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문혜원 “밴드가 친정이라면 뮤지컬은 시댁이죠”

입력 2015-11-1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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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서 도도하면서도 은근히 허당인 백작부인 쏘냐 역을 연기하고 있는 문혜원. 기타를 벗어던지고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은 문혜원의 색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진제공|네버더레스

■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의 문혜원

내게 뮤지컬 무대는 늘 새로운 세계
인간 세상서 고생하는 흡혈귀 가족
어두운 극 중에서 숨 쉴 틈 던지는 역


아무래도 로커일 때의 문혜원과 배우일 때의 문혜원은 전혀 다른 인물 같다. 아우라가 다르고 뿜어내는 에너지의 결이 다르다. 기타를 멘 문혜원은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고 섹시하기까지 하지만, 뮤지컬 무대에서는 한결 진중한 자세를 견지한다. 록 밴드 뷰렛의 보컬리스트이자 뮤지컬 배우인 문혜원(35)은 “밴드는 친정, 뮤지컬은 시댁”이라고 비유했다. 록 공연장(친정)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어떻게 해도 예쁘게 봐주지만 뮤지컬 무대(시댁)는 늘 새로운 세계이고 도전이고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는 장소란다.

뷰렛은 2006년 세계적인 밴드 오아시스의 내한공연 무대를 열었던, 2009년 아시아 14개국 37개팀이 참여한 오디션 프로그램 ‘수타시’에서 우승했던 그 뷰렛이다.

요즘 문혜원은 서울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서 백작부인 ‘쏘냐’ 역을 맡고 있다. 루마니아의 로열 패밀리였던 뱀파이어 가족이 백작(드라큘라일 것이다)이 인간들에게 사망하자 생계를 위해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운 창작 뮤지컬이다. 이번이 초연무대다. 왕년의 인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극이다. 문혜원의 표현에 따르면, ‘현실의 한 페이지를 찢어서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때때로 웃기지만, 자주 아프다.

“소위 말하는 힐링극은 아니다. 뱀파이어 가족이 인간 세상 속에서 생고생을 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지만, 인간들도 충분히 괴로움을 겪으며 산다. 보고 있으면 뭔가 답답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작품도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처럼.”

문혜원은 “난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마니악한 기질이 많다”며 웃었다. 세상의 어두운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극 중에서 간간히 숨 쉴 틈을 던지는 것은 쏘냐다. “돈을 벌어 아파트로 이사 가자”는 딸 아냐(한수림 분)에게 “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고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야 갈 수 있다는 아파트 말이냐”라고 한다든지, 자식들이 혈액은행에서 훔쳐온 수혈용 혈액을 내밀자 “난 A형은 싫다. 톡 쏘는 B형을 다오”하는 식의 깨알 재미를 주는 대사는 쏘냐의 몫이다. 이마에 ‘백작부인’이라고 써 붙인 듯한 표정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쏘냐가 이런 대사들을 툭툭 내던지면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김나정 작가의 대본도 흥미롭지만 작곡가 김혜영이 만들어낸 음악도 초연작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좋다. 문혜원은 밴드 보컬리스트다운 시원시원한 발성으로 귀가 황홀한 아리아를 들려준다. 고교시절에 대학 실용음악과를 가기 위해 성당에서 쓰는 팔뚝만한 양초를 켜놓고 연습했다는 문혜원이다. 문혜원은 “친구들이 볼펜이 닳도록 입시공부를 할 때 나는 양초가 닳을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그러니까 문혜원의 득음은 폭포수 아래가 아닌 촛불 앞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

‘상자 속 흡혈귀’에서 폐장을 앞둔 유원지 드림월드의 사장 역을 맡은 박태성은 문혜원의 남편이기도 하다. 2014년에 결혼했다. 부부가 같은 작품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도 두 사람은 벌써 4번째 같은 작품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작품의 경우 연출자가 두 사람이 부부인 줄도 모르고 각자 따로 캐스팅 제의를 해 왔다고.

“이 작품은 이제 막 태어난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 같은 작품입니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진심을 담아서 매회 무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롱런하는 창작뮤지컬이 될 수 있도록 마지막 공연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기타를 내려놓은 문혜원은 훨씬 안전(?)해 보였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 매력은 아무리 두꺼운 상자 속에 우겨넣더라도 감추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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