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VO 조원태 총재. 스포츠동아DB
인생이든 조직이든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악재가 터지는 것은 불가항력적이다. 다만 그 악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그 조직의 역량이 걸려있다.
KB손해보험 전영산 단장은 20일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알지 못하던 번호였다. 휴대폰에서 “단장님, 저 KOVO(한국배구연맹) 조원태 총재입니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조 총재가 직접 사과전화를 건 것이었다.
KB손해보험이 19일 당한 ‘잘못된 판정’에 관한 보고를 접한 조 총재는 실무진한테만 수습을 맡기지 않았다. KOVO 사무국에도 알리지 않고, 전 단장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직접 연락을 취해 변명 없이 사과했다. 총재이자 대한한공 구단주인 조 총재는 1경기를 이기기 위해 구단이 자본을 얼마나 투입하고, 선수단이 어떻게 피땀을 쏟는지 모를 리 없을 터였다.
한국사회가 중시하는 보편적 격을 깬 일이다. 누가 총재에게 권할 수 없는 일이다. 조 총재의 위상을 고려하면, KB손해보험 구단주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KOVO의 수장으로서 사태를 피해가지 않았다. 밖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수습을 위해 앞장선 것이다.
조 총재의 ‘전화 한통’으로 KB손해보험의 ‘분노’가 많이 풀어진 것은 정황 상, 확실해 보인다. 21일 KOVO 상벌위원회의 징계가 나오자 KB손해보험은 기다렸다는 듯 “대승적 차원에서의 수용”을 밝혔다. 재경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KB손해보험은 명분을 얻었고, KOVO는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조 총재는 대한항공 CEO를 겸임하고 있다. 항공사 일의 특성 상,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가 몸에 배었을 터다. 위기가 터졌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본능적 감각으로 꿰뚫은 셈이다.
KOVO 역사에 전례가 없는 중징계가 발표된 ‘검은 목요일’, 조 총재는 KOVO에 뜻밖의 당부를 했다. “돈 문제는 내가 책임질 테니, 심판들 처우를 지금보다 더 올려주는 방안을 찾아보라.” 심판들이 거의 죄인 취급을 받는 현실에서, 이들의 자긍심을 살피지 않으면 배구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능력은 건강한 조직의 특징이다. 조 총재와 KOVO가 사건의 조기수습에 안도하는 차원을 떠나, 지금의 아픔을 심판문제의 혁신 모멘텀으로 삼을 수 있을지, 일단은 기대를 걸어 봐도 될 듯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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