서 욕도 나오고…. 그런데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운동장에 가면 걸을 때보다 뛸 때가 많아요.”


권=
“선수들도 적응이 되니까 힘든 과정 속에서도 재미를 붙이게 되더라고요.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고 할까.(웃음)”


-삼성과 훈련 차이점은?


배=“단지 방식과 스타일의 차이인 것 같아요. 한화는 단체훈련이 많고 삼성은 개인훈련을 많이 해요. 저 역시 그동안 알아서 많이 했고, 혁이도 그랬고. 비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삼성은 삼성 스타일이고, 한화는 한화 스타일이 있는 거니까. 프로는 이기는 게 중요하죠. 결과가 말을 해주니까. 저로서는 두 가지 다 겪어 보니까 나중에 지도자가 됐을 때는 엄청난 도움이 되겠죠.”


-훈련을 통해 배우는 게 뭔가요?


배=“감독님이 극한 상황 속에서 뭔가를 찾으라고 하시는데, 처음엔 속으로 ‘뭘 찾지?’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1차 캠프 거의 끝나 가니까 공 던질 때 되게 편해지더라고요. 투수의 주업무는 피칭 아닙니까. 피칭할 때 솔직히 작년, 재작년에 버겁다는 생각을 한번씩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세상에서 제일 편한 게 공 던지는 거더라고요.(웃음)”


권=“포커스는 투수는 공 던지는 거잖아요. 그걸 위해 부수적으로 러닝이나 웨이트트레이닝도 하는 건데, 그런 면에서는 영수형 얘기와 같다고 봐야죠.”


● 독수리군단 적응기


-한화 선수로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재미있어요. 영수 형이 볼 때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해도 한화 오고 나서 많이 밝아진 것 같아요. 잘 웃고. 안 그래요, 형?”


배=“혁이는 제가 봐도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의욕이 넘치고.”


권=“한화 선수들이 그래요. 영수 형하고, 나하고, (송)은범이가 요즘 야구장에서 가장 말 많다고. 시끄럽다고. 말 좀 줄이라고. (웃음)”


-권혁이 보는 배영수는?


권=“적응 잘 하고, 잘 지내고, 재밌게 잘 살아요. 원래 스스로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잖아요. 괜히 100승 했겠어요?”


-겪어 보니 한화 선수들은 어떤가요?


배=“야수는 잘 못 봤지만, 젊은 투수들 중에 가능성 있는 친구들 많아요.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진짜. 이태양은 작년에 가능성을 보여줬고, 유창식이나 김민우, 김정민 등 전체적으로 보면 어린 투수들이 괜찮아요. 야구 대하는 자세도 진지하고. 그런데 한화 선수들이 조금 순한 것 같아요. 그런데 경기하면 바뀌어야하겠죠. 프로야구판에서 절대 ‘착하다’는 말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권=“그건 맞아요. 그런 게 삼성 선수들하고 조금 다른 부분인 것 같아요. 애들이 다 착해요. 진짜 순해요. 너무 순해.”


배=“다들 정이 많아요. 그러나 프로에서 정이란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유니폼 입으면 경쟁하는 겁니다. 유니폼 벗으면 동네 형처럼, 동네 동생처럼 지내야겠지만 유니폼 입으면 정이 아니라 독이 있어야죠. 달려들 때 확 달려들어야 하는데…. 그런데 처음 봤을 때보다 선수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속에 잠들어 있던 ‘욱’ 하는 게 한번씩 올라 오더라고요.”


-욱 하는 게 뭔지….


배=“그런 게 있잖아요. 러닝할 때도 그렇고…. 독기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있어요. 저도 내면으로 참다 참다 습관이 됐는지, 최근 마운드 위에서도 많이 얌전해졌던 것 같아요. 이제 저돌적으로 붙어야할 것 같아요. 혁이도 그동안 많이 얌전해졌던 것 같고. 한화 투수들이 마운드 올라가 많이 거칠어지면 더 좋은 성적 낼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오는 11월에는 정장 입고 인터뷰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상식장에서.(웃음)”


● 새로운 목표, 새로운 승부!


-팀을 옮겼습니다. 새로운 목표가 있습니까.


권=“저는 사실 선발도 아니고 불펜이다보니까 몇 홀드 그런 건 의미 없는 것 같고.”


배=“혁이는 내가 생각할 때 중간하면 25홀드 이상, 마무리하면 35세이브 이상 해야 한다고 봐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애인데…. 혁이는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그러면 간 쓸개 다 빼주고 팔 빠지게 던질 겁니다. 다시 홀드왕 한번 해야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나도 다승왕 못할 이유가 없고.”


권=“어떻게 보면 제 위치나 우리 팀 위치나 같은 선상에 있다고 봐요. 저도 바닥에 떨어졌다가 또 다시 뭔가를 찾아가고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거고, 우리팀도 더 나은 모습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훈련하고 있는 거고. 저도 여기서 잘 되고, 팀도 동반상승하면 좋잖아요.”


-각오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배=“혁이는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봐도. 삼성에 있을 때 중요한 역할도 못 맡아서 그런지 건성으로 훈련하는 면도 있었는데…. 내가 문제지. 나만 잘하면 되니까. 혁이도 기대된다고 했지만 저도 기대됩니다. 왜?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하면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예전 선동열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마운드에 섰을 땐 후회 없이 던지라고. 정말 후회 없이 던지고 싶어요.”


권=“저는 빨리 게임을 해보고 싶어요. 개막까지 며칠 남았죠? 40일? 50일? 기대돼요. 우리가 베스트를 했을 때 어떨까. 실전에서 어떨까. 궁금한 거죠.”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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