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주년 특집|참모들이 본 슈틸리케 감독] 김봉수·박건하 코치 “슈 감독님은 교육자 스타일”

입력 2015-03-2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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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아픔을 극복한 한국축구가 새로운 역사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한국축구의 재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김봉수(왼쪽), 박건하 코치가 서울 광화문 청계천에서 화창한 봄 햇살을 받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김봉수·박건하 코치에게 한국축구를 묻다

2014년 한국축구는 무척이나 아팠다. 믿었던 ‘홍명보호’의 브라질월드컵 참패는 큰 생채기를 남겼다. 영원할 것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른 뒤 새롭게 맞은 2015년. 새해 벽두 호주에서 들려온 아시안컵의 선전은 축구팬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상 첫 원정대회 16강의 위업을 달성한 2010남아공월드컵, 사상 첫 동메달의 감격을 안긴 2012런던올림픽도 한국축구의 역사였고, 괴로운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탈락도 한국축구가 안고 가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홍명보 전 감독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의 국가대표팀은 3년 뒤 열릴 러시아월드컵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물론 사령탑 홀로 모든 것을 해낼 순 없다. 가슴 아픈 지난 기억을 묻고 꿈을 키워가는 지금, 희망의 내일을 함께 공유하려는 조력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슈틸리케호’ 출범 이후 반년이 흘렀다. 그간 슈틸리케 감독의 이야기는 수차례 들어왔지만, 조력자들의 속내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창간 7주년을 맞은 스포츠동아가 국가대표팀 핵심 참모 역할을 수행 중인 박건하(44) 코치, 김봉수(45) 골키퍼(GK) 코치를 한자리에 초대했다.


● 김봉수 코치



“막내 선수들 의견까지 존중…배울 점
한국축구가 늘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 박건하 코치



“슈 감독님, 선수들 작은 부분까지 교감
바르게 성장한 선수 키워내는 게 목표”


● 참모들이 본 슈틸리케 감독

국가대표팀 소집 기간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을 접한 태극전사들의 평가는 한결같다. ‘전형적인 유럽 할아버지’의 이미지로 통한다. 얼핏 차가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주 자상하고 인자하다는 것이 선수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참모들의 생각도 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코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독일인답게 아주 정확하면서도 세밀한 사람이다. 선수들이나 지원스태프, 코치들과 대화할 때 다른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있지만, 매사 이해하려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 한다. 막내 선수들의 의견까지 깊이 존중하는 열정이 강하다.”

박 코치는 ‘교육자’ 타입이라고 했다. “현역 경력부터 남다르다. 그런데 전혀 스타의식이 없다. 존경받을 만한 커리어를 쌓았음에도 선수들과 아주 작은 부분까지 교감을 나누려 하더라. 평소에도 유소년들의 꾸준한 성장을 줄곧 강조하는데, 아무래도 교육자 성향이 짙은 것 같다. 물론 나이와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식견과 지식도 인상적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업무에 있어선 누구보다 꼼꼼하다. 대부분이 반신반의했던 이정협(24·상주상무)을 호주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발탁하기에 앞서 그의 기량을 살피기 위해 4차례 이상 상주 경기를 찾은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그렇다고 짜여진 틀에 얽매이는 편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부분의 선수들과 개별 미팅을 했다. 그리고 최대한 의사를 존중해줬다. 훈련 못지않게 충분한 휴식도 중요시한다. 융통성 있게 스케줄을 조정한다. 코치들과의 미팅도 길지 않다.

슈틸리케 감독은 점심식사를 거를 때가 종종 있다. 그 대신 아침을 꼭 챙겨먹고, 저녁식사를 즐긴다. 일상생활도 아주 소탈하다. 서울의 한 특급 호텔 레지던스에서 아내와 함께 거주하는 그는 결코 짧지 않은 축구인생을 걸어오며 이런저런 다양한 문화권을 접해서인지, 어떠한 음식에도 쉽게 적응한다. 서양인들에게 다소 매울 수 있는 음식도 수월하게 음미한다. 그런데 특징이 있다. 비교적 짜게 먹는다. 김 코치는 “점심을 거르실 때가 많아서인지 코칭스태프 전체가 식사를 함께 할 기회는 적었는데, 어쩌다 자리를 하다보면 음식에 소금을 듬뿍 치는 걸 보곤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 어두운 터널을 뚫고…

1월 호주아시안컵 출정식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코치들에게 각자 한마디씩 하고픈 말을 하라고 주문했다. 자신의 차례가 오자 김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2014년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그랬다. 박 코치와 김 코치는 브라질월드컵 당시 홍 전 감독을 보좌했다. 누구보다 아팠을 사람들이다.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그 순간을 화두에 올리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 코치의 답이 가슴에 와 닿았다. “(코치직을) 그만두는 것보다 계속 이어가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걸 절감했다.”

홍 전 감독이 물러나고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된 뒤 코칭스태프 구성이 화제가 됐을 당시 기존 코치들의 잔류를 놓고 축구계의 여론은 반반이었다. 이들의 상처를 감싸주고 새로운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던 반면, 월드컵 참패에 대해 코치들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코치는 “세상을 살면서 죽을 정도로 힘든 일은 없다던데, 딱 죽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르면 소주 한 잔으로 작년을 추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으로선 여전히 아픈 과거다. 밖에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표를 내고도 조직이 이를 안 받아줬다면 끝까지 계약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도 남은 자들의 몫이라 여겼다”고 밝혔다.

그 대신 희망도 노래했다. 박 코치는 “아픔을 쉬이 잊기 어렵겠지만, 앞으로의 삶에 자양분이 됐던 건 틀림없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믿는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게 주어진 역할을 책임감을 갖고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 오늘, 그리고 내일

어차피 지금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대표팀은 확고한 비전, 뚜렷한 목표 속에 똘똘 뭉쳤다. 다시는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김 코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선수들도 길지 않은 대표팀 소집 동안 서로를 배려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말 한마디, 하나의 행동에서 팀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안컵에서 나름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라운드를 누빈 이들과 벤치를 지키면서도 간절히 동료들의 선전을 기원한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박 코치는 “사명감이다. 아직 2014년과 올해는 하나의 틀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분명한 건 대표팀 구성원들이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소금 같은 역할을 하려 한다는 점이다. 수동적인 태도가 아닌, 스스로 알아서 역할을 인식하고 소화하려 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들의 궁극적인 꿈은 무엇일까.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축구는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 김 코치는 “앞서 슈틸리케 감독께서 하신 ‘한국인들의 일상에서 정치, 사회, 경제가 아닌 축구가 중요한 대화의 주제가 됐으면 한다’는 말씀을 기억한다. 우리도 그렇다. 축구가 항상 사랑받는 스포츠로 남길 바란다”며 “미미할지 몰라도, 그러한 기반을 다지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코치는 “우연한 기회에 대표팀 코치가 됐고,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축구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인데, 지도자로서 지금보다 축구가 얼마나 더 사랑받을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언젠가 지도자를 그만뒀을 때, ‘공을 잘 찬다’는 선수보다는 ‘바르게 잘 성장했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을 많이 키워낼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 슈틸리케 감독 창간 7주년 축하 메시지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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