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ML이 뭐길래…꽃길 대신 흙길 선택한 선수들

입력 2017-01-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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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균이 택한 메이저리그 도전의 길은 꽃길일까, 흙길일까. 그간 숱한 선수들이 미국 무대를 두드렸지만, 꽃길을 걸은 이는 많지 않다. 강정호(왼쪽)와 이대호 정도가 손에 꼽히는 성공케이스였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프리에이전트(FA) 황재균(30)이 메이저리그(ML) 도전을 선언했다. 원소속팀 롯데가 파격적 조건을 내놓았지만, 황재균은 스포츠동아와 통화에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며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라도 뛰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황재균 이전에도 보장된 꽃길을 마다하고 불투명한 흙길을 선택한 한국인 선수들은 많았다. KBO리그의 ML 도전사를 살펴본다.

보스턴 시절 이상훈.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꽃길 대신 꿈을 좇은 원조 이상훈

KBO리그라는 그물을 찢고 더 넓은 바다로 나선 선수를 거론하자면 ‘야생마’ 이상훈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LG 이상훈은 1997시즌 후 ML 진출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이어 보스턴이 11월말에 LG측에 임대료 250만 달러를 주기로 하면서 임대계약을 체결해 일사천리로 ML 도전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 ML 사무국에서 “보스턴과의 독점적 임대계약은 다른 구단에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러면서 모든 팀이 참가하는 공개테스트를 거쳐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훈은 미국으로 건너가 2차례 공개테스트에 나섰다. 공개입찰에서 최고액을 써낸 구단은 역시 보스턴. 그런데 낙찰 금액은 당초보다 훨씬 줄어든 60만 달러(당시 약 8억3000만원)였다. 그 전해에 현대가 쌍방울 포수 박경완을 영입할 때 트레이드머니가 9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LG와 이상훈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LG는 자매결연 관계에 있던 일본 주니치 구단과 협상해 2억엔의 조건에 임대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진출한 이상훈은 2년 후 다시 ML 무대에 도전하는 우회작전을 썼다. 3년간 최대 총액 535만 달러에 보스턴 유니폼을 입은 이상훈은 2000년 ML 마운드에 서는 꿈을 이뤘다.

시카고 시절 임창용.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ML 도전 실패의 역사

이상훈의 빅리그 통산성적은 9경기에 등판해 11.2이닝을 던진 것이 전부였다. 한국과 일본 무대 활약상을 생각한다면 초라한 성적표. 그러나 이상훈의 도전은 KBO리그 후배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2001년 7월 한미선수협정이 개정되면서 정식으로 포스팅시스템이 도입됐다. 그러나 ML이 보는 한국은 야구의 변방국일 뿐이었다. 두산 마무리투수 진필중이 2001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도전에 나섰다가 ‘무응찰’로 굴욕을 맛봤고, 2002시즌 후 다시 도전했지만 최고액이 2만5000달러에 불과해 ML 도전을 포기했다. 임창용도 삼성 시절인 2002년 포스팅시스템에서 65만달러라는 금액이 나오자 ML 도전을 포기했다. 집념의 임창용은 훗날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2012시즌 후 시카고 컵스와 2년간 최대 500만달러의 조건(ML 승격시)에 계약하면서 ML 무대에 입성하는 꿈을 이뤘다. 그러나 2013년 빅리그 마운드를 밟고 6경기(5이닝)에 나섰을 뿐이었다.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국 무대에 진출한 1호 선수는 뜻밖에도 최향남이었다. 2009년 롯데는 최향남이 ML 무대에 도전하려는 마음이 강하자 조건 없이 풀어주기로 했다.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최고낙찰가를 세인트루이스가 써낸 101달러(약 11만원)였지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향남은 트리플A에서 호성적을 냈지만 끝내 ML 마운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LA다저스 류현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류현진과 강정호의 성공, 그리고 황재균의 도전

KBO리그 출신 선수들에게 유독 엄격했던 ML 포스팅시스템은 2012년 말 류현진으로 인해 빗장을 풀었다. LA 다저스가 한화 소속이던 KBO리그 최고투수 류현진을 획득하기 위해 무려 2573만7737달러33센트라는 거액을 써내 단독협상권을 따내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류현진은 2013~2014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내며 ML과 KBO리그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그러자 KBO리그 선수들의 ML 도전 러시가 다시 이뤄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 넥센의 강정호는 포스팅 금액 500만2015달러에 낙찰되면서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었다. 2015년 말에는 박병호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1285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미네소타에 둥지를 틀었다.

FA 자격으로 빅리그에 입성하는 선수들도 늘고 있다. 김현수는 지난해 말 FA 자격을 얻은 뒤 볼티모어와 2년 총액 700만달러에 계약했다. 한국과 일본무대를 평정한 오승환은 1+1년 최대 1100만달러의 조건에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했다.

그러나 여전히 ML은 KBO리그 출신 선수들에겐 험난한 도전의 무대다. 2014년 2월 윤석민은 볼티모어와 3년간 보장액 557만5000달러(옵션 750만 달러 포함 최대 총액 1307만5000달러)에 계약했지만 빅리그에 오르지 못하고 1년만에 KIA로 돌아왔다.

2014시즌 후 SK 김광현과 KIA 양현종은 포스팅 금액이 기대 이하여서, 롯데 손아섭과 황재균은 2015년 말 포스팅시스템에 나섰지만 무응찰로, ML 도전을 포기해야만 했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지난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뒤 다시 ML의 문을 두드리다 결국 KBO리그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과 일본 무대를 평정한 이대호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시애틀과 스플릿계약(ML 진입시 400만 달러)을 맺으며 가까스로 스프링캠프 초청선수로 참가했다. 돈과 명예, 안정적 미래가 보장된 꽃길을 마다하고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스프링캠프에서 경쟁을 통해 바늘구멍을 통과하며 ML 개막전 로스터에 진입했다.

ML이 뭐길래…. 지난해 무응찰의 굴욕을 딛고 ML 재도전에 나선 황재균. 꽃길 대신 흙길, 돈보다 꿈을 좇았던 이대호의 사례가 그에겐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작용할 듯하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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