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방아쇠 당긴다”

입력 2015-09-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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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격의 간판스타 진종오는 2020도쿄올림픽 이후로 은퇴시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당당하게 박수 받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그가 자신의 총을 붙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경찰청장기 사격 2관왕 ‘변함없는 실력’
“IOC 선수위원 탈락? 얻은 것도 많아
메달 욕심? 나 자신과의 싸움이 좋다”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당연히 우승은 너’란 표현이다.”

‘사격 황제’ 진종오(36·kt)의 한마디 한마디는 진중하고 겸손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한국사격은 진종오가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정희 대한사격연맹 실무부회장은 “(진)종오는 이미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칭찬했다. 화려한 실적과 국제대회 입상 경력이 이를 증명한다. 2004년 아테네대회를 시작으로 올림픽에서만 3개의 금메달(은2)을 목에 걸었다. 2002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으니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10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건만, 기량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고 있다. ‘제2의 진종오’라는 후배들이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그의 자리는 굳건하다. 진종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충북 청주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메이저 국내대회인 제24회 경찰청장기 전국사격대회에서도 남자 일반부 2관왕을 차지했다.


● 베테랑으로 사는 법

진종오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때는 국가대표 3년차인 2004년이었다. 아테네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은메달을 따며 세계 정상권으로 발돋움했다. 사격인들은 “진종오의 올림픽 첫 메달이 금이었다면 인생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서 ‘달라지다’는 부정적인 의미에 가깝다. 6.9점에 그친 마지막 발에서의 치명적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혹독한 채찍질을 가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올림픽에서만 그가 빛난 것은 아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금 3개(은3·동4), 세계선수권에서도 금 3개(동2)를 거머쥐었다. 월드컵 파이널과 아시아선수권 등을 합치면 메달 개수는 훨씬 늘어난다.

최고를 지키려는 자. 당연히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소수점까지 점수를 나누고 2발씩 쏴 탈락자를 가리는 ‘서든데스 룰’로 규정이 바뀌었고, 관중 응원을 허용함으로써 사격의 재미는 더해졌지만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사대에 서는 선수들에게는 피로감이 훨씬 커졌다. 진종오처럼 ‘추격자’가 아닌 ‘챔피언’이라면 부담은 한층 배가된다. 200.8점으로 우승한 경찰청장기 10m 권총에서도 그랬다. 후배 이대명(27·갤러리아)과 끝까지 경합했다. 2위 이대명과 격차는 불과 0.8점. “사람을 들었다가 놨다가 한다. 20발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집중력이 생명이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사격이다.”

사람들은 앞서고 있거나, 뒤지고 있거나 결국은 ‘진종오가 이긴다’고 믿는다. 그러나 본인은 고개를 저었다. 조준선을 정렬하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의 그 짧은 50초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고 했다. 진종오는 “그저 최대한 집중하려 노력할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미 한국남자권총은 세계 최고다. 진종오와 그의 자리를 노리는 국내 후배들의 경합은 올림픽 버금가는 짜릿함을 준다. “(경쟁 덕분에) 동기가 부여되고, 방심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생기지만 버거울 때도 있다. 쉽게 가고 싶은데, 당최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결국 진종오가 이긴다’는 말을 듣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버텨낸다.”


● 또 다른 인생을 주는 올림픽, 2020년 도쿄까지!


진종오의 직함은 또 있다. 국제사격연맹(ISSF) 선수위원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추가될 뻔 했다. 남자탁구 유승민(33), 여자역도 장미란(32)과 차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후보 경합을 벌였고, 끝내 유승민에게 밀렸다. 외국어가 당락을 갈랐다.

그러나 진종오는 프로였다. 후보 탈락 직후인 8월 독일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는 “아쉬움만큼 얻은 게 많았다”고 밝혔다. 외국선수들과의 대화를 더 쉽게 하게 됐고, 세상에 사격뿐만 아니라 많은 길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와 다짐했다. ‘자만하지 말자’, ‘이 세상은 아주 넓다’고 거듭 되새긴다.”

그래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올림픽이다. “모든 스포츠인의 꿈 아닌가. 나도 올림픽에서 꿈을 이뤘고,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전 세계 최고들이 한자리에 모인 올림픽에 있노라면 새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조심스레 물었다. ‘이미 모든 걸 이루지 않았느냐’고. 싱긋 웃던 진종오는 “메달을 더 따고 싶다는 욕심이나 갈망이 아니다.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좋다. 최고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도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비움’이 ‘채움’을 가져온 셈이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진종오는 일찌감치 한국사격에 올림픽 쿼터를 안겼다. 그런데 출전은 장담할 수 없다. 내년 초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해야 한다. 대한사격연맹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쿼터 획득자’에게 자동출전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대표 선발전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고민 중이다. 최종 결정은 11월 이후 나온다.

그렇다면 진종오는 언제까지 현역으로 뛸까. 30대 중후반이면 대개 은퇴했거나 제2의 인생을 고민하는 시점이지만, 사격은 실력이 되는 한 연령 제한이 없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최대 2020도쿄올림픽까지 바라본다. 목표를 달성한 뒤 멋지고 당당히 떠나고 싶다. 다만 목표는 좀더 시간이 흐르고 정하겠다.”

청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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