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9) kt 정명원 투수코치 “이제 막내라는 핑계 없다”

입력 2017-01-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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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투수코치는 kt에서 3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2년간 팀이 최하위(10위)를 기록한 데 따른 책임감이 크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 이겨내야 1군 무대에서 일어설 수 있다”며 책임감을 보였다. 스포츠동아 DB

3년 전 겨울, 부푼 꿈을 안고 신생팀에 발을 들였지만 시간은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책임진 마운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물렀고, 팀의 기둥인 마운드가 흔들리자 결국 팀은 2년 연속 최하위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세 번째 1군 시즌을 앞둔 지금, 홀로 남았다는 책임감에서였을까. kt 정명원(51) 투수코치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되게 들릴 만큼 단단했다.

kt는 지난해 시즌이 끝나기 무섭게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성적 부진이 이유였다. 감독은 물론 단장과 사장이 모두 팀을 떠났고, 1·2군 코치진 역시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이가 떠난 건 아니었다. 정 코치는 새 시즌에도 kt 마운드를 책임진다. 그는 “다 떠나고 나만 남았다.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며 목소리도 높였다. 지난 소회와 2017년 구상을 1인칭 시점으로 구성했다.


● “스승이 엄하지 않으면 스승이 아니다”

할 일은 태산인데 걱정부터 앞선다. 예년보다 스프링캠프 기간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벌써 따뜻한 나라로 건너가 몸을 풀어야하지만 전지훈련 출발까지 아직 열흘 넘게 남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일정부터 훈련방법 계획은 물론 선수들의 컨디션까지 중간 중간 체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쉴 틈이 많지는 않다. 짬을 내 강원도에서 군 복무 중인 둘째 아들만 잠시 보고 왔다.

물론 캠프 기간 축소가 마냥 부정적이라는 건 아니다. 프로로서 스스로 몸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좋은 징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걱정을 숨길 수는 없다. 팀에 젊은 선수들이 많은 만큼 이들이 올겨울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현재로선 선수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2년은 어려웠다. 투수코치로서 좋은 자원을 길러내지 못한 점이 우선 큰 잘못이다. 변명은 필요 없다. 그러나 선수들에게도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쓴소리’를 조금 하고자 한다. 젊은 선수들이 조금 나약하지 않았나 싶다. 다른 팀에 가면 4~5선발을 맡을 투수들이 여기서 중책을 맡는다. 어찌 보면 기회가 빨리 그리고 쉽게 찾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내 눈엔 간절함이 부족해보였다. kt에 와서 어린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은 ‘부딪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몸으로 더 부딪히며 경험을 쌓아야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 요샌 어른 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꼰대’ 이야기를 듣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승이 엄하지 않으면 스승이 아니다.’

kt 정명원 코치. 스포츠동아DB



● “눈길 가는 제자는 관심에서 조금 멀어진 투수들”

나 역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타고난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졌던 만큼 몇 배로 노력했다. 중학교 때 투수로 야구를 시작해 내야와 마운드를 전전했다. 다행히 대학 끝 무렵에 마운드에 다시 오르며 전환점이 됐다. 1989년 태평양 입단 후 당시 풍토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나왔다. 데뷔 첫해 11승과 함께 6세이브를 따낸 경험은 훗날 선발과 마무리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물론 ‘투수 정명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이 1996년 가을이다. 10월20일 한국시리즈 4차전. 당시 마무리였던 내가 선발로 나왔다. 1승2패로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한 타자, 한 타자를 상대하며 무안타 무실점이 조금씩 늘어갔다. 결국 9회까지 상대타선을 틀어막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포스트시즌 첫 노히트노런(9이닝 29타자 무안타 3사사구 무실점)을 달성했다. 그래도 선수 정명원을 추억할 수 있는 기록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게 참 다행 아닌가.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 노히트노런 당시 정명원. 스포츠동아DB


2000년을 끝으로 은퇴하고 2002년부터 여러 곳에서 선수들을 가르쳤다. 현대와 넥센에서 2군 투수코치를 한 때문이지 몰라도 관심을 덜 받는 투수들에게 늘 정이 간다. 기억에 남는 제자는 두산 유희관과 롯데 노경은, 그리고 넥센 강윤구다. 2군에 오랫동안 머물던 (유)희관이와 (노)경은이는 숱한 노력 끝에 1군에서 빛을 발해 기특하다. (강)윤구는 좋은 볼을 갖고 있음에도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해 아쉬웠다. 팀 2선발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좌완이다.


● “이젠 막내라고 봐주지 않는다”

해가 바뀌니 1군 코치들 대부분이 떠나고 나만 남았다. 어깨가 무겁다. 아픔을 딛고 힘차게 출발해야하지만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 우선 중요한 문제는 선발진 구축이다. 1선발을 맡을 외국인투수부터 확정되지 않아 아직 계산이 완벽하게 서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 모두의 걱정이다. 가뜩이나 올해부턴 외국인투수 3명이 2명으로 줄어든다. 현재 전력을 놓고 보면 다른 팀엔 믿을만한 외인선발 한둘은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일단 선발진은 외국인투수 2명과 지난해 좋은 모습을 보인 우완 주권과 좌완 정대현에게 기대를 건다. 문제는 남은 한 자리다. 캠프에 가서 봐야겠지만 여러 선수들을 후보로 둘 생각이다. 오른쪽은 엄상백과 고영표, 이상화 그리고 왼쪽은 심재민과 윤근영, 정성곤, 박세진 등이 예비후보다. 국내투수들이 남은 로테이션을 책임져줘야 한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점이 있다. 이제 바깥에선 더 이상 kt를 ‘막내’라고 봐주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 스스로 이겨내야 1군 무대에서 일어설 수 있다.


● 정명원 투수코치


▲생년월일=1966년 6월 14일

▲출신교=군산남초∼군산남중∼군산상고∼원광대

▲프로 경력=태평양(1989∼1999년)∼현대(1996∼2000년)

▲통산 성적=395경기 1093.2이닝 75승54패 142세이브 634삼진 방어율 2.56

▲지도자 경력=현대 투수코치(2002∼2007년)∼넥센 투수코치(2008∼2011년)∼두산 투수코치(2012∼2013년)∼kt 투수코치(2013년∼현재)

▲수상 경력=1994년 세이브 1위·골든글러브(투수)·미스터올스타, 1996년 세이브 1위, 1998년 방어율 1위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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