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근육이 욱신거리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입력 2015-08-03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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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보며 ‘이거, 만만치 않겠는 걸’ 싶었다.

감상하기에 꽤 까칠한 작품들이었다.

7월 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열린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얘기다.

이날 연주회는 주최 측에서도 사뭇 긴장하며 주목하고 있었다. 주최 측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세계 초연무대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부 첫 번째 작품으로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티에리 에스카이쉬가 쓴 곡이었다. 대관령국제음악제를 위해 위촉한 작품이기도 했다.

왜 프랑스 작곡가에게 위촉을 했는가 하면, 올해 제12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주제가 ‘프랑스 스타일(French Chic)인 것이다.

작곡가는 꽤 드라이한 성품인지, 6중주곡의 제목을 ’6중주‘라고 붙여 놓았다. 아니, 반대로 꽤 유머러스한 사람인지도.

첫 무대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김다솔의 연주. 두 사람은 나란히 한 대의 피아노 앞에 앉아 슈베르트의 ’환상곡 F단조 D.940‘을 연주했다.

두 사람은 종종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과연 네 개의 손이 두 개처럼 움직이는 놀라운 호흡을 보여 주었다.

손열음의 음색이 꽤 몽환적으로 울렸다. 손열음이 이런 소리를 가졌었나 싶다.

털털한 평소의 모습과 달리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민활한 고양이같은 자태에 송곳니처럼 뾰족한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이날은 안개처럼 모호한 음이 허공에 가득 흩어졌다.

질감이 은근히 가칠가칠하다.

손열음, 김다솔 두 사람은 이른바 ’대화체 연주‘를 들려주었다. 묵묵히 각자의 건반을 두드린다기보다는 시종일관 재잘대는 느낌이랄지.

그 싱싱하고 깨알같은 대화를 상상하고 있자니 신기하게도 음이 점점 더 명징하게 들려왔다.


두 번째 곡은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이기도 한 정명화가 연주하는 바버의 ’첼로소나타 op.6‘. 반주 솜씨가 날로 늘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 무대에 섰다.

무엇보다 노장의 연주가 쓸쓸하지 않아 좋다. 도무지 나이를 먹지 않은 연주다. 젊은 김태형의 뜨거운 반주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인터미션 후 드디어 ’6중주‘가 등장했다. 6명이 연주하는 작품이지만 작곡가 티에리 에스카이쉬가 직접 지휘를 했다.

채재일(클라리넷), 헝 웨이 황(비올라), 박상민(첼로), 미치노리 분야(더블베이스), 김태형(피아노), 아드리앙 페뤼숑(팀파니)의 연주다.

꽤 들썩들썩하는 곡이었다. 6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집중하는 모습에서 “으싸으쌰”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당히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일부 관객은 기립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 작품이 ’과연 프랑스적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예술적인 자유분방함만큼은 진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무대는 오브라이언 사중주단과 피아니스트 플라메나 망고바의 프랑크 ’피아노 5중주 F단조‘.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썩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 작품을 헌정 받은 생상스조차 박한 평가를 내렸다. 프랑크의 아내가 이 작품에 대해 남편이 어린 여제자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브라이언 사중주단의 연주는 힘이 좋았다. 음들이 쩌렁쩌렁 콘서트홀을 울려댔다.

살이 좀 찐 아르헤리치처럼 생긴 피아니스트 플라메나 망고바의 타건은 세차고 단단했으며 리듬감이 넘쳤다.

그런데 오브라이언 사중주단은 은근히 비주얼한 매력이 넘치는 악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전 프로바둑기사였던 문용직 박사를 닮은 비올라 연주자(스티븐 테넨봄)가 연주하는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사유적 무표정‘이랄까.

이토록 베토벤의 얼굴로 연주하는 프랑크라니.

콘서트홀 밖으로 나오니 대관령의 밤이 까맣게 깊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해발 700미터 땅에 위치한 알펜시아 콘서트홀.
그래서일까. 매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듣는 음들은 서울보다 진했다.

좋은 음악은, 확실히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길러준다.

오늘도 마음의 근육이 욱신거렸다.

평창|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대관령국제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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