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리멤버’-tvN ‘시그널’(아래). 사진제공|SBS·tvN
슈퍼 갑질 vs 을의 분노…선악 대립 극명
과잉기억·시공초월 등 판타지 요소 가미
뻔한 러브라인 대신 끈끈한 동지애 초점
‘잘 나가는’ 장르 드라마는 다르다.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채널의 드라마 가운데 각각 시청률 1위인 SBS ‘리멤버’와 tvN ‘시그널’이 기존의 장르물과 차별화한 매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란히 법정 및 수사물을 표방한 두 드라마는 새로운 극적 장치를 추가해 장르물의 한계를 넘어섰다.
두 드라마의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는 것은 3가지다.
● 극명한 선악 대결
살인누명을 쓴 아버지를 위해 변호사가 된 아들(유승호)이나 장기 미제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김혜수·조진웅)들은 ‘강력한 힘’에 맞서 싸운다. 재벌가와 그들이 매수한 내부 고위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덮기 위해 법을 가볍게 무시할 정도로 극악무도하다. 힘없는 이들은 답답할 정도로 당하기만 한다. 시청자의 공분과 울분을 이끌어내기 위한 극적 장치다.
여기에 ‘슈퍼 갑질’과 그들에 대한 ‘을’의 분노를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극 초반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자아내다가도, ‘을의 반격’을 통해 통쾌함을 안긴다. 꽉 막혀 있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일명 ‘사이다’ 콘텐츠로 불린다.
● 판타지
다소 현실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지만, 사건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는 이만한 게 없다.
‘리멤버’에서 유승호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보고 듣는 것을 모두 외우고 기억하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기억력의 한계를 넘어선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그럴듯한 장치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여기에 기억력 감퇴와 상실의 원인인 알츠하이머증후군까지 연결하며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시그널’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도 이색적인 장치다.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건전지도 없는 무전기를 통해 주인공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교감하면서 흥미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 동지애
두 드라마에는 남녀간의 로맨스가 없다. 일반 드라마의 90% 이상이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으로 채워져 있지만, 두 드라마는 이를 배제했다.
‘리멤버’는 총 20부작 가운데 한 회에 한 두 장면 정도 유승호와 박민영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그쳤다. 굳이 러브라인이 필요 없는 설정이고, 극의 전개를 방해한다는 지적에 따라 분량을 없앴다. 대신 유승호와 박성웅이 서로 의지하는 동료이자 인생 선후배로서 우정을 주고받는 모습을 강조했다.
‘시그널’도 마찬가지다. 김혜수와 조진웅, 김혜수와 이제훈 등 ‘남녀’의 이분법적인 설정을 뛰어넘어 끈끈한 동지애를 그리면서 호평을 얻고 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