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 두산 양의지 “진짜 ‘곰탈여우’는 감독님, 속을 모르겠어요”

입력 2016-11-2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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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양의지가 잠시 겨울잠을 깨고 나와 카메라 앞에 섰다. 수줍게 포즈를 취한 그는 2016 한국시리즈 우승 뒷이야기와 함께 그의 진짜 속마음을 내비쳤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둥글둥글한 몸태, 서글서글한 눈매, 그리고 무뚝뚝한 인상. 여러 수식어가 말해주듯 그는 타고난 곰의 관상을 지녔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는 순간, 한 마리 곰은 꼬리 달린 여우로 변신해 경기 흐름을 한손에 움켜쥔다. 이솝우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두산 포수 양의지(29)다.

두산의 2016년 통합패권 영광이 ‘판타스틱4’라 불리는 막강한 선발진의 손끝에서 출발했다면, 그 마지막은 양의지의 미트에서 완성됐다.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양의지는 노련한 경기운영과 허를 찌르는 볼 배합으로 팀을 정상자리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KS) 우승의 순간까지 미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안방마님이자 호쾌한 방망이로 타선을 진두지휘했던 우승의 주역. 2016 KS MVP 양의지를 22일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두산 양의지.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육아가 야구보다 어렵더라구요”


-근황이 궁금하다. 우승 감사인사를 돌리느라 바빴을 텐데.

“일주일동안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감사인사를 드렸다. 지금은 얼추 마무리됐다. 축하인사도 많이 받았다. 특히 은사이신 경찰야구단 유승안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께서 전화를 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


-얼마 전 딸이 태어났다고 들었다.

“그 덕분에 육아에 열중하고 있다. 9월10일에 딸이 태어났다. 이제 70일 정도 됐는데 너무 예쁘다. 아침에 일어나 밥도 짓고, 트림도 시키고, 기저귀도 갈아준다. 보통 일이 아니더라. 야구보다 훨씬 어렵다. 가끔은 조용히 운동 나가고 싶을 때도 있다.(웃음)”


-아직 몸만들기엔 들어가지 않았나.

“이제 시작 단계다. 기초 근육을 만들고, 보강운동도 하고 있다. 올해 부상이 두 차례나 있었다. 내년 시즌 재발 방지를 위해 내구성을 다지려고 노력 중이다.”


-한국시리즈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사실 KS 앞두고 정말 긴장이 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지난해보다도 더 떨리더라. 때문에 후배들 보기가 민망했다. 긴장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1차전 직전엔 일부러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경기에 들어가니까 긴장이 풀리더라.”


-밖에서 보기엔 다소 쉬운 우승으로 비쳤다.

“전혀 그렇지 않다. 플레이오프를 보면서 NC 투수들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쉽게 점수를 뽑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우리 투수들에게 이야기했다. 조금만 버틴다면 타자들이 분발해 꼭 승리를 만들겠다고. 다행히 1차전을 잡으며 시리즈가 잘 풀렸다.”


-주전포수가 본 KS는 어땠나.

“완벽했다. 예상대로 선발투수 4명이 너무 잘 던져줬다. 그리고 또 하나. 김재환이 그렇게 수비를 잘할지 몰랐다.(웃음) 사실 시리즈 전에는 ‘(김)재환이한테만 볼이 가지 않기를 빌었는데 엄청난 호수비를 펼쳤다.”


-지난해 KS 우승과는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길었다. 다들 경기에 빨리 나가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사실 우승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응원해주신 팬들께도 감사드린다.”

두산 양의지.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서울 와서 KS MVP까지…광주 촌놈이 출세했죠”


-지금과 달리 수년 전의 ‘신인 양의지’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은 선수였다.

“학창시절 내내 특출 나지 않은 선수였다. 뭐든 중간 정도만 걸쳤다. 모든 점에서 어설프기도 했다. 내놓을 게 없으니 프로에 8라운드(59순위)로 겨우 들어왔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사실 살을 빼려고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하도 뚱뚱해서 아버지께서 야구를 권하셨다. 그 전에도 동네야구는 하던 터라 거부감은 없었다. 그런데 야구를 하다보니 공부가 안되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축승회 때 이야기한 ‘광주 촌놈’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통합우승 축승회에서 ‘광주 촌놈이 서울에 와서 출세했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게 맞다. 아직도 서울에 처음 왔을 때가 기억난다. 무등구장에서만 야구를 하다가 잠실구장에 와보니 여기서 야구를 해야겠다 싶더라. 신인 입단 계약금이 30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연봉도 꽤 받는다. 촌놈이 출세하긴 했나보다.”


-2009년 경찰야구단 제대 이후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았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했다. 오더에 내 이름이 오르면 무작정 뛰던 시절이었다. 마스크를 쓰는 게 마냥 좋았다. 1군에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뻤다. 특히 홍성흔 선배를 비롯해 박경완, 진갑용 선배와 함께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2010년엔 생애 한번뿐인 신인왕에도 올랐다.

“포수로서 신인왕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영광이다. 포수 신인왕은 김동수(1990년), 홍성흔(1999년) 선배뿐이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요새는 내가 신인왕 출신인 점을 많이들 모르시더라. 벌써 잊혀진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두산 양의지(왼쪽)-김태형 감독. 스포츠동아DB



● “진짜 ‘곰탈여우’는 김태형 감독님”


-양의지가 생각하는 포수란 무엇인가.

“감독의 분신이다. 그리고 그라운드 위의 리더이자 팀의 중심이다. 경기에 들어가면 선수 중에선 가장 의견을 많이 내는 자리가 포수다. 생각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감독의 분신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과 조화가 중요할 듯하다.

“김태형 감독님이 오신 뒤로 ‘신뢰’가 계속해서 쌓이는 느낌이다. 감독님은 나를 믿고 사인 대부분을 맡기신다. 나 역시 이제는 벤치에서 사인이 안 나오는 경우가 편하다.”


-김 감독과 인연은 언제부터였나.

“사실 감독님이 배터리코치로 계실 때 고등학생이던 나를 눈여겨보셨다. 신인드래프트에서도 지명을 추천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감독님께선 ‘너 내가 뽑은 거 알지?’라며 말씀하시곤 한다. 입단 뒤에도 정말 예뻐해 주셨다. 지금도 감사드리는 건 신인이던 나를 1군 스프링캠프에 데리고 간 사실이다. 그때 강인권~홍성흔~용덕한 같은 대선배들이 많았는데도 1군 캠프에 동행시켜 주셨다.”


-김 감독으로부터 어떤 점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포수로서의 자세를 지적해주신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듣는 조언이 많다. 특히 포수는 자신감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꼭 하신다. 그리고 감독님 스타일이 놀 땐 놀고, 할 땐 하자는 주의다. 그래서 뒤끝 없이 야구장 안에서만 가르쳐주신다.”


-김 감독과 양의지를 두고 ‘곰탈여우’라는 표현을 쓴다. 누가 더 곰탈여우인가.

“감독님이시다. 가끔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더라. 속을 쉽게 알 수가 없다.”


-이제는 후배들도 여럿 거느리는 선배가 됐다.

“우리 팀 후배들에게 빚이 많다. 내가 다쳤을 때마다 빈자리를 잘 채워줬다. 2013년엔 (최)재훈이가 가을야구에서 맹활약했고, 올해엔 (박)세혁이가 부상 공백을 메워줬다. KS MVP 중 50%는 동생들의 몫이다.”


-후배들이 잘하니 경쟁의식도 생길 듯 하다.

“동생들한테 해주는 말이 있다. 나도 너네한테 밀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한다고. 농담도 던진다. 형이 앞으로 몇 년 정도만 더하겠다고.”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여기저기서 ‘두산 왕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5연패는 해야 왕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몇 년은 더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주장을 해보고 싶다. 이전까지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요새는 주장 욕심이 조금 생겼다.(웃음)”


● 두산 양의지


▲생년월일=1987년 6월 5일

▲출신교=송정동초~무등중~진흥고

▲키·몸무게=179㎝·85㎏(우투우타)

▲프로 입단=2006년 두산 입단(2006년 신인드래프트 2차 8R 59순위)

▲프로 경력=두산(2006년)~경찰야구단(2008~2009년)~두산(2010년~현재)

▲2016년 연봉=4억2000만원

▲2016시즌 성적=타율 0.319(332타수 106안타), 22홈런, 66타점, 66득점

▲수상 내역=2010년 신인상, 2014~2015 포수 골든글러브, 2016 한국시리즈 MVP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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