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스테이지] ‘팬텀’의 여자 김소현

입력 2016-11-03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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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김소현. 스포츠동아DB

‘우아함’이란 타고난 재능 같은 것이 아닐까. 책을 읽어 지성을 얻고, 운동을 해 몸매를 가꾸고,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 미모를 바꿀 수는 있겠지만 우아함은 다르다. 돈과 실력 있는 부모가 있고, 명품을 아이들 딱지 모으듯 사들이고, 하루 종일 말을 탄다고 한들 원래부터 없던 우아함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김소현이란 배우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우아함의 향기다. 그윽하고 달콤한 데다 상냥하기까지 하다. 굳이 입을 열어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김소현과 함께 하는 시간은 참 아름답게 흐른다. 물론 무대에서다.

김소현이 11월2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팬텀’에서 크리스틴 다에 역을 맡았다. 김소현은 ‘크리스틴’의 화신 같은 배우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하 오유)’ 한국 초연 때 크리스틴에 발탁된 이후 250회 이상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섰다. 김소현은 “초연 때 7개월, 재연 때는 1년 이상. 그 밖에 방송이나 콘서트, 행사까지 포함하면 나도 셀 수 없을 정도다”라며 멋쩍어 했다.

그런데 이번 크리스틴은 또 다르다. ‘오유’이 아닌 ‘팬텀’의 크리스틴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원작은 프랑스의 추리소설가 가스통 르루가 쓴 소설이다. 그러니까 같은 원작에서 태어난 다른 작품이다. 당연히 크리스틴도 닮은 듯 다르다.

“작품부터가 너무 다르다. 처음엔 낯설어서 힘이 들었다. ‘오유’의 크리스틴이 여성스럽고 청초하고 가련한 쪽이라면, ‘팬텀’의 크리스틴은 활달하고 똑똑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헤쳐 나갈 줄 아는 사람이다. 저쪽이 공주라면 이쪽은 사람이랄까. 좀 더 인간적인 크리스틴?(웃음)”
주인공인 팬텀도 다르게 그려진다. 김소현에 따르면 ‘오유’의 팬텀이 공포와 신비감에 무게가 실렸다면, 이번 팬텀은 좀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같은 팬텀’이다. 김소현은 “처음 대본 리딩을 할 때 팬텀이 말이 너무 많은 데다 농담까지 해서 놀랐다”고 했다. 실제로 뮤지컬 ‘팬텀’에서는 ‘오유’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팬텀의 어린 시절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 크리스틴 독점배우의 15년 내공에 거는 기대

‘팬텀’에는 김소현의 남편 손준호가 필립 드 샹동백작으로 출연한다.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훈남 귀족청년 역이다. 손준호는 ‘오유’에서도 샹동백작과 동일인물인 라울 역을 맡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소현에게 프러포즈할 수 있었다.

“아우! 정말 같이 안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지금까지는 같은 작품을 하더라도 서로 다른 날에 공연했다. 제대로 같이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 망했다’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연습을 하면서 김소현 본인도 놀랐단다. 샹동백작이 무릎을 꿇고 장미를 건네는데 남편이 아니라 다른 남자로 보였던 것이다. 김소현은 그제서야 “김치찌개 때문에 엎고 싸워도 이 작품은 할 수 있겠다”라며 안도했단다.

김소현은 ‘팬텀’ 첫 연습이 시작되기 전 손준호와 약속을 했다. ‘호칭은 서로 ○○씨로 부를 것’, ‘가급적 연습실에서는 대화하지 않을 것’, ‘회식자리는 따로 갈 것’ 등이 포함된 지침서를 남편에게 건넸다. 김소현은 “10가지 지켜야 할 경계를 마련해 드렸으나 영 안 지키고 계신다”며 웃었다.

뮤지컬 배우 김소현. 스포츠동아DB


뮤지컬 ‘팬텀’에서 김소현이 아끼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오페라극장 지하 미궁에서 팬텀과 크리스틴이 피크닉을 하는 장면이다. 어린 팬텀을 위해 엄마가 마련해 준 장소다. 이곳에만 오면 김소현은 눈물이 멈출 수가 없다. 지금은 나오는 대로 둔다.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가는 장면에서는 연출자가 자제를 요구할 정도로 ‘벅벅’ 소리를 지른다. ‘연습 때 갈 데까지 가 봐야 한다’는 김소현의 연기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가면서 감정을 깎고 또 깎는다. 그래야 막이 올라갔을 때 감정과 연기, 노래를 모두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음악도 무대도 화려하고 좋지만, 분명 가슴을 울리는 작품입니다. 팬텀과 크리스틴의 아픔과 기쁨을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틴 전문배우’를 넘어 ‘크리스틴 독점배우’의 경지에 오른 듯한 김소현. 누군가는 크리스틴의 아름다움을, 누군가는 크리스틴의 청순함을, 누군가는 활달함과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소현이 아니라면 그 누가 있어 크리스틴의 우글쭈글한 아름다움의 진짜 삶의 결을 꺼내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15년은 그런 시간이다. 돈과 분칠만으로 다다를 수 없는, 진정한 우아함이 그러한 것처럼.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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