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외야석] 무사사구 클로저 김세현의 진심

입력 2016-06-0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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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현은 올 시즌부터 넥센의 뒷문을 책임지고 있다. 삼진 19개를 잡는 동안 단 한 개의 사사구도 허용하지 않은 안정감이 돋보인다. 김세현은 “팀이 필요한 순간에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며 책임감을 드러냈다. 스포츠동아DB

■ ‘22이닝 연속 무사사구’ 김세현의 어제와 오늘

이름 바꾸기까지 사연 많았던 지난 날
“그땐 안타·볼넷 남탓…돌아보니 내 탓”
올시즌 1승 13S·19K…넥센 주축 우뚝
“내 기록 중요치 않다…등판 자체가 행운”


정식으로 인터뷰를 청한 것은 아니었다. 텅 빈 덕아웃에 앉아 타자들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던 맑은 눈에 끌려 절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을까. 몇 해 전 제주도에서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 그의 눈빛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2009년 겨울, 넥센(당시 팀 명은 메인 스폰서가 없어 ‘히어로즈’ 였다)의 제주도 마무리훈련에서 만났던 김영민의 눈은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 같았지만 문뜩문뜩 반항어린 날카로움이 번뜩였다.

그해 여름 김영민은 퓨처스리그에서 외출 규정을 어겨 백만 원대의 벌금을 냈다. 당시 김시진 감독은 김영민이 모처럼 호투하자 직접 불러 “어제처럼 마운드에서 스스로 타자를 상대하는 재미를 느끼는 모습이 굉장히 좋았다. 기억하자 그 순간을, 앞으로 훨씬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 시즌 후 캠프에서 단점을 함께 보완하자. 영민아 또 벌금 내지 말고 열심히 하자”며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연봉이 2400만원인데 백만원 넘는 벌금이 얼마나 무겁겠나. 영민이는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 혈기왕성한 나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인생은 길고 성취할 것은 많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를 넘겨 2010년 1월 6일 넥센의 새해 첫 훈련이 시작된 원당구장에서 만난 김시진 감독은 굉장히 화가 나있었다. 며칠 전 구단 운영을 위해 이현승과 장원삼, 이택근을 타 팀으로 떠나보낸 탓이 아니었다. “10승 아니 15승 투수로 만들고 싶다”고 했던 김영민은 팀 소집 하루 전날 계단에서 미끄러져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평소 온화한 성품의 김 감독이었지만 격앙된 표정으로 “얼마 전 ‘넌 팀의 미래다’며 최고의 스프링캠프를 보내자고 했었다. 프로 선수는 집안 욕실에서도 행여 넘어질까 조심조심 발을 내딛어야 한다. 어떻게 넘어졌기에 십자인대까지 파열되나. 벌금 300만원 내라고 했다”며 아쉬워했다.

시간을 2006년으로 되돌리면 넥센의 전신 현대 스카우트 팀의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지만 보상금액을 지급하지 못했던 현대는 1차 지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의 능력은 2차 지명에서 빛났다. 2차 1라운드에서 강정호(피츠버그)를 지명했고, 2라운드에서 덕수정보고 에이스 김영민을 선택했다. 3라운드 지명 주인공은 현재 롯데에서 활약하고 있는 황재균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김영민의 이름은 김세현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철부지는 아니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 김세현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그리고 넥센의 마무리 투수, 그것도 단 한 개의 볼넷, 그리고 몸에 맞는 공도 허용하지 않은(5월30일 기준)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가 됐다.


-대단하다. 선발 투수도 22이닝 연속 볼넷 없는 투구는 어렵다. 여기에 몸에 맞는 공도 없다.

“(수줍게 웃으며. 몇 년 전 김세현이 아닌 김영민이었다면 과연 이런 표정이었을까) 사구도 없었는지는 몰랐다. 왜 과거에는 이런 느낌을 몰랐을까. 투수는 볼을 싫어한다. 그래서 더 구석구석을 노린다. 그렇다고 절묘한 공을 언제나 던질 수 있는 게 아닌데…. 지금은 한 가운데만 보고 던진다. 타자를 보며 ‘쳐!’, ‘날려버려!’ 그러면서 공을 던진다. 한 가운데로 공을 던져도 모두 정중앙으로 날아가지 못한다. 스트라이크존 경계로 살짝 빠지기도 하고 볼이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볼넷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팀의 주축 투수가 되기까지 먼 길을 걸어왔다.


“팀의 마무리 투수를 맞고 있지만 내 기록, 내 성적을 생각할 위치가 아니다. 어떻게든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 지금까지 왜 안타를 맞으면 야수를 탓하고 볼넷을 허용하면 심판을 탓했는지 모르겠다. 다 내 잘못이었다. 지금은 포수 미트만 본다. 당장 다음 경기에서 볼넷을 내줄 수도 있다. 세상에 볼넷 없는 투수가 어디 있나. 중요한건 안타를 맞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 같다.”


-마무리 투수는 단 한 개의 공으로 팀 승리를 지키거나 아니면 패배를 당할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자리다. 좋지 않은 순간을 최대한 빨리 잊어버려야 마무리로 장수 하더라.


“좋지 않은 날은 기록지도 받지 않는다. 얼마 전 방송으로 투구 폼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나쁜 기록이 자막으로 나오더라. 바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물론 승리를 날려 버리면 선발 투수는 물론 야수들에게도 굉장히 미안하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그 순간이 잔상으로 남아있으면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다. 빨리 잊어야 한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

김세현의 올 시즌 기록은 1승 13세이브다. 삼진 19개를 잡는 동안 단 한 개의 사사구도 허용하지 않았다. 개막 전 에이스 조상우를 잃은 넥센은 최하위로 전망됐지만 신인 선발 투수들의 등장, 그리고 시속 150km안팎의 빠른 공을 던지는 마무리 김세현의 활약 속에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0.313의 피안타율은 특급 마무리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고가 아닌 평균 148.6km의 빠른 공이 인상적이다. 반면 피안타율은 3할 이상이다. 볼넷이 없는 만큼 정면승부가 많았던 건가?

“피안타율도 그렇지만 마무리 투수로 가장 스스로에게 아쉬운 점은 개인 방어율에는 집계가 되지 않지만 등판하기 전 앞선 투수들이 진루를 허용한 주자를 홈까지 불러들이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빨리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프로야구 하이라이트프로그램 시청하다가 관련 기록이 나오자 굉장히 부끄러워 채널을 돌렸다. 볼넷 없는 투수가 어디 있나. 곧 깨질 거다. 주자가 있어도 무실점으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투수가 되고 싶다.”

마무리를 포함해 불펜을 지키고 있는 투수들의 하루는 고되다. 언제 어떤 순간에 투입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김세현은 “이틀 연속 던져도 휴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팀이 필요한 순간에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그게 전부다(세이브 1위 경쟁 중이라고 하자 자신의 기록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김세현은 곧 입대를 앞둔 청년처럼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속세의 번민을 해탈한 듯한 말을 이어갔다. 눈빛은 맑았고, 깊었다.


● 넥센 김세현은?


▲생년월일=1987년8월7일

▲출신교=도신초-우신중-덕수정보고

▲키·몸무게=188cm·98kg

▲프로 입단=2006년 현대 (2006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6순위)

▲계약금=1억원

▲2016년 연봉=1억6000만원

▲2015시즌 성적= 57경기 4승 5패 6홀드 방어율 4.38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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