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걷기왕’ 심은경, 슬럼프 속에서 찾은 ‘연기의 재미’

입력 2016-10-21 0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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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많이 칭얼대요. ‘애어른’ 같다는 얘기도 듣지만 한편으론 어린 아이 같은 구석도 있어서 엄마에게 꾸중도 자주 들어요. 그런 순간에 늘 가족과 친구라는 제 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어요. 슬럼프가 왔을 때도 든든한 존재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심은경(23)은 ‘최연소 흥행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영화 ‘써니’, ‘광해, 왕이 된 남자’, ‘수상한 그녀’에 연이어 출연해 놀라운 흥행 기록을 달성하며 충무로 여배우의 기대주로 거듭났다.

기쁨도 잠시 심은경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흥행에 기쁨을 누릴 만 하지만 연기에 대한 극심한 고민에 빠졌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정작 자신의 연기력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뻔한 연기, 계산된 연기만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찰나 그에게 ‘걷기왕’ 시나리오가 운명 같이 찾아왔다.

“연기에 대한 고민은 처음 배우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특히 ‘수상한 그녀’ 개봉이후에 고민에 빠졌죠. 흥행에 큰 사랑도 받았지만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혼란스러웠어요. 어느 순간 연기를 할 때 즐기면서 해야 하는데 즐기지 못한 게 가장 컸어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걷기왕’ 시나리오를 만나고 힘을 많이 얻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에요.”

‘걷기왕’의 만복 캐릭터 역시 심은경의 현재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영화 속 만복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한다.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부터 캐릭터에 푹 빠진 심은경은 만복이와 적잖은 동질감도 느꼈다.

“만복이의 대부분 모습들이 제 일상모습과 닮아 있어요. 떡볶이 먹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맹하게 멍 때리고 있는 모습도 저와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쉽게 캐릭터에 빠지면서 연기할 수 있었죠. 연기하면서 느낀 건 20대 때 10대 연기를 하는 게 더 여유가 생겼어요. 여유롭게 캐릭터의 속내를 잘 파악할 수 있었어요. 경험이 연기에 있어 중요하구나 싶었죠.”


작품 속 심은경은 육상 종목 경보에 참가해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한다. 시종일관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표현한 그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타이타닉 리코더신’을 꼽았다.

“타이타닉 리코더가 배경음악으로 깔린 게 정말 웃겼어요. 사실 그 장면이 주인공이 큰 시련을 겪는 부분인데 역설적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풀이 죽어있는 모습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 리코더 소리 때문에 빵빵 터졌어요. 알고 보니 감독님 아이디어였어요. 영화의 분위기를 확 띄워주는 역할을 한 것 같아서 가장 맘에 들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첫 상업영화에 도전한 백승화 감독 역시 심은경에게 큰 힘이 됐다. 백승화 감독은 배우 심은경이 촬영장에서 만복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했다. 심은경은 백승화 감독의 디테일하면서도 재미난 아이디어에 큰 매력을 느꼈다.

“감독님이 전적으로 저를 믿어주셨어요, 그러면서도 감독님이 그려내고자 한 연출 의도는 끝까지 버리지 않으셨어요. 저를 믿음과 동시에 제게 원하는 것도 분명히 말씀하셨죠. 그런 감독님의 연출력에 제가 불안해하지 않고 끝까지 영화촬영을 완주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더욱 믿었고, 아이디어랑 애드리브도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심은경은 이번 작품에서 연기뿐만 아니라 캐스팅에도 직접 참여했다. 극중 소순이 역할에 어울릴만한 배우로 안재홍을 추천했고 이는 바로 현실화됐다. 작품에서 스토리텔러 격인 소순이의 캐스팅을 해결함으로써 감독의 캐스팅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감독님께서 소순이 목소리를 누구로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언뜻 안재홍 오빠가 하면 어떨까 추천 드렸더니 신선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바로 안재홍 오빠에게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OK를 하더라고요. 시사회 끝나고 정말 감사하다고 문자도 보냈어요. ‘밀정’의 이병헌 선배를 두고 송강호 선배가 ‘천군만마를 얻었다’ 했는데 ‘걷기왕’은 안재홍 배우 덕분에 천군만마를 얻었어요.” (웃음)

또한 심은경은 ‘걷기왕’의 OST에도 참여해 직접 노래도 불렀다. 영화 엔딩크레딧에 흘러나오는 곡인 ‘엔딩송’은 만복 특유의 풋풋한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소 또래 친구와 노래방을 즐기는 심은경에게는 또 한 번 좋은 경험이 됐다.

“감독님이 직접 작사를 한 곡인데 제가 불러주면 좋겠다고 부탁받았어요. 사실 ‘수상한 그녀’ 때도 OST에 참여해서 너무 노래만 부르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그래도 데모 노래를 듣고 보니 가사가 너무 귀엽더라고요.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싶어서 참여했고 아주 재밌게 녹음했어요. 잘 부르진 못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20일 ‘걷기왕’ 개봉을 맞은 심은경은 연상호 감독과 ‘염력’ 내년 상반기 촬영을 준비 중이다. 올해 ‘부산행’, ‘서울역’에서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인 그에게 더 이상 슬럼프는 사라진지 오래다.

“‘부산행’ 천만 관객 달성에 축하메시지를 받고 의아했어요. 전 아주 잠깐 나왔으니까요. 생각 외로 제 역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함을 느꼈어요. 심지어 ‘너만 안 탔어도 공유 오빠는 죽지 않았어’라는 댓글도 봤어요. (웃음) 내가 이렇게 진짜 재밌게 즐기면서 하니까 많은 분들이 알아주고 좋아해주는구나 싶었죠. 앞으로도 이렇게 즐기고 좋아하면서 연기를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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