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기자의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 TV 속의 ‘육아 슈퍼맨’…현실 속 엄마엔 ‘판타지’

입력 2015-05-15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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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 부자와 추성훈 부녀 그리고 엄태웅 부녀(맨 위부터)가 보여주는 육아 이야기는 ‘판타지’일까. 사진제공|KBS

오늘도 얼굴을 툭툭 건드리는 아들의 발길질에 눈을 뜬다. ‘아, 이제 5시 반인데…. 조금 더 자자.’ 태어난 지 8개월 된 아이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엄마보다 늘 먼저 일어난다. 엄마의 출근과 함께 자신도 할머니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이다. 나는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새벽마다 이불에 둘둘 감아 시댁으로 ‘셔틀’한다. 죄 많은 아내이자 엄마이면서 며느리 그리고 ‘전투력을 상실한’ 기자다. 요약하면 ‘워킹맘’이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는 그런 ‘애 엄마’가 바라보는 TV, 그를 향한 잔소리다.

체험·의류브랜드·교구 등 상대적 박탈감
미혼 여성들에게는 출산·육아 환상 심어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 향상에는 ‘긍정적’

아이를 기르다보니 나보다 나이는 어려도 애를 먼저 낳아 키운 이들을 ‘언니’로 부를 정도로 다른 엄마들을 존경하게 됐다. 또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자연히 시선이 간다. TV 속 아이들이라고 달라 보이지 않아서 ‘육아’ 예능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본다. 그 중에서도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좋아한다. 시청할 때는 넋을 놓고 보다가도 TV를 끄고 나면 어쩔 수 없는 죄책감 뒤섞인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아! 나는 뭘하고 있는 걸까.”

즐겨 찾는 온라인 육아커뮤니티에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많은 글이 올라온다. 방송에서 아이들이 체험을 위해 방문한 곳이 어디냐는 질문부터 입은 옷의 브랜드, 레스토랑, 교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보가 공유된다. 물론 ‘실제로 구입하려니 비싸네요.’ ‘이걸 다 해주려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댓글도 어김없이 달린다.

나 역시 육아 예능프로그램을 바라보며 적지 않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던 터다. 그리고 감정은 곧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어진다. 다 때려치우고 아이와 함께 있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고민하지만 TV 속 아이들이 누리는 호사 중 일부라도 해주려면 돈은 벌어야지 싶다. 그래서 오늘도 ‘지옥철 1호선’에 몸을 싣는다.

주말에 늦잠 자기 일쑤였던 남편이 ‘프렌대디(Friend+Daddy)’가 돼보겠다며 이유식 만들기를 거들고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는 걸 보니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미혼 혹은 출산 전 여성들에게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적지 않은 판타지를 준다는 인상도 강하다. 미혼인 대학 동기는 휴대폰 메신저 프로필에 송일국의 세 쌍둥이 사진을 설정해놓았다. “삼둥이를 보면 빨리 결혼하고 싶어. 저런 집에서 세 아이랑 여행도 다니고 알콩달콩 얼마나 행복하겠어”라면서.

어쩌면 대개의 엄마들에게 TV 속 육아 예능프로그램은 ‘리얼 관찰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방송되는 절대 ‘리얼’할 수 없는 ‘판타지’가 아닐까. 동기에게는 차마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친구야! 꿈 깨라.”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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