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과할 때까지, ‘할머니들’이야기는 계속된다.

입력 2017-09-13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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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왼쪽사진 오른쪽)와 이제훈(왼쪽사진 왼쪽)이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로 추석 명절 극장가를 ‘눈물’로 적실 준비를 마쳤다. 영화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조정래 감독(오른쪽 사진) 역시 비슷한 메세지를 전한다. 사진제공|명필름·제이오엔터테인먼트

‘아이 캔 스피크’ 주연 나문희 &이제훈 ‘귀향2’ 감독 조정래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이 나이에 주인공, 나도 자신감 떨어져
배우의 긍지 갖게 해준 이제훈, 잘맞아”


오로지 아들 자랑을 낙으로 삼고 사는 욕쟁이 할머니. 어느 날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스무 살의 청춘으로 모습이 바뀌고, 좌충우돌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014년 설 연휴 개봉해 865 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한 ‘수상한 그녀’의 얼개다. 그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끈 주인공, 배우 나문희(76)다. 그가 올해 다시 명절 연휴 스크린을 장악할 기세다.

그가 선택한 무대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하는 영화에서 나문희는 구청을 드나들며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는 할머니 역을 맡았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9급 공무원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나문희는 “이 나이에 주인공을 한다는 그 기분은 아무도 모른다”며 “나 역시 워낙 자신감이 없고 소심하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아 누구 앞에서 말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말할 수 있다’고 외치는 그 말 하나에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수상한 그녀’와 같은 휴먼 코미디 장르다. 극장가 연중 최대 성수기인 추석 연휴가 올해는 열흘가량 이어지면서 가족단위 관객이 크게 늘어나는 시즌 특성상 다양한 연령층을 포괄하는 장르 역시 힘을 얻기 마련이다. 이미 ‘수상한 그녀’가 2014년 설 연휴 개봉하면서 휴먼 코미디 장르의 성과를 톡톡히 냈던 바 있다.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과 호흡을 맞춘 나문희는 이번엔 이제훈을 상대역으로 택했다. 말끔한 외모에 영어 실력을 갖춘 그에게서 영어를 배우는 동안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습으로는 웃음을, 이를 넘어 소통과 이해에 다다르면서는 또 다른 감성을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

나문희는 “이제훈은 굉장히 똑똑한 배우로서 긍지를 갖고 해줬고 처음부터 잘 맞았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한 번 휴먼 코미디의 웃음과 눈물의 판타지로 관객과 만난다.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박열 출연이 이번 영화 선택에 큰 영향
아들처럼 나문희 선생님 곁에 있고파”


배우 이제훈(33)이 올해 내놓은 두 편의 영화는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그 맥이 닿아 있다. 6월 공개한 ‘박열’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치열한 삶을 그렸다면 이번 ‘아이 캔 스피크’는 그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피해 입은 이들이 겪는 ‘현재’의 이야기다.

이제훈은 “‘박열’ 참여가 ‘아이 캔 스피크’를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엄연히 다른 소재와 장르이지만 일제강점기 피해의 역사를 다루는 공통된 메시지에 공감했다는 의미다.

‘박열’에서 이준익 감독과 함께 한 이제훈은 이번에는 ‘노장’ 나문희와 만났다. 연륜과 관록을 갖춘 감독, 배우와의 연이은 만남을 통해 또 한 번 흥행작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훈은 영화에서 융통성 없는 완벽주의자 9급 공무원 역할. 구청을 찾아와 사사건건 민원을 제기하는 할머니(나문희)로부터 느닷없이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옥신각신 끝에 교감을 나누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70대 노배우와의 호흡은 이제훈에게 기대와 설렘을 안겼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와 영화로 뵈어 온 선생님 앞에서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는 그는 “작품을 마친 지금, 외람되지만 앞으로도 아들이나 손자처럼 선생님 곁에 있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촬영 현장에서도 그는 ‘무장해제’되기 일쑤.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과 준비 끝에 촬영장에 나갔지만 “나문희 선생님과 맞닥뜨린 순간, 그런 준비는 무의미했다”고도 말했다.

이제훈은 “나문희 선생님과 연기할 때 내가 상상한 이미지나 계획은 중요치 않았다”며 “영화에 도움이 되고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면 많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최근 출연영화에서 연이어 외국어 대사를 소화하는 것도 공통점. ‘박열’에선 대사의 대부분을 일본어로 소화했다면 이번에는 영어다. 극 중 원어민과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는 설정인 탓에 부담은 더 컸다.

“나름대로 ‘영어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네’ 같은 느낌을 관객에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이 있다”고 머쓱해하는 이제훈에 대한 평가는 이제 관객의 몫이다.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 조정래

“왜 또 귀향? 할머니들에 가진 속죄의식
1편에 못한 이야기 알리고자 다시 뭉쳐”


영화 ‘귀향: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향한 궁금증은 대부분 하나로 귀결된다. 출연자와 스토리보다 작품을 연출한 조정래(44) 감독에게 쏟아지는 물음이다. ‘왜, 또, 일본군 피해여성 이야기인가’라는 궁금증이다.

지난해 개봉한 ‘귀향’ 1편은 조 감독이 15년간 일본군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며 만든 작품. 관객이 나서 제작비를 모금해 세상에 나와, 358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적 같은 성공을 거뒀다. 영화는 지금까지 세계 10개국, 63개 도시에서 총 9만2000회가 상영됐다. 해외 대학과 단체, 동포 사회에서 자발적인 요청으로 이뤄진 상영이다.

조정래 감독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영화를 소개하면서 후속편 제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쏟아지는 질문과 궁금증에 대해 자신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현재 상황을 전부 설명하는 데 한계를 느낀 탓이기도 했다.

“영화 내용에 가장 크게 충격 받는 나라는 일본과 유럽이었다. 부자나라, 친절한 나라로만 알던 일본이 과거 벌인 일이라는 걸 사람들은 믿기 어려워했다. 한 번은 프랑스의 한 대학에서 상영회가 끝나고 3시간동안 발이 묶였다. 영화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의 관객이 던지는 숱한 질문과 문제제기를 접하면서 조정래 감독은 후속편을 통해 1편이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하자고 결심했다. 1편에 개런티 없이 출연한 배우들부터 몸값을 대폭 깎아 참여한 스태프들, 마케팅을 도왔던 이들까지 무보수로 다시 모였다.

후속편에는 1편에서 편집된 내용과 더불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를 통해 영화가 담은 내용이 전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일제가 어린 소녀들에게 벌인 만행을 직접적으로도 묘사한다.

조정래 감독은 “앞으로 일본군 피해여성을 다룬 영화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준비하던 상업영화 ‘광대’ 작업도 잠시 멈췄다. 같은 주제의 다큐멘터리도 준비중이다. 감독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셀프 감금상태”라고 농담 섞어 소개했다. “이젠 돌아갈 수 없다.(웃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는 날까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내가 할머니들에 가진 속죄의식이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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