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농구부…학교체육 길을 찾다

입력 2015-03-0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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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대 여자농구부는 선수들의 학업 성적도 좋고 경기력도 뛰어나 모범사례로 꼽힌다. 윗줄 왼쪽 끝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성은 감독, 이근일 교수, 최정민, 조은정(1학년), 김나혜, 박현영, 이종애 코치, 임민주, 박혜미, 황수정, 최유정, 박가이, 김희진, 조은정(4학년). 아래 사진은 박현영과 조은정(4학년)이 작성해 제출한 리포트. 사진|스포츠동아DB·용인대 여자농구부

■ 학업·운동 모범 ‘용인대 여자농구부’

우승 18회·준우승 16회 대학농구 명가
지난 2학기엔 전원 성적장학금 대상자
전술이해도 높아 경기력에도 좋은 영향
꾸준한 학업 병행으로 진로 폭 넓어져

2009년 미국프로농구(NB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데이비드 로빈슨은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싱커의 마술사’로 불리며 메이저리그 통산 211승(144패)을 거둔 케빈 브라운도 명문 조지아공대에서 학업을 마쳤다. 미국에선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릴 것 없이 공부하는 선수가 드물지 않다. 1980레이크플래시드동계올림픽 5관왕 에릭 하이든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훗날 미국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의 팀 닥터를 맡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선 학교들이 대회 성적에 목을 매다보니,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용인대 여자농구부는 ‘공부하는 선수들’로 화제를 모으며 학교체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 학과 수석 휩쓰는 용인대 여자농구부

1999년 창단한 용인대 여자농구부는 우승 18회, 준우승 16회에 빛나는 대학여자농구의 명가다. 지난해에도 2월 MBC배 전국대학대회와 10월 남녀대학리그에서 정상에 올랐고, 11월 제95회 전국체육대회에선 2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자랑은 경기력뿐만이 아니다. 특히 2014년에는 학업 면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 1학기에는 3학년 조은정이 스포츠레저학과 전체수석, 김나혜(1학년)와 박현영(2학년)이 각 학년 1등의 영예를 안는 등 농구부 12명 모두가 학년별 5등 이내의 성적을 거뒀다. 그 결과 2학기에는 농구부 전원이 장학금 대상자가 됐다. 2학기에도 김나혜가 학과 전체수석을 차지하는 등 다수의 우등생이 탄생했다. 용인대 스포츠레저학과의 최근 5학기(2012년 2학기∼2014년 2학기) 전체수석 5명 중 4명이 농구부 소속이었다.

용인대 여자농구부 이근일(58) 지도교수는 3일 “상대평가로 성적을 매기기 때문에 농구부 선수들이 많이 듣는 수업은 타 학생들에게 기피대상이 될 정도”라고 소개했다.


● 공부하는 선수들, 전술 이해도도 높아요!

용인대 여자농구선수들은 수업에 빠지는 일이 없다. 학업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팀 훈련은 오후 한 차례(2시간30분∼3시간)가 전부다. 새벽·오전·오후·저녁 운동까지 하루 최대 3∼4차례 진행되는 타 팀들과는 대조적이다. 용인대 김성은(39) 감독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선수들은 자존감이 높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알아서 운동을 한다. 팀 훈련은 하루에 1번 정도지만, 개인 훈련은 거르지 않는다. 박현영은 1월 동계휴가 때도 학교에 나와 재활훈련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근일 교수를 통해 확인한 농구부 학생들의 리포트는 양과 질에서 압도적이었다.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합리적 사고를 터득한다. 이는 결국 경기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김 감독은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끝까지 질문을 해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 심지어 전술과 관련된 서적을 공부하고 싶다는 선수들도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 체육교사부터 일반 사무직까지…진로도 다양

용인대 농구부에는 ‘만학의 길’을 걷고 있는 왕년의 스타도 있다. ‘블록 슛 여왕’ 이종애(40)는 프로무대에서 은퇴한 뒤 2014년 입학해 플레잉코치로 뛰었다. 처음에는 이른바 ‘독수리 타법’으로 애를 먹었지만, 이제는 제법 리포트를 쓰는 데도 여유가 생겼다. 2014년 1학기 1학년 2등, 2학기 3등을 했을 정도로 성적도 좋다. 이종애는 “거의 30년 만에 공부를 해본 것 같다. 영양학 같은 수업은 특히 운동선수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또 아는 만큼 여러 갈래의 진로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것도 공부의 장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모든 대학농구선수들이 졸업 이후 프로선수 또는 감독·코치를 할 순 없다. 준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회에 나오면 모든 것이 막막하다.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학업을 병행한다면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예를 들어 용인대 농구부 2000학번 박지영은 임용고시에 합격해 현재 체육교사로 재직 중이다. 이외에 일반 사무직에서 일하는 졸업생도 있다. 이근일 교수는 “2월 졸업한 4명의 선수 중 2명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앞으로도 용인대 농구부가 공부하는 전통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용인|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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