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차우찬은 4년 총액 95억원의 거액을 받고 LG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LG에 적응을 잘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26일 잠실구장에서 포즈를 취한 차우찬. 잠실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차우찬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스토브리그가 자신으로 인해 너무 시끄러워지다보니 ‘빨리 해외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최종 결정은 국내 잔류였다. 그리고 원 소속팀인 삼성이 아닌 LG와 4년 총액 95억원이라는 대형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이 결정으로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차우찬이 LG로 이적하기 전, 삼성이 그에게 제시한 계약조건(100억원 이상, 2년 뒤 해외진출 적극 지원)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LG가 준 95억원이 축소 발표라는 얘기부터 삼성이 차우찬에게 홀대했다는 얘기까지 출처가 불분명한 갖가지 ‘말들’이 생산돼 쏟아져 나왔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어떤 게 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직접 차우찬에게 진실을 듣기로 결정했다. 26일 잠실구장에서 마주한 그는 차분하게 그동안의 스토리를 털어놨다.
LG 차우찬. 잠실|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과분한 계약이라는 거 안다…난 운이 좋은 선수”
-FA 계약 축하한다. 연말연시이기도 하고 정신없이 지냈겠다.
“여기저기 많이 연락이 왔다. 축하도 많이 받았고, 욕도 많이 먹었다.(웃음)”
-대형계약을 맺었다. 예상은 했었나.
“너무 많이 받았다. 내 통산 성적이나 커리어를 생각하면 나에게 과분한 계약이라는 것을 안다. 운이 좋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정말 좋은 선배들, 좋은 투수들이 있는데 그 위에 내 이름이 있는 게 죄송한 마음도 있다. 그렇다고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고 책임감이 생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런 미래를 그려본 적 있나.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꿈도 못 꿨다. 풀타임 선발을 뛰면서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을 줄 몰랐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그렇게 형성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야구를 시작한 게 키가 커서라고 들었다.
“반 애들 중에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있었다. 야구부 코치님이 맨 뒤에 앉은 애들에게 야구할 사람 손들라고 하더라. 그때 수영부를 하고 있었는데 수영이 재미없었다. 그날 점심 먹고 야구하러 운동장에 나가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때가 1996년이니까 20년째다.”
-전국에서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던 걸로 안다.
“군산에서는 잘 했다.(웃음) 또래 중에서는 가장 잘 했는데 중학교 때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야구를 했던 것 같다. 시키니까 하는 정도? 고등학교(군산상고) 가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계기가 있었나.
“그때부터는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돈도 벌어야했고, 프로를 못 가면 대학을 가야하는데 둘 다 못 가면 야구를 그만둬야하니까 위기감이 생겼다.”
-어릴 때 포지션은 뭐였나.
“계속 투수였다. 왼손잡이는 다 투수 시키니까 그랬던 것 같다. 다른 포지션은 외야수도 하고, 1루수도 했는데 거의 투수했다. 방망이는 못 쳤다.(웃음)”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굉장히 높은 순위로 뽑혔다. 당시 차우찬이 삼성에 간 건 선동열 전 감독의 요청 때문이라던데….
“입단하고 나서 ‘너 아닌 다른 선수를 뽑으려고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웃음) 그때 키(184㎝)는 컸는데 몸무게가 69~70㎏밖에 안 나갔다. 최고 구속도 138㎞ 정도였다. 삼성에 와서 2년차 때 키(187cm)도 크고, 살(80㎏)도 많이 붙으면서 구속이 150km까지 오른 거였다. 당시 군산상고 감독님이 김성한 감독님이었는데, 선동열 감독님께 ‘좋다’고, ‘한 번 보라’고 추천하셨던 걸로 안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했다. 선 감독님은 날 뽑아주셨고 기회도 많이 부여해주셨다.”
-1차 지명은 구단이 대하는 태도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신인지명 때도 그렇고, FA 때도 그렇고 야구인생 전환점에서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는 것 같다.
“아까도 말 했지만 그런 부분에서 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신인 시절 차우찬.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혹독했던 프로생활…그 시간 통해 많이 배웠다”
-기대를 받고 프로에 입단했지만 3년 동안 1승도 없었다.
“그렇다.(웃음) 입단하기 전 12월 한 달간 푹 쉬었다. (신인투수가?)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푹 쉰 뒤에 1월 스프링캠프에 가서 무작정 세게 던졌다가 부상이 왔다. 그것 때문에 3년간 재활했다. 그래도 그때 1, 2군을 오가고 재활하면서 선배들의 모습도 보고 배운 점이 많다. 덕분에 4년차 때부터 쭉 1군에서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2010년부터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데뷔 첫 10승도 처음하지 않았나.
“그때도 시즌 초에는 1군에 못 올라갔다. 스프링캠프 때 너무 열심히 뛰다가 앞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됐다. 4월까지 2군에서 재활을 하고, 1군에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어깨가 아프더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한 달간 양일환 코치님과 1대1로 훈련을 했다. 이후 1군에 올라왔는데 시즌 끝날 때까지 안 아프고 잘 던졌다. 양 코치님께 감사한다.”
-2011년도 잘 했다.
“아쉬운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2011년에도 전반기는 잘 했는데 풀타임 선발을 처음 하다보니까 후반기 몸이 안 좋았다. 결국 개막전을 선발로 시작하고, 한국시리즈는 중간계투로 투입됐다. 당시 류중일 감독님이 시리즈 직전에 감독실로 따로 불러서 ‘선발에서 빼는 게 아니라 선발을 한 명 더 붙여서 갈 생각’이라고 알려주셨다. 1+1 선발이 그렇게 탄생한 거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덕) 매티스가 아프면서 내가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차우찬은 이날 3이닝 5삼진 퍼펙트로 한국시리즈 1차전 MVP를 차지했다.)
-잘 나가는 듯 했는데 2012년 부진했다.
“내가 허튼 짓을 했다.(웃음) 2011년 후반기가 안 좋아서 다이어트를 하고, 투구 폼도 바꿨다. 당시 투수코치였던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님이 ‘네가 원하면 해봐라. 하지만 분명히 시즌 때 안 좋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는데 내가 말을 안 들었다. 시즌 개막전 선발로 나갔는데 역시나 안 되더라. 힘도 없고, 투구밸런스도 안 맞았다. 전반기 ‘폭망’하고(웃음), 2군에 오래 있다가 후반기부터 조금씩 좋아졌다.”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인지 2013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다시 10승을 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7경기에서 1, 5차전(2~4, 6~7차전 5경기에서 12.2이닝 2실점, 방어율 1.42) 빼고 등판해서 팀 우승에 기여를 했다.
“그때도 6선발과 중간계투를 왔다 갔다 했다. 2012년에 너무 못해서 한국시리즈, 아시아시리즈 끝나고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준비도 잘 했고, 무엇보다 팀에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2015년과 2016년은 풀타임 선발로 뛰면서 선발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올해만 해도 사실 스프링캠프에서 당한 부상 때문에 너무 쉬어서 실패할 줄 알았다. 지난해 프리미어12 다녀오고,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훈련소까지 다녀와서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좀더 많이 훈련하려다가 결국 스프링캠프 때 부상이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4월을 포기하더라도 두 달 정도 쉬었으면 빨리 돌아올 수 있었는데 FA이고, 개막전에 나서고 싶어서 계속 안 쉬었다. 그게 독이 됐다. 올 시즌은 안 될 줄 알았는데 김현욱 코치님, 김태한 코치님, 류 감독님이 ‘급하게 하지 말라’고 다독여주고, 끝까지 믿어주셨다. 덕분에 시즌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후반기는 정말 대단했다. 어떤 투수보다 컨디션이 좋았던 것 같다.
“후반기 잘 해서 10승을 했지만 많이 아쉽다. 팀이 9등 했으니까.”
차우찬은 “돈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LG와 맞았다”고 했다. “삼성에서 보여줬던 성실한 면을 선수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던 LG 송구홍 단장의 말 도 차우찬의 마음을 움직였다. 잠실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돈은 문제 아니었다…LG와 3박자 맞아떨어졌다”
-올 시즌을 마무리 하고 LG와 95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소문이 무성했는데 계약의 진실은 뭔가.
“음…. 그동안 소문에 직접 해명할 수도 있었지만 결정이 날 때까지 조용히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지금도 조심스럽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 올 시즌을 시작하기 전 내 스스로 정해놓은 FA 기준이 있었다. 첫 번째는 돈이 아니었다. 마음 가는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 컸고,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돈이 국내보다 적을 게 분명한 해외에 나가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해외 진출이 생각보다 잘 안 됐다.”
-메이저리그와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뭐가.
“처음부터 준비했던 게 아니라 급하게 하다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나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조건도 스플릿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따로 체결해 보장조건이 다른 계약)이었고…. 어차피 돈은 생각 안 했기 때문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오)승환이 형, (김)현수, (강)정호가 만류했다. 스플릿계약으로 가면 개런티 보장도 안 되고, 스프링캠프부터 라커룸도 따로 써야한다고 했다. 마음만 있었지 그런 자세한 부분을 몰랐다. 종합적으로 고민하다가 미국을 포기했다. 일본도 함께 알아봤는데 그 쪽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오치아이 코치님이 ‘한국에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그 돈 받고 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국내에 남기로 결정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때문에 미국을 안 갔다는 얘기도 있다.
“에이전트인 김동욱 대표(스포츠인텔리전시)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협상을 하면 WBC 출전 여부를 첫 번째로 물었다고 했다. 미국에 오면 루키니까 WBC는 안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난 처음부터 대표팀은 간다고 말을 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었다. 계약조건이 크게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대표팀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국내에서 LG와 삼성이 영입전쟁이 벌어졌다.
“해외진출을 꾀하면서 삼성, LG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돈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진행 상황만 알려드렸다. 감사하게도 두 구단이 모두 내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을 제시해주셨다. 오해를 정말 풀고 싶은 게 삼성과 불화가 있어서 옮겼다고 했는데 전혀 아니다. 난 11년간 삼성에서 뛰면서 연봉협상에서 트러블이 한 번도 없었다. 계약 전까지도 김한수 감독님, 김태한 수석코치님과 마지막까지 통화를 했다. 삼성에 있으면 스스로 안주할 것 같았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었고, LG가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셔서 팀을 옮겼다.”
-LG 송구홍 단장은 차우찬에 대해 ‘지금이 최고가 아니라 정점을 향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 부분이 감사하다. 난 특급투수가 아니다. 그런데 송 단장님이 ‘앞으로 LG가 우승에 도전하고 싶은데 와주면 좋겠다. 야구는 걱정 안 한다. 성적보다는 그동안 삼성에서 보여줬던 성실한 면을 선수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삼성에 있으면서 한 눈 안 팔고 야구만 했다. 야구장에서는 항상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부분을 인정해주신 것 같아 마음이 움직였다. 물론 삼성도 최선을 다해주셨다. 그런데 나에겐 ‘100억원+a’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솔직히 LG로 오면서 삼성보다 돈을 적게 받았다. 만약 돈이 중요했다면 삼성에 남았을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 LG와 맞았다고 보면 된다.”
-잘 알고 있겠지만 삼성도 차우찬을 꼭 잡고 싶어 했다.
“삼성에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 삼성에서 FA 선수를 잡기 위해 이만큼 공을 들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안다. 구단이 직접 얘기하면 부담이 될까봐 (윤)성환이 형, (오)승환이 형, 정현욱 코치님에게 부탁해서 ‘마음 좀 돌려 달라’고 하셨다는 것도 안다. 김한수 감독님도 일본 오키나와에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그래서 뿌리치고 나오기가 정말 힘들었고 마음도 아팠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걸 택하고 싶었다.”
LG 차우찬. 잠실|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매년 평균 6이닝 이상·30경기 이상 출전 목표”
-차우찬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 중에 하나가 내구성이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도 늘 묵묵히 공을 던졌다. 올해도 24경기에서 6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건 4번뿐이다. 7이닝 이상을 던진 것도 11번이나 된다.
“삼성에서 몸 관리를 잘 해주셨다. 선수는 힘들다고 말을 잘 안 하니까 처음부터 무리가 되지 않도록 알아서 휴식을 주셨다. 그 덕분인 것 같다.”
-스스로도 몸 관리를 굉장히 잘 한다고 들었다.
“잠을 많이 자는 편이고, 술도 시즌 때는 안 마신다. 담배는 원래 안 했다. 그런 부분이 빨리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년부터는 LG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
“최근 LG를 보면 2010년, 2011년 삼성 느낌이 난다. 설렌다. 새로운 팀에 오니까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생긴다. 팀 적응을 잘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나.
“안 아픈 게 목표다. 아프지만 않으면 안주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선발로테이션만 잘 지키면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인 숫자는 생각 안 하고 있는데 평균 6이닝 이상, 30경기 이상 출전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면 안 아프고 한 시즌 잘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은 대구와 서울을 오가고 있다. 대구 집을 정리하면,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다. 운동은 계속 하긴 했는데 3개월 동안 너무 정신없이 보내서 걱정된다. 1월 초 LG 시무식 끝나면 괌으로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훈련할 계획이다. WBC 일정에 맞춰서 몸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려고 한다.”
LG 차우찬. 잠실|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LG 차우찬
▲생년월일=1987년 5월 31일
▲출신교=군산초~군산남중~군산상고
▲프로 입단=삼성(2006년~2016년)~LG(2017~)
▲2016년 성적=24경기 12승6패 방어율 4.73(152.1이닝 80자책점), 65볼넷, 120삼진 ▲통산 성적=353경기, 70승48패, 방어율 4.44(1068.1이닝 527자책점), 519볼넷, 933삼진
▲국제대회 경력=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제1회 프리미어12 야구 국가대표
잠실 |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