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마타하리, 관객들 마음을 훔치다

입력 2017-07-2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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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원치 않은 스파이 행위를 하게 되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여인 마타하리로 분한 차지연이 분장실에서 솔로곡 ‘돌아갈 수는 없어’를 부르고 있다.사진제공 ㅣ EMK뮤지컬컴퍼니

연출가 스티븐 레인 참여 극 완성도 보완
이야기가 살자 차지연·정택운 열연 빛나

2016년 초연되었던 뮤지컬 마타하리가 1년 만에 돌아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6월16일 개막해 8월6일 막공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1년 만에 돌아왔지만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프랑스 향수 냄새가 물씬거리고, 손에 묻어날 듯 강렬한 레드의 느낌은 그대로지만 확실히 더 고와졌다.

마타하리라고 하는 매혹적인 역사적 인물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입이 벌어질 만큼 멋진 무대세트로 초연 때 각광받았다. 무대세트와 조명이 워낙 도드라지다보니 작품에 부정적인 사람들로부터는 “볼 게 무대밖에 없더라”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실 초연의 경우 구멍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 진출을 노리고 만든 EMK뮤지컬컴퍼니의 야심작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곳곳에서 오버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재연에서는 확실히 힘을 뺀 마타하리를 만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뺄 곳은 빼고 들일 곳은 들였다. 연결고리가 느슨해 보이던 스토리의 나사를 몇 번 더 죄었다.

“이야기가 재밌어졌다” 싶었더니 과연 고수가 숨어 있었다. 영국 웨스트엔드의 베테랑 연출가 스티븐 레인의 등장이다. 드라마투루기로서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드라마투루기는 보다 재미있고 극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야기를 조율하고 매만지는 역할이다.

덕분에 마타하리라는 인물이 입체감을 얻었다. 매일 밤 파리 신사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던 무희가 왜 느닷없이 자신의 조국도 아닌(네덜란드 사람이다) 프랑스의 스파이가 되었는지, 상처받은 여인이 어두운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쌓아 올려왔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초연 때 박수를 받았던, 1917년 파리의 밤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세트는 여전히 근사하다.

아이돌그룹 빅스의 정택운(레오)은 자연스러운 여림과 어딘지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남자로 아르망을 표현했다. 정택운 아르망과 차지연 마타하리는 은근히 잘 어울렸다. 체급의 부조화가 가져다 준 조화라고 해야 할까. 마타하리가 숨 막힐 듯 섹시미를 뿜어낼 때 아르망은 귀여웠고, 아르망이 근육을 불끈거리는가 싶으면 마타하리가 가녀려졌다.

차지연은 그가 입은 붉은 드레스만큼이나 마타하리에 밀착되어 있었다. 남이 하면 과장을 그는 드라마로 만들어버리는 배우다. ‘내 삶이 흘러가’, ‘마지막 순간’ 두 넘버의 절절함은 잊을 수 없다. 차지연은 이제 관객이 얼마를 지불하든, 그 이상을 갖고 나올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배우가 된 것 같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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