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덕후가 재현한 신들의 황금주, ‘꿀술’을 아시나요?

입력 2017-05-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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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리(meadery:꿀술 양조장) 스타트업 ‘곰 세 마리’의 공동대표 유용곤(위) 씨와 양유미씨. 창립멤버인 유용곤씨가 제조를 맡고, 양 대표는 홍보 및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서울 신림동에 있는 ‘곰 세 마리’의 양조시설에서 병입과 라벨링을 마친 꿀술을 확인하는 유용곤 대표. 독학으로 익힌 양조기술로 상품용 꿀술을 완성하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스타트업 ‘곰 세마리’의 야심작

판타지 속 벌꿀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
계속된 시행착오 끝 3년 만에 최고 결과물
유명 셰프들도 인정…해산물과 궁합 좋아
유용곤 대표 “진해 벚꽃향 담은 꿀술 도전”

서구 파인 다이닝의 시각으로 우리 식재료를 재해석해 화제를 모은 조셉 리저우드 셰프. 4월 서울 한남동 라퀴진에서 진행했던 그의 테이스팅 행사에서 요리 못지않게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 이날 음식과 페어링된 옅은 황금빛의 술. 아이스 와인을 연상시키는 가는 병에 귀여운 곰이 그려진 낯선 라벨. 언뜻 화이트 와인을 연상시켰지만 맛은 달랐다. 깔끔한 단맛과 함께 은은하게 입안을 감도는 친숙한 향. 색다른 풍미에 놀라는 기자를 보고 테이스팅 진행자가 설명을 해주었다. “꿀로 만든 술이에요.”

‘곰 세 마리’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총 직원 3명의 스타트업(start-up)이 만든 100% 국내산 술이다. 포도주보다도 역사가 더 깊다는 ‘인류 최초의 술’로 불리는 꿀술(미드·mead)을 대학을 갓 졸업하거나 아직 재학 중인, 디자인 전공의 젊은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만들고 있었다. 첫 만남의 강렬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서울 신림동에 있는 그들의 사무실 겸 양조장을 찾아갔다.


● 판타지소설, 게임 마니아의 장난에서 시작

‘곰 세 마리’의 술은 우연히 맛을 보거나 알음알음 소문 듣고 연락해 온 사람들에게만 소량 공급하고, 인터넷 판매도 이제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유명 오너셰프들 사이에 이들의 꿀술은 제법 인기가 높다. 앞서 소개한 조셉 리저우드 셰프 외에 이찬오 셰프의 ‘샤누’,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 김봉수 셰프의 ‘21세기 서울’과 ‘안씨 막걸리’, 진성복 셰프의 ‘올리앤로렌스’ 등에서 ‘곰 세마리’의 꿀술을 내놓고 있다.

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꿀술 사업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술의 범람 속에서 우리 술의 가치를 높이려 도전에 나섰다’라는 멋진 출사표가 있을 것 같았지만 창업멤버이자 공동대표인 유용곤씨의 설명은 환상을 깼다.

“처음에는 정말 장난삼아 만들었다. 평소 자취방에 게임, 판타지소설 좋아하는 디자인과 동기들이 자주 모였는데, 2011년 쯤 ‘베어울프’나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꿀술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호기심에 일을 벌인 게 발단이 됐다.”

마침 자취방 동기들 중 유년시절 이탈리아에 살면서 꿀술 제조에 참여했던 ‘귀한 경험’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50만원 정도를 투자해 꿀을 비롯해 유리 카보이(액체보관용 원통), 비중계, 온도계 등을 구입해 술 제조에 들어갔다. 유용곤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마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노르웨이 대학생이 한번도 맛본 적 없는 막걸리를 만드는 상황”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각종 자료를 찾고, 도서관에서 양조학·발효학 서적과 관련 논문을 빌려 공부하고,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 소설과 드라마로만 접하던 꿀술의 실체에 다가갔다. “2014년 들어 우리가 ‘전설의 미드’라고 부르는 만족할 결과물이 나왔다. 그때부터 사업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들었는데, 이후 호기심에 벌인 크라우드 펀딩에서 700 만원 목표에 2000만원이 모이면서 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 제주 유채, 진해 벚꽃 향기 담긴 꿀술 도전

현재 ‘곰 세 마리’는 잡화꿀을 기본 베이스로 당도와 산미에 따라 오리지널(11.4도)과 스위트(9.45도) 두 가지를 제조하고 있다. 다른 발효주에 비해 꿀술의 제조과정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작은 차이에도 맛이 달라질 정도로 재료부터 공정까지 변화에 무척 예민해 섬세한 손길과 감각이 필요하다.

양유미 공동대표는 “아주 미세하게 들어가는 첨가물에도 향미가 크게 바뀌기 때문에 다른 술에는 보존을 위해 들어가는 첨가물도 넣을 수가 없다”며 “통상 100리터의 술을 만들려면 꿀이 40kg 이상 필요해 재료수급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곰 세 마리’의 꿀술을 운영한 레스토랑들은 특히 해산물과의 마리아주(술과 음식과의 궁합)를 높게 평가한다. 식전주로도 내놓기 좋다. ‘곰 세 마리’측은 은근한 단맛과 바디감이 제법 있는 특성을 살려 요즘 인기인 디저트 카페의 론칭도 생각하고 있다. 조금씩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이제 매출이나 수익에 신경을 쓸 때도 됐지만, 여전히 이들은 장사보다는 새로운 맛의 꿀술 개발에 더 깊고 열정적이다.

“어느 꽃이냐에 따라 꿀은 미묘하게 향미가 달라진다. 그동안은 잡화꿀을 기본으로 만들었지만 앞으로 진해의 벚꽃, 제주의 유채꽃 등 지역의 향기를 머금은 꿀술을 만들기 위해 지금 계속 실험해보고 있다.”

● ‘꿀술’이란

허니와인(honey wine)이라고도 한다. 쌀 보리 등의 곡물로 만든 술이나 포도주보다도 더 오래된 선사시대부터 즐긴 인류 최초의 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혼을 뜻하는 허니문(honeymoon)도 결혼식 이후 보름간 벌꿀술을 마신 것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판타지 소설부터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까지 다양한 작품의 단골 소재인 북구신화 속 베어울프와 천둥의 신 토르가 발할라에서 마셨다는 술도 꿀술이다. 고대에는 벌통에서 꿀이 천연효모에 의해 자연발효된 것을 채집해 마셨다. 요즘은 벌꿀에 2∼4배 정도가 되는 물을 넣어 살균한 다음, 효모를 섞어 2∼4개월 이상 두고 발효시키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제조법에 따라 단맛이 나는 것에서부터 발포성의 것까지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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