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베테랑 이현일이 사는 법 “선수로 남고 싶다”

입력 2016-06-09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MG새마을금고의 베테랑 이현일은 여름철종별선수권 일반부 남자단식 결승에서 팀 후배 최영우를 꺾고 정상에 오르며 관록을 과시했다. 당진|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항상 되뇌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한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이현일(36·MG새마을금고)은 한국 배드민턴 남자 단식의 간판 스타였다. 2004아네테올림픽부터 2012런던올림픽까지 세 대회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으나, 대표팀 요청으로 2014인천아시안게임에 나서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었다.

대표팀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이현일은 현역으로 뛰고 있다.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지난 2월 태국 마스터즈에서 우승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는 세계랭킹 16위권 안에 오를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활약중이다.

이현일은 8일 충남 당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59회 전국여름철종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일반부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같은 팀 후배 최영우를 2-0(21-19 21-8)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현일이 단체전이 아닌, 국내대회 개인전에서 우승한 건 3년 전 이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은퇴시기를 지난 나이에도 새파랗게 어린 선수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우승 직후 그를 만나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을 과시하는 비결과 세대교체, 그리고 은퇴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 신체를 이기는 정신력과 노련미

이현일은 이날 11살 어린 후배 최영우와 결승전을 치렀다. 그는 “이제 국내 대회에서 만나는 선수들은 8~10살 차이가 난다. 서른 넘어가는 선수들이 몇 없다”고 말했다. 체력적으로 우월한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도 백전노장의 관록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이현일은 “1년, 1년 지나면서 나이가 들고 있지만 난 계속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되뇌며 묵묵히 뛰고 있다. 또 즐기면서 경기에 임하는 게 원동력인 것 같다”며 웃었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이겨내는 건 정신력이다. 그는 “나이가 먹으면 체력이 떨어지고, 의지가 약해진다. 의지를 안 떨어뜨리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했던 운동량과 지금 운동량을 유지하려 한다. 운동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의지의 문제인 것 같다”고 밝혔다.

다른 비법도 있었다. 이현일은 전성기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과거엔 3세트 막판까지도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처럼 뛰면 3세트를 소화할 수가 없다. 3세트를 염두하고 스피드를 늦춘다. 컨트롤이나 감각 같은 부분은 오래 한 게 강점이 된다. 런던올림픽 이후론 이렇게 무리가 안 가도록 하고 있다. 최대한 덜 뛰고 상대를 많이 뛰게 한다”고 답했다.


● 후배들 향한 메시지, 은퇴에 대한 생각


현재 한국 배드민턴 남자 단식 간판은 손완호(28·김천시청)다. 그러나 이현일의 뒤를 잇는 그 역시 서른을 앞두고 있다. 세대교체가 더딘 게 현실이다. 이현일은 “예전 선배들도 그랬고 대개 10년 주기로 괜찮은 선수가 나온다고 말한다. 서른에 접어들면 은퇴하고, 대학생들이 치고 나와서 세대교체가 됐다. 지금 그런 선수가 많지 않다는 평가는 안타깝다”며 “세계적으로 실력이 평준화되고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사실 단식은 혼자 하는 게임이라 복식보다 외롭다. 이용대처럼 간판스타가 있는 복식과 달리 단식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을 때마다 같은 대답을 한다고 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외국선수들과 견줘 봐도 기량이 좋다. 나 역시 어릴 때 겪었지만, 어린 선수들은 한 번 대회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꾸준히 노력해서 실력을 만들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태극마크를 반납한 것도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이현일은 “올림픽에 3번이나 나갔다. 내게 대표팀은 욕심이다. 한 살이라도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이현일의 은퇴 시점은 언제일까. 그는 “원랜 서른 접어들면서 은퇴할 때 하자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선수들을 접하다 보니,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에 매달리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힘들어서 물러나야겠다 생각이 들 때까진 묵묵히 할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선수로 남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당진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