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감독 ‘노 사인’에 담긴 의미

입력 2016-03-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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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김기태 감독. 스포츠동아DB

KIA 선수들 스스로 깨닫게하는 플레이 강조
“전화번호부 책도 한장 한장 모이면 두꺼워져”


KIA 김기태(사진) 감독은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선수들을 직접 지도할 때도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어떨 것 같나’라고 말하는 식이다. 선수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깨닫게 만들기 위해서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도 연출됐다. 지난달 18일 라쿠텐전과 19일 삼성전에서 김 감독 옆을 한 선수가 끝까지 지켰다. 감독 옆은 수석코치의 자리다. 김 감독은 경기 중 틈틈이 “윤 수석, 자네라면 어떻게 할 텐가”라며 내야수 윤완주(27)에게 질문을 던졌다.

윤완주는 2월 17일 요코하마전에 7번 2루수로 선발출장했다가 본헤드 플레이를 저질렀다. 이에 김 감독은 이틀 연속 윤완주를 경기에 내보내는 대신 ‘일일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18일과 19일 경기에선 플레이 하나 하나마다 ‘윤 수석’에게 머리를 싸매게 했다. 볼카운트, 주자 상황에 맞는 타격 방법이나 주루 플레이 등을 물었기 때문이다. 캠프 기간 윤완주는 물론 다른 선수들에게도 플레이 후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 잦았다.

사실 김 감독은 이번 캠프 내내 ‘노 사인’을 고수했다. 경기 중 사인을 전혀 내지 않고,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을 보고자 했다. 물론 남몰래 덕아웃 뒤로 향해 한숨을 내쉬는 일도 잦았다. “10점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고작 1점을 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일도 있었다. 스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야구를 알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 기계처럼 움직이기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또 팀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한 ‘동행’을 강조하며 이런 말을 했다. “목적지를 나 혼자서 갈 수는 없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멀리는 못 간다’는 말도 있다. 각자의 능력이 부족해도 힘을 모으면 커진다. 전화번호부 책도 한 장 한 장은 쉽게 찢어지지만, 한 권으로 모이면 차력사도 쉽게 못 찢는다.”

동행의 의미는 개개인의 능력을 하나로 모아 팀이라는 큰 힘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김 감독의 전화번호부 책자 얘기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는 “마지막에 1∼2경기로 순위가 결정되는 일이 많다. 작은 실수만 줄여도 1년에 몇 승이 플러스된다. 선수들에게 ‘한 발만 더 빨리 스타트하자’, ‘한 발만 더 전력질주하자’고 강조하는 이유다. 한 발씩만 빨리 뛰어도 몇 점이 더 나오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전화번호부 종이 한 장, 선수들의 한 발이 모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KIA 선수들이 김 감독의 메시지를 얼마나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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