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영철 전 감독, 사재 털어 ‘세터 상’ 만든다

입력 2018-01-05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신영철 전 감독이 야인 신분임에도 사재를 털어 ‘신영철 세터 상’을 만들었다. 이런 조건 없는 헌신이 있는 한, 한국배구의 미래는 어둡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동아DB

‘신영철 세터 상’이 만들어진다. 한국 남자배구의 레전드 세터였던 신영철(54) 전 한국전력 감독은 4일 “배구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배구를 위해 돌려줄 시간이 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신영철 세터 상’은 대한배구협회 산하 단체인 한국중고배구연맹(이하 중고연맹)과의 긴 협의 끝에 틀을 갖췄다. 중고연맹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통하는 대통령배를 마친 뒤 ‘신영철 세터 상’ 수상자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호철 한국중고배구연맹 전무는 “지난해부터 신 전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배구를 배워서 국가대표, 프로팀 감독까지 해봤다. 이제 후배들한테 도움 되는 길을 찾고 싶다’고 하더라. 얘기를 나눴고, 신 전 감독이 ‘내가 세터 출신이니까 사재를 털어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18년 7월 대통령배 대회부터 ‘신영철 세터 상’은 시작된다. 이 대회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거나 가장 장래가 유망한 남자 고교 세터 중 1명을 집행위원회에서 평가해 뽑는다. 중고연맹 김홍 회장도 흔쾌히 재가를 했다.

신 전 감독은 2016~2017시즌 V리그에서 한국전력을 플레이오프(3위)에 올린 뒤 계약 만료로 팀을 나왔다. 현재 야인 신분이다. 고정 수입이 없는 상황이다. 신 전 감독이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할 일이야 없겠지만 이렇게 미래가 불투명한 형편에 장학금을 내놓기란 범상한 일이 아니다. 신 전 감독은 “오래 전 생각을 실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웃었다.

신 전 감독은 현장을 잠시 떠나있어도 배구를 향한 열의는 그대로다. 유소년 배구 유망주들을 위한 재능기부 요청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다니고 있다. 9일엔 강원도 강릉까지 가서 율곡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이 잡혀 있다.

현역 시절 ‘컴퓨터 세터’란 애칭으로 통한 신 전 감독은 김호철 전 국가대표 감독과 더불어 한국배구 사상 최고 세터로 꼽힌다. 상무 시절 슈퍼리그 우승, 국가대표로서 월드리그 6강의 신화를 썼다. 이후 삼성화재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LIG손해보험, 대한항공, 한국전력 감독을 지냈다. 경기대에서 배구 트레이닝에 관한 박사 학위도 받았다.

신 전 감독은 “상금은 중고연맹과 협의해 금액을 정하겠다. 내가 죽은 뒤에도 아들이 ‘신영철 세터 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종전까지 배구인 이름을 딴 장학금은 대한배구협회가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시상하는 ‘오광섭 장학금’이 있었다. 그러나 배구인이 개인 주머니를 털어 상을 만든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배구 꿈나무를 위한 장학금을 나눠주고 있다. 현대캐피탈 문성민은 동아스포츠대상 상금 전액을 2년 연속 기부했다. 그리고 신 전 감독도 배구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아름다운 행렬에 동참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