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루시드폴, 고퀄리티 앨범만 고집하는 ‘음악 농부’

입력 2015-12-19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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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한,’ 은 곡을 쓰기 전에 제목을 붙였어요. 누군가를 위한 글, 누군가를 위한 앨범, 누군가를 위한 ‘귤’을 하려면 쉼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2년에 한 번씩은 정규 앨범을 내야겠다고 혼자만의 약속을 해왔어요. 음악을 발표하는 기회이면서도 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인 루시드폴이 지나온 2014년과 2015년에 남긴 일기장이자 기록물이라고 봐주세요.”

루시드폴이 일곱 번째 정규 앨범 ‘누군가를 위한,’을 발매했다. 이번 앨범은 동화 ‘푸른 연꽃’
이 실린 책과 동화의 사운드트랙을 포함해 총 15곡을 담았다. 앨범에는 동화를 위한 사운드트랙 5곡이 실려 있다. 주인공 마노의 감정을 실은 노래와 함께 배경처럼 흘러나오는 연주곡은 독자에게 신선함을 제공한다.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동화라는 글은 참 오래된 매체 같아요. 노래를 만들고 같이 앨범에 실으면 마치 영화 OST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어요. 처음 기획할 때 회사에서 책인지 음반인지 말이 많았죠. 그래서 루시드폴이 만든 하나의 창작물이라고 규정했어요. 이번에는 총 분량이 160매정도로 중편 동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루시드폴은 음악적으로도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다. 음악적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고음질로 녹음했다. 어쿠스틱 음악의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음악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앨범 기획 단계부터 고퀄리티의 음질로 녹음을 하고 싶었어요. 어쿠스틱 앨범이라 이렇게 하면 표가 많이 나는데 편곡도 내가 직접 다 했어요. 기타 연주도 정말 어려운 두 곡을 제외 하고는 다 소화했죠. 어쿠스틱만의 투박함 속에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아련함을 담고 싶었어요. 들으시면 그냥 기타소리로 느낄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으면 통기타도 낡은 기타도 아닌 특이함이 담겨있어요.”


지난 2014년 루시드폴에게는 인생의 큰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인생의 반려자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제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도시 출신인 그가 제주로 훌쩍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도시에서 살았어요. 도시에만 살다보니 정작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거죠. 알고 보니 예능 욕심도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좋더라고요. 결국 도시보다는 시골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죠. 와이프 역시도 시골을 선호했고 예전부터 막연하게 생각하던 제주행을 결정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어요. 봉고차에 짐을 싣고 완도로, 배를 타고 제주로 떠났죠. 그렇게 훌쩍 가버렸네요.”

도시에서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긴 그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우연히 동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도 하고 이웃의 도움을 받아 귤 농사를 시작했다.

“시골인심이란 게 있잖아요. 따뜻한 이웃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다들 농사짓는 친구들이었어요. 한 형님이 선뜻 350평 정도의 귤 밭은 내주셨고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게 됐어요. 서로 일손을 도우며 하다 보니 규모가 점점 커지다보니 음악활동에 지장이 많은 건 아닌가 걱정도 했어요. (웃음) 지난해 첫 수확을 하고 이제는 750평을 빌려서 하고 있어요.”

최근 그가 재배한 귤과 새 앨범은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홈쇼핑에 등장했다. 직접 포장까지 한 귤 1000상자와 앨범은 방송 시작 9분 만에 완판 됐다. 새벽 2시에 진행된 방송에도 네티즌들은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유희열이 가볍게 던진 농담 한마디가 이 같은 대박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희열이 형 아이디어였어요. 식사 중에 귤 포장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희열이 형이 ‘꼭 농수산물 홈쇼핑 같네’라고 말했어요. 거기에 큰 홍보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니 솔깃했죠. 처음에는 홈쇼핑 7~8개 업체가 모두 거절했지만 결국 성사됐죠. 이왕 방송하는 데 귤 탈도 직접 쓰고 출연했어요. 혹시나 안테나 식구들의 정신이 왜곡될까봐 걱정했어요.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유쾌하게 봐 주셔서 안도했어요.”


이러한 독특하고 신선한 아이디어와 함께 루시드폴은 앨범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앨범 발매보다는 싱글 발표가 많아졌고, 앨범 판매량보다 음원차트 순위를 더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싱글이 아닌 정규 앨범 작업에 집중한다.

“싱글을 내야겠다는 엄두가 잘 안 나요. 내게는 음반이란 것의 의미가 워낙 크거든요. CD라는 매체가 좋고, 팬들에게 내밀기에도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더 성의를 담아 만족시켜드리고 싶어서 편지도 쓰고 사진도 넣었죠. 영화를 집에서도 볼 수 있지만 실제 영화관 가사 보는 맛은 다르잖아요. 이렇게 CD도 읽고 듣고 만질 수 있으니까 이러한 감성이 내게는 더 중요해요.”

사실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굉장히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몰입해서 만든 앨범이었고 한편으로는 가장 힘들면서도 즐거운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귤을 처음 수확하기까지 시행착오를 거쳤듯 루시드폴의 음악도 시간이 갈수록 차근차근 성장 중이다.

“지난 번 ‘지금까지 앨범 중 가장 만족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 앨범도 만족해요. 나는 요즘 나오는 친구들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언더에서부터 하다 보니 못해본 게 많아서 하나씩 해 나가면서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 느껴요. 1~3집은 뭐가 뭔지 몰랐고, 4~5집은 CO프로듀서를 모셨죠. 6집과 7집은 혼자 해보자는 마음으로 해서 내놓은 앨범이에요. 일단 내년에는 농사만 열심히 하면 좋겠어요. 물론 곡 작업은 일상이고요. (웃음)”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안테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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