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문세영, 싱가포르서 ‘인생 2막’

입력 2017-02-0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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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룬 많은 것을 두고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문세영 기수가 렛츠런파크 서울의 말박물관에서 자신의 유니폼을 보고 있다. 사진제공 l 한국마사회

■ ‘한국경마 레전드’의 해외무대 도전

“세계 기수들과 경쟁 신선한 자극제
박태종 선배의 발자취 따라가겠다 ”

데뷔 15년차인 문세영(37) 기수가 불혹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17년 싱가포르에서 기수로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세영은 ‘주로의 황태자’로 불리며 통산 1337승을 달성한 한국 경마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국내무대에서 기수로서 누릴 것은 모두 다 누린 그가 그동안 쌓아온 화려한 경력을 뒤로한 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국제무대로 활동무대를 옮긴다.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은 호주, 일본, 남아공, 브라질 등 전 세계의 기수들이 모이는 만큼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싶다는 열정도 한몫했다.

그는 “내가 거쳐 간 경마장이라면 후배들이 진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자신의 도전이 다른 한국 기수들에겐 또 다른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인데다 한국에서 계속 편한 기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데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사실 기수 문세영의 해외진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해외에서 시작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카오에서 3개월간 기수 생활을 경험했다. 그는 “돈으로 가치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의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평가했다. 마카오는 경마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스포츠다. 주말마다 가족, 친구 단위로 경마장을 찾는 그곳의 문화는 문세영 기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우리도 앞으로 이런 경마문화를 가져야 한다. 부럽다”는 생각이 해외진출 결심의 또 다른 계기였다.

문세영 기수. 사진제공|한국마사회


2009년 문세영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다.

말의 뒷발질에 심장을 차여 정신을 잃었다. 그 충격으로 심장이 멈췄다.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살아났다. 천국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2009년의 그 사고는 문세영 기수에게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큰 부상을 입고 나면 말 타는 게 두렵진 않을지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았지만 그는 오히려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앞으로 기수 생활에선 이런 일은 더 없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 일을 계기로 경주할 때 부상의 두려움을 떨쳐 버렸고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그는 최고의 기수로 평가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선배 박태종 기수를 꼽았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많은 걸 이뤘다고 보일 수 있지만, 내 나름의 어려움과 아쉬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배부른 소리로 비춰질까봐 쉽게 주위에 털어 놓을 수도 없었다. 그 때마다 찾아가 조언을 구했던 대상이 바로 박태종 기수다. 힘들 때마다 진심으로 선배로서 문세영의 고충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위로해줬다.

51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통산 2000승을 달성한 박태종은 문세영으로부터 진심어린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선배였다.

이제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기수 인생을 시작하려는 문세영 기수는 “한 경기가, 그리고 1승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앞으로 박태종 기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기수로 성장하겠다”고 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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