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만추’ 김소진 “‘애나’가 짊어진 삶의 무게, 어땠을까요?”

입력 2015-11-08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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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흔히 그릇에 비유하곤 한다. 술을 담는 그릇이 술잔이 되고, 간장을 담는 그릇은 종지가 되듯이 어떤 캐릭터를 표현할 때 그에 알맞게 변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김소진은 사람과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좋은 그릇이다. 차거나 넘치지도 않게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감정을 표현한다.

이번 연극 ‘만추’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별세로 72시간의 자유를 얻은 죄수 ‘애나’ 역을 맡은 김소진은 세상과 사람을 향한 낯섦과 그리움, 그리고 훈을 향한 사랑을 매우 차분하게 담아냈다. ‘애나’라는 역할을 오롯이 담아낸 그는 고민이 참 많았다. 거의 첫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교도소 밖으로 나온 애나의 모습부터 걱정이 됐다.

“애나는 평범하게 살지 않았잖아요. 첫사랑과 헤어지고 남편을 실수로 죽이게 되고, 또 감옥에서 지냈던 그 여성의 삶의 무게는 어땠을까요. 그런 그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는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볼까, 어떻게 걸음을 옮길까 등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한 마디로 ‘애나’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고 할까요.”

김소진은 현빈과 탕웨이 주연의 ‘만추’가 개봉할 때 관람을 했다. 그는 “같은 배우 입장에서 극 전체를 끌고 가는 여자 캐릭터라 반갑기도 했다”라며 “나와 상황은 다르지만 괜히 보호해주고 싶고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운도 많이 남더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만추’가 무대로 옮겨진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관심이 갔죠. 걱정보다는 (잘 만들 수 있을 거란)희망이 있었어요. 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우리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무척 어려웠다. 영화를 무대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필름은 편집 기술이나 이미지 등 여러 장치들을 이용해 극의 분위기를 돋울 수 있다면 무대에서는 온전히 배우와 관객의 호흡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또한 이 작품은 침묵 또한 연기가 된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빛과 순간적인 행동이 대사가 된다. 김소진은 “대사도 시처럼 함축적이고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들었다. 직접적인 말 대신 한숨이 표현 방식이 된다. 배우들이 해야 할 일은 관객들이 그 순간을 지루하게 느끼게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잘 버텨내야 했다”라고 말했다.

“말로 표현하는 인물이 아닌 데다 설정은 72시간이지만 공연은 1시간 45분이니 그 안에 애나의 감정 변화를 모두 표현하는 게 어려웠죠. 정말 스스로 ‘잘할 수 있어’라고 다독이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웃음) ‘애나’를 같이 했던 지현이와 호흡이 끊이지 않고 유지하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참 어려운 연기였어요.”

‘만추’는 ‘7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극에 담아내고 있어 시간의 흐름에 긴장감을 줬다. 애나가 출소되는 순간부터 무대 한 쪽에서는 모래가 떨어진다. 또 기차표 값을 빌린 훈이 애나에게 돈을 꼭 갚겠다며 그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건네는 등 ‘시간’에 대한 상징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에 김소진 역시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고 했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당장 죽을 수도 있잖아요. 진짜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잘 살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눈을 감을 때 슬프지 않았으면 해요. ‘나 먼저 갈게, 좀 더 있다가 와’라며 마치 잠시 헤어지듯 웃으며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진 순간을 소중하게 써야겠지요. 치열하게 걱정하고 고민하고 살아야겠죠?”

시작부터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지만 김소진은 “배우로서 기분 좋은 일,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어려웠지만 정말 좋았어요. 익숙한 무대에서 그렇게 긴 호흡을 갖고 연기를 한 적이 정말 오랜만인 거 같아요. 어느 작품이나 그렇겠지만 ‘만추’는 음악이나 조명 등이 정말 중요해요. 손발이 잘 맞아야 극이 갖고 있는 정서를 관객들에게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보시는 관객 분들은 ‘애나’나 ‘훈’에게 초점을 맞추고 가시겠지만 다른 배우들과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하시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만추’의 마지막은 일종의 열린 결말이다. 3일이 지나고 애나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고 훈은 누명을 쓰고 살인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이에 애나가 출소하자는 날 만나자는 훈과 애나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한 채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김소진은 “글쎄요, 애나가 훈과 만났을까요?”라고 웃었다.

“저는 그거에 상관없이 애나가 내면에 갖고 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의 길을 걷는데 주춤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모습대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요? 누군가가 분명이 옆에 있다는 거요. 살면서 외로울 때 나의 진심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힘들어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 여러분의 ‘애나’와 ‘훈’이 어딘가에 꼭 있을 거예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HJ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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