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 ‘선’ 하나로 보인 인간의 유치하고 잔혹한 맨 얼굴

입력 2015-11-11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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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 재미로 선 하나 그었는데 일이 점점 커진다. 보이지 않는 선인데 어느 순간 내 편, 네 편이 생기고 권력자와 피 권력자가 나눠진다. 작은 교도소지만 어느 덧 이곳은 한 사회가 된다.

작가 츠치타 히데오(土田英生)의 원작이자 김광보 연출과 김은성 각색의 손길로 한국 관객에게 찾아온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보이지 않은 선 하나로 변해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코믹하지만 신랄하게 그려냈다. 경범죄 죄수들을 가두는 ‘제 45 갱생시설’을 배경으로 두 명의 간수와 여섯 명의 죄수들의 심리 변화를 점층적으로 나타낸 이 작품은 극한의 상황에서 보이는 인간의 본성이 사회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표현했다.

극 초반, 간수들과 여섯 명의 죄수들은 한가로이 지낸다. 옛 사람 흉내를 내는 양갑 성(유병훈), 다리 아픈 이구 허(이승준 분)를 위해 상상으로 농구와 오셀로 게임을 하는 자수 탁(임철수 분), 다혈질 성격의 장창 우(이석준 분) 등 사이좋은 관계였다. 그런데 교도소를 경계로 나라가 ‘꾸리야’, ‘동꾸리야’로 갈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가운데 죄수 양갑 성은 재미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긋는다. 처음엔 “해외 왔다, 국제 교류하고 귀국했습니다”라며 재미있게 놀던 여덟 명은 점점 심각해진다. 그 와중에 독립을 선언한 ‘고아’ 출신의 이구 허는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된다. 반년이 지나고 교도소가 동꾸리야 관할 아래 있게 되자 본격적인 편 가르기가 시작된다.


‘선’ 하나로 인해 유쾌함으로 시작했던 유치하고도 잔혹한 우리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동꾸리야 출신 사람들이 권력자가 돼 꾸리야 출신에게 불공평한 대우를 한다. 특히 동꾸리야 출신 간수 대기 곽(한동규 분)은 꾸리야 출신 선배 간수 경보 안(유연수 분)도 무시하고 완장을 찬 듯한 행세를 한다. 꾸리야 죄수들은 반발하고 동꾸리야 죄수 수철 용(김영민 분)은 이런 상황을 환영하지만 긍정 안(유성주 분)과 자수 탁은 “이러지 말자”며 중립을 요구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앙갚음을 하기 시작한 두 그룹은 끝내 폭력사태까지 일을 발전시킨다.

정교하고 대담하게 짜인 대본과 여덟 명의 배우가 펼치는 연기는 우리 사회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 양식을 탁월하게 설명해준다. 일을 저지르고 뒤로 빠지는 양갑 성, 무언인가로 인해 양극화된 의견을 내비치는 대기 곽, 용수 철, 장창 우, 중립을 지키려는 자수 탁, 긍정 안 그리고 친했던 자수 탁을 변심하는 이구 허 등이 그렇다. “한 사람이 힘을 가지면 그 사람을 끌어내리면 되는데 자꾸 힘을 줘 ‘닭도리탕’(권력에 심취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 된다”라는 대사는 한 사건으로 인해 변질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여덟 명이 모인 작은 공동체가 우리 사회를 보여주며 씁쓸함을 곱씹게 된다.

극은 선이 없어지고 동꾸리야와 꾸리야 그리고 다른 나라들까지 통합되면서 빚는 허무한 결말에 이른다. 폭력 사태가 끝나고 다시 모인 사람들은 어색함을 금치 못한다. 떨어지기 싫어했던 자수 탁과 이구 허는 더 이상 친해질 수 없다. 물리적인 선은 사라졌지만 이구 허에 대사처럼 “선은 분명히 있었어. 선은…. 내 마음 속에 있었어”와 같이 이들의 마음속에 이미 그어져버린 선은 영원히 남아있을 거라는 또 다른 씁쓸함을 남긴다. 작품은 이구 허의 마지막 대사인 “슛”으로 관객들에게 숙제를 남긴다. 우리는 마음속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선을 던져버릴 것인가, 아니면 도로 튕겨서 받아버릴 것인가. 11월 18일까지 LG 아트센터.

총평. 유쾌하지만 장난스럽지 않은 메시지와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 ★★★★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LG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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