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①] ‘화유기’ 사태로 본 ‘케이블 드라마’의 제작현실

입력 2017-12-2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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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화유기’ 방송사고 장면. 사진출처|tvN ‘화유기’ 방송 화면 캡처

‘도깨비’ ‘응팔’도 완성도 핑계로 연기
지상파 방송보다 흥행 지상주의 만연
과욕으로 변칙편성 시간부족 부지기수


케이블채널 tvN 토일드라마 ‘화유기’가 2회 만에 방송 중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초치기’로 진행되는 드라마 제작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상 방송이 위태로울 만큼 빡빡한 촬영일정을 자초하는 제작진뿐만 아니라, 제작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편성하는 방송사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케이블채널에서 ‘완성도’라는 명분 아래 ‘결방’이 반복되는 일에 대해서도 비판이 거세다.

‘화유기’ 사례는 촬영을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제작현장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제작진은 첫 방송(12월23일)을 두 달 앞둔 10월 초 촬영을 시작해 현재 6회 분을 찍고 있다. 촬영 분량은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정교한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위한 시간은 부족했던 것이다. tvN 측은 “2회 후반부 CG 완성본이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입고됐다”고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또 사고 재발 우려와 ‘실시간 편집’에 대한 부담감을 덜기 위해 31일 방송하는 4회도 일주일 후로 연기했다. ‘사고’보다는 ‘결방’이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 ‘도깨비’ - ‘응답하라 1988’. 사진제공|tvN·화앤담픽처스


촬영시간 확보를 위해 결방하는 경우는 이미 몇 차례 있었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대본의 일부 수정으로 인해 촬영 스케줄이 변경됐고, 촬영 시간 확보를 위해 27·28일 방송분을 일주일 미뤘다. 앞서 ‘도깨비’와 ‘응답하라 1988’도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라며 방송을 일주일 연기한 바 있다.

유독 케이블채널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이 반복되는 것은 “전체적인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원인으로 제기된다. 특히 tvN은 지상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칙적 편성을 자주 꾀한 것이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7∼9월 방송한 ‘크리미널 마인드’는 밤 10시50분, 11월 종영한 ‘부암동 복수자들’은 밤 9시30분부터 방송했고, 현재 방송중인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밤 9시10분부터 방송한다. 모두 tvN의 수목드라마이지만 방송시간대는 들쭉날쭉하다. 지상파 3사의 밤 10시대 수목드라마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자율 편성’이라는 허울일 뿐, 일정치 않은 편성은 제작진 입장에서 충분한 제작기간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

흥행과 이익을 과도하게 좇는 제작방식도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고 입을 모은다. 케이블 드라마는 지상파보다 소재와 표현에서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스타일의 연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높은 몸값을 받는 연출자에게는 그 만큼 성과를 내야하는 책임감이 따른다. ‘화유기’의 박홍균 PD도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작업 환경 등의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부담감이 매우 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은 바 있다.

1960년대부터 드라마를 제작해온 지상파는 나름 체계화된 시스템이 구축돼 유사시 ‘협업’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케이블에서는 연출자 홀로 제작에 대한 부담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의 높은 기대치와 ‘히트작’에 대한 막중한 임무를 소화하면서 회당 90분에 가까운 방송 분량을 만들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케이블에서는 연출자가 드라마에 자신의 색깔을 내기 좋은 환경인 동시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드라마 흥행이 방송사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는 지상파보다 더하고, 한 번의 실패로 차기작 연출 제안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어 더 치열하다”고 말했다.

한편 ‘화유기’ 한 스태프가 23일 새벽 경기 용인의 세트장에서 천장에 샹들리에를 매다는 작업을 하던 중 3m 높이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직후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허리뼈와 골반뼈가 부러져 부상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백솔미 기자 bs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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