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심판이 선수도 아닌 관중을 퇴장시켜도 되나

입력 2017-05-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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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5일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KIA-SK전 도중 주심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욕설을 퍼부은 관중에게 퇴장 명령을 내리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통상 회의·경기 진행자 질서유지권 인정
KBO 공식규칙도 심판에 퇴장 권한 부여

양 팀은 치열한 접전 끝에 정규이닝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8회부터 포수 뒤쪽 관중석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심판의 볼 판정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별로 크지 않게 불만을 토로하던 한 관중이 점차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는 아예 욕설을 섞어 주심을 비난했다. 주심은 이런 일이야 다반사라는 듯 마치 귀가 없는 사람처럼 경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하자 주심도 더 이상은 외면하기 어려웠다. 잠시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리고선 심판조장과 상의해 해당 관중을 경기장 밖으로 퇴장시켰다.

프로스포츠는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선수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생산자고, 팬은 멋진 플레이에 열광하는 소비자다. 생산자가 아무리 좋은 품질의 물건을 생산하더라도 소비자의 요구에 맞지 않고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그 물건은 더 이상 생산될 수 없다. 소비자 없는 생산자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스포츠는 팬들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프로스포츠에서 심판이 선수도 아닌 관중을 퇴장시킬 수 있을까?


● 야구장에도 있는 질서유지권

어느 회사에서 주주총회를 열었다. 그런데 상정된 안건에 반대하는 쪽에서 총회 진행을 방해하며 의장석 진입을 시도했다. 의장은 몇 차례 정회를 선언하며 원활한 진행을 모색했다. 그러나 총회는 원만히 진행되지 못하고 급기야 폭력사태로 비화했다. 의장은 진행요원을 시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총회장 밖으로 쫓아냈다.

야구장이 주주총회장으로 장소만 바뀌었지 상황은 비슷하다. 비슷한 장면은 국회 회의장에서도, 법정에서도 가끔씩 볼 수 있다. 또 각 종교의 총회장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통상 진행자에게 ‘질서유지권’을 부여하고 있다.


● 경기규칙에도 있다!

KBO의 경기규칙에도 이런 질서유지권이 명시돼 있을까? KBO 공식규칙 중 ‘심판원’에 관한 규정을 살펴보자. 9.01(e)에 따라 ‘각 심판원은 자기 판단에 따라 (1)운동장 경비원, 안내원, 사진담당자, 기자, 방송국 직원 등과 같이 직책상 경기장 입장이 허가된 사람들 (2)경기장에 입장이 허가되지 않은 관중이나 기타 사람들을 경기장으로부터 퇴장시킬 권한’을 갖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여기에서의 퇴장권은 경기가 이뤄지는 그라운드로부터 관중석이나 취재석 같은 그라운드 밖으로 퇴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예 관중석이나 취재석이 아닌 경기장 밖으로 퇴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할까? 경기규칙은 9.01(a)에서 ‘심판원은 공식규칙에 따라 경기를 관장하는 동시에 경기 중 경기장의 규율과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기장 내의 질서유지권을 심판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질서유지권은 선수나 코칭스태프 등 경기장 내에서 경기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기의 수요자인 관중이라도 경기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심판의 질서유지권의 대상이 된다. 즉, 포수 뒤쪽 관중석에서 욕설을 하던 관중은 심판의 질서유지권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쫓겨난 것이다.


● 규정이 없어도 질서유지권은 인정된다!

국회의 회의, 회사의 주주총회, 종교단체의 회의 등은 모두 그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에게 질서유지권을 부여하고 있다. 의장으로 하여금 회의를 공정하게 진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경기 진행을 위한 지시를 내리고 경고를 하며 반칙을 한 관계자를 퇴장시키기도 하는 권리’가 당연히 심판에게 주어져 있다. 명문의 규정 유무와 관계없이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심판에게 인정된 최소한의 권리인 것이다. 심판(Judge)이라는 단어가 괜히 정의(Justice)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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