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키노빈스’ 이근욱 대표 “창작자들의 ‘열정페이’가 사라지는 날까지”

입력 2015-10-06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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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빈스’ 이근욱 대표를 만난 건 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때였다. 한창 해운대 바닷가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중 후배가 이 대표를 소개시켜줬다. 서로의 명함을 건넨 이후 만난 적은 없지만 SNS를 통해 그의 창업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커피와 콘텐츠를 접목시켜 사업을 시작한 그의 SNS에는 어느덧 볶음밥 등을 판다며 식사 등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문화 행사에 참여하고 DMC 단편영화제를 주관한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내일 ‘키노빈스’에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다음날 찾아간 ‘키노빈스’는 아침부터 활기찬 움직임이 시작했다. 이날 ‘문화연대’ 행사와 ‘DMC 단편영화제’ 폐막식을 동시에 치러야 해서 행사 스태프들이 스피커 등을 옮기는 모습도 보였다. 서강대 동문회관에 있어서 아침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올 학생들을 기다리며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루에 세 가지의 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즐거운 모습을 내비친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근욱 대표가 ‘키노빈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영화’ 때문이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여느 학생처럼 배우를 꿈꿔왔다. 어린이 뮤지컬도 해봤고 독립영화 현장에도 있었다. ‘숀 펜’과 ‘알파치노’의 연기를 보며 연기자를 꿈꿨던 그는 꿈을 접고 ‘영화’, ‘공연’, ‘음악’ 등과 같은 문화콘텐츠를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전하기 위한 일환으로 F&B(Food and Beverage)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자기의 꿈을 믿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 꿈을 이루시는 분들도 계시죠. 저 역시 아동 뮤지컬도 해보고 독립영화나 단편영화 현장에 있어봤는데 어느 순간 제 그릇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속상해서 방황도 했지만 우연찮게 창업의 길이 열렸어요. 태어나서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쪽이 제게 더 잘 맞는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처음 세 명의 공동창업자로 시작한 ‘키노빈스’는 현재 이근욱 대표만 남아 운영을 하고 있다. 처음 커피사업을 하고 있던 선배가 영화와 커피를 접목해보자고 제안했다. 커피 한 잔으로 문화를 나누고 그 수익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제가 오랫동안 영화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영화제작환경자체가 밤을 새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수많은 스태프가 잠을 쫓으려고 믹스커피를 마시며 버텨요. 그들에게 주어지는 예산이 정말 적거든요. 요즘은 배우들이 자비를 들여 커피차를 쏘기도 하지만요. 현장에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 흔하디흔한 게 카페고 길거리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왜 스태프들은 현장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못 마시는 건지 안타깝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그런 제안이 들어왔죠.”

이들은 처음 서울산업진흥원(SBA) 강북청년창업센터에서 제공해준 작은 공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에 합격해 책상 한 칸과 조리실을 받았다. 처음엔 몇 개의 회사와 요일을 나누며 같이 사용했지만 나중엔 키노빈스만 그 공간을 갖게 됐다. 이후 SBA가 콘텐츠를 활용하는 상영회 등을 기획하게 됐고 키노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기 적합하다고 생각돼 지금 이 대표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이에 지금의 DMC 단편영화제까지 운영하게 됐다. 현재 키노빈스를 운영하는 서강대 동문회관 역시 50주년 동문회 때 음료협찬을 하면서 사무국장이 이를 보곤 좋게 여겨 동문회관의 일부분을 내주었다.

그는 웃으며 “빚을 많이 내서 시작했다”고 하며 “4월 13일에 오픈했는데 이제 ‘서강대 맛집’ 중에 하나가 됐다. 가끔은 동네 분들도 오시곤 식사하고 가신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작은 회사라 경쟁력을 갖기 힘들어 당장 시장이 허용되는 커피로 눈을 돌렸지만 결국 한국 사람은 밥심이더라고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먹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논다’라는 게 단순히 ‘논다’라기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사람들, 그러니까 단순하게 예를 들어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잘 먹고 잘 살려고 돈 버는 건데 정작 제대로 된 한 끼도 못 먹을 때도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경제가 아무리 발전하고, 길거리에 음식점은 늘어났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래서 여기서 만큼은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받고 피로도 풀고 갔으면 좋겠어요.”

사업으로 시작해 두 번의 영화제까지 운영해보니 이 대표는 “결국 자본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자본과 사람은 똑같이 중요한 것 같다. 예산의 총액도 중요하지만 예산 분배나 운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중요하다. 또 책임자의 위치라면 소통을 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하면 적은 양의 예산과 작은 수의 사람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키노빈스’와 이근욱 대표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 갈 길도 멀다. 영화 뿐 아니라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에 접근해 아티스트들이 들어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고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적재적소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그는 “언젠간 제2의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나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행사를 만들어보겠다”는 큰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창작자들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요. 그들을 비즈니스 모델로만 보는 게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이상 ‘열정페이’가 아닌 제대로 된 급여를 받으며 창작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열정이 담긴 음식과 음료가 예술가들을 위한 좋은 양식이 되길 바라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키노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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