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볼트’의 마지막 100m, 지구가 9초간 숨을 멈춘다

입력 2017-08-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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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탄환’ 우사인 볼트는 8월 4일부터 런던에서 개막하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볼트는 자신이 세계기록을 보유한 100m와 400m 계주에만 출전한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는 8월 4일부터 런던에서 개막하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볼트는 자신이 세계기록을 보유한 100m와 400m 계주에만 출전한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해피엔딩’ 준비하는 우사인 볼트

세계신 보유한 100m·400m계주만 출전
2관왕땐 최다우승 이어 15개 최다 메달新
7월 모나코 대회서 9초95…우승 호언장담

세계 1위 콜먼·게이틀린 등 황제에게 도전
한국판 볼트 김국영, 9초대 인생경기 각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그 남자.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뻗으며 번개를 연상하는 세리머니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남자.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가 육상선수로서 마지막 여정에 나선다. 영국 런던에서 8월 4일 팡파르를 울릴 제16회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다. 월드컵, 하계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메이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총 47종목(남24·여23), 약 200개국, 2000여 명의 선수들이 5만5000명 수용 규모의 런던스타디움에서 기량을 겨룰 올해 대회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번개’우사인 볼트의 은퇴무대이기 때문이다.

볼트는 자신이 세계기록(9초58)을 보유한 100m 레이스와 400m 계주에만 출전한다. 역시 세계기록(19초19)을 지닌 200m 레이스에 불참을 선언하면서 2013년 모스크바, 2015년 베이징에 이은 3개 대회 연속 3관왕의 위업은 이룰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다른 선수보다 큰 걸음으로 육상 트랙을 힘차게 내달릴 볼트의 마지막 질주는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선사할 전망이다.


● 볼트, 불멸의 신화로 남을 사나이

이미 볼트는 육상에서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업적을 썼다.

역대 세계육상선수권에서 가장 많은 우승(11회)을 경험했다. 2009년 베를린 대회를 시작으로 2013년, 2015년 3관왕(400m 계주 포함)에 올랐다. 2011년 대구 대회에서는 2관왕(200m·400m 계주)을 차지했다. 11번의 우승으로 미국 육상의 전설로 통하는 칼 루이스(우승 8회)를 훌쩍 넘어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세계육상선수권 최다 메달 기록을 노린다. 볼트는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오르기 직전인 2007년 오사카 대회에서 은메달 2개(200m·400m 계주)를 목에 걸었다. 지금껏 수확한 세계선수권 메달은 모두 13개다. 만약 런던에서 2관왕 등극에 성공한다면 1983년 헬싱키 대회부터 2007년까지 질주한 자메이카 출신의 여자 스프린터 멀린 오티(슬로베니아)의 기록(14개)을 넘어설 수 있다.

사실 볼트는 전문 100m 스프린터가 아니었다.

2005년부터 호흡을 맞춘 전담코치 글렌 밀스는 볼트의 신체조건 특히 195cm의 큰 키가 100m 종목에는 맞지 않다고 봤다. 볼트는 2007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100m 도전을 꿈꿨으나 밀스 코치의 반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도 볼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0m에서 출중한 성과를 보이자 종목을 추가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결국 신의 한수가 됐다. 100m 생애 첫 국제대회 기록은 10초03이었으나 2008년 자메이카 국내대회에서 9초76을 찍었다.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의 감동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림픽 남자육상 100m에서 당시 세계기록인 9초69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볼트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이자 진정한 인간탄환으로 자리매김한 순간이었다. 이듬해에는 베를린에서 지금껏 깨지지 않은 9초58을 찍었다.

이번 런던 대회에서 볼트는 어떤 결실을 맺을까.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7월 프랑스 모나코에서 열린 IAAF 다이아몬드리그에서 9초95로 예열을 마쳤다. 잔 부상에 시달렸던 시즌 초반에는 10초대 초반의 성적으로 불안한 인상을 남겼으나 시즌 랭킹 공동 7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볼트는 “영원토록 9초58의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내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는 세계 최강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기를 원한다”는 솔직한 바람을 전했다.

대회 개막을 이틀 앞둔 8월 2일에 벌어진 기자회견에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험의 힘이다. 수많은 대회에 출전하며 얻은 노하우가 있다”면서 우승을 장담했다.

볼트는 8월 5일 예선에 이어 6일 준결승 및 결승에 나선다. 유력한 대항마는 역시 런던대회를 끝으로 트랙을 떠날 저스틴 게이틀린(35·미국)이 손꼽힌다. 볼트와 나란히 올 시즌 9초95를 기록 중이다. 올 시즌 세계랭킹 1위(9초82) 크리스티안 콜먼(21·미국)도 볼트의 아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인생의 질주를 준비하고 있다.

자메이카 동료들과 나설 400m 계주는 대회 최종일인 8월 13일 펼쳐진다.

볼트는 그를 따라잡으려는 선수들과 경쟁하지만 진짜 무서운 적은 시간의 흐름이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선수도 세월과 나이라는 얼굴 없는 상대와 싸워서 이기지는 못했다.

국내 100m 최강자 김국영은 10초07의 한국기록보유자다. 세계 수준과는 아직 차이가 크지만 이번 대회 참가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사진제공|대한육상연맹

국내 100m 최강자 김국영은 10초07의 한국기록보유자다. 세계 수준과는 아직 차이가 크지만 이번 대회 참가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사진제공|대한육상연맹



● 김국영, 마의 9초대 기록 깰까?

IAAF 세바스찬 코 회장이 BBC, 더 타임즈 등 영국 유력매체들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볼트는 세계 단거리 육상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전 세계의 시선이 볼트를 향하지만 마냥 그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출 필요는 없다. 새로운 스타는 또 나온다.

우리 팬들은 김국영(26·광주광역시청)에게도 아낌없는 격려의 갈채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 김국영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면서 ‘육상 불모지’ 한국에 희망을 주고 있다.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10초16(당시 한국기록)을 찍은 김국영은 사실 이번 런던대회 출전이 불투명했다.

IAAF가 공지한 기준기록은 10초12였다. 0.04초를 줄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해냈다. 숱한 도전과 좌절을 반복한 끝에 6월 27일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10초07로 한국기록을 경신해 꿈의 무대에 나서게 됐다. 이틀 전 치른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준결승에서 10초13을 기록해 아슬아슬하게 놓친 티켓을 결국 거머쥐었다.

5번째 한국기록 경신이다. 기준기록 통과는 자세를 바꾼 덕을 봤다. 팔치기를 최대한 간결하게 하면서 보폭을 늘렸다.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점차 몸에 녹아들면서 효과를 발휘했다. 맞춤형 프로그램도 긍정적인 힘이 됐다.

100m 거리를 반복해 뛰는 것이 아니라 20∼30m 구간별로 쪼개 세트별 훈련을 했다. 후반 스피드의 유지와 스타트 교정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혹독한 훈련을 불평불만 없이 소화하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더 이상 허무한 레이스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지가 넘친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때는 10초37로 예선 탈락했다. 오랜 준비가 1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끝나버렸다. 그 실패의 슬픔을 알기에 김국영은 이번 100m 도전에 체격의 한계에 도전하는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고 뛴다.

김국영은 최근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출전에 만족하지 않겠다. 리우올림픽 등 많은 메이저대회에서 거듭 좌절했던 기억을 런던에서 반복할 수 없다. 준결승까지는 진출하고 싶다. 9초대 진입을 장담할 수 없지만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고 싶다”며 인생 레이스에 대한 부푼 각오를 전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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