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판치는 KBO리그, 선수들만 ‘피멍’

입력 2016-01-0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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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에릭 테임즈(왼쪽)와 지난 시즌까지 넥센의 에이스로 활약한 앤디 밴 헤켄은 외국인선수 다년계약 금지 규정을 어겼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BO리그의 신뢰는 규약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투명하게 실천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포츠동아DB

■ 2016년 KBO리그에 바란다

5. 규약과 제도…투명하게 만들자!


KBO리그는 2015년 10구단 시대를 열었고, 역대 한 시즌 최다관중(762만2494명·포스트시즌 포함)을 기록했다.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 12’에선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하며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야구 전문가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금이야말로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슈퍼스타가 사라지고 있고, 양적 발전을 이룬 만큼 질적 향상도 이뤄야 하나 그렇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벌써’가 아니라 ‘아직’ 서른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KBO리그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스포츠동아는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아 한국프로야구의 지향점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탬퍼링·용병 다년계약·보류선수제도 등
구단들 규약 허점 파고들지만 KBO 방관
한화, 제도 악용하다 선수 뺏기는 촌극도
리그 투명성 지키려는 공동체 의식 필요

어떤 공동체가 세련됐는지, 미개한지를 가르는 요소는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도에 달려있다고 한다. 세계적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를 통해 “트러스트가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선진국과 후진국이 갈린다”고 주장했다. 신용 있는 사회는 규칙 같은 사회적 약속이 투명하게 지켜지는 세상이다. 소위 꼼수와 편법과 관례 같은 말들은 ‘신용사회’의 반의어인 것이다.

범위를 KBO리그로 좁혀보자. 구단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가운데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이 바닥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질서라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KBO 규약이다. 그런데 구단들은 이 규약의 틈을 파고들기 일쑤다. 구단들 사이에 낀 KBO는 방관자적 태도를 취할 때가 적지 않다. 이러다보니 리그 자체의 신뢰는 발붙일 곳 없고, ‘이기는 자만이 옳다’는 승리지상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프리에이전트(FA) 계약 발표를 하면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계약기간과 계약금액을 믿을 수 없다. 탬퍼링(사전접촉) 금지부터 이면계약 금지까지 지키는 구단만 따돌림 당하기 딱 좋다. KBO 연감을 보면 2009년과 2010년 FA 선수들은 전원 1년 계약으로 적시돼 있다. 해외리그에 있다가 KBO리그로 복귀한 선수의 다년계약은 두산과 이혜천의 이면계약이 발각된 것을 계기로 2014년 1월에야 허용됐다.

FA 몸값 총액은 KBO리그 역사의 일부인데, 이 기간 그 역사가 소실된 것과 다름없다. 김태균이 2011시즌 이후 일본 지바롯데에서 한화로 돌아왔을 때 계약기간과 총액이 얼마인지, 투명하지 못한 제도 탓에 알 수 없게 됐다.

외국인선수 다년계약도 KBO 이사회의 세칙 상 금지된 것이지만,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 실행위원회(단장회의)에서 다년계약 금지를 푸는 방안을 모색 중인데, 부자구단이 반대하는 상황이다. 구단의 협상력을 키우는 목적으로 마련됐으나 유명무실했던 외국인선수 몸값상한선(30만 달러)은 2014년 1월 폐지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년계약 금지, 재계약 대상 외국인선수 협상시한(12월 31일) 등의 적용에 있어서 리그의 투명성과 KBO의 권위가 손상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NC와 에릭 테임즈, 넥센과 앤디 밴 헤켄의 다년계약 의혹, 두산과 더스틴 니퍼트의 해를 넘긴 계약 등이 대표적이다.

실행위원회는 5일 승리수당(메리트) 금지에 대한 논의를 했다. “적발된 구단은 신인 드래프트 권리를 박탈하자”는 과격한 제안까지 나왔다. 이미 ‘벌금 10억원’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진짜 관건은 제재안이 아니라 지키려는 의지다.

리그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도입된 보류선수 제도도 악용되기 십상이다. 구단들은 약자인 유망주 선수들을 신고선수 신분으로 전환시켜 돈을 아끼고, 보류선수의 울타리를 벗어난다. 신생팀 kt의 특별지명으로부터 자기 팀 선수를 지키기 위해 SK와 삼성은 임의탈퇴 제도를 남용하다 지탄을 받았다. 심지어 한화는 전력으로 분류된 선수를 방출시켜서 FA 보상선수로 못 찍게 하려는 꼼수를 부리다 최영환을 롯데에 빼앗기는 자승자박을 연출했다.

규약을 우습게 여기는 구단들의 횡포에 피멍이 드는 것은 KBO의 자산인 선수들이다. 야구계에선 “이럴 바에는 보류선수를 65명으로 제한한 규정을 계속 둘 명분이 얼마나 되느냐? 차라리 100명이든 200명이든 보유하게 하는 편이 낫다”는 현실적 지적도 들린다.

곳곳에서 노출되는 KBO 규약 자체의 허술함은 엄밀하게 말해 새삼스러운 사안이 아니다. 규약 보완을 위해 단장들과 KBO는 5일 실행위원회에서 협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빈틈없는 규정을 만들자는 의욕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리그의 투명성을 수호하려는 공동체의식이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서 최선의 길은 게임 당사자 전원이 처음의 약속을 지켰을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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