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굴스키 간판 최재우 “올림픽이요? 마음껏 즐겨야죠!”

입력 2018-01-25 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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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설상종목 선봉장을 맡은 모굴스키 간판 최재우는 “이번 무대를 즐기려고 한다. 올림픽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며 당돌하게 포부를 밝혔다.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난 최재우가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아직 국내 스포츠팬들에게 낯선 이름인 모굴스키는 울퉁불퉁한 눈 언덕을 넘나들며 화려한 점프와 턴을 반복하는 종목이다. ‘설원 위의 곡예’라는 별명처럼 공중제비와 같은 묘기가 펼쳐지는 프리스타일 스키가 바로 모굴이다. 그간 설상 불모지로 통했던 한국은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설상종목에서 첫 메달을 꿈꾸고 있다. 선봉을 맡을 주인공은 한국 모굴스키 간판스타 최재우(24·한체대)다.

유년시절 아버지를 따라 처음 스키를 접한 최재우는 중학교 1학년 때 캐나다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눈밭에서 뒹구는 자체가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스키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재미가 붙으니 실력도 쑥쑥 늘었다. 일찌감치 캐나다 스키계로부터 귀화 권유를 받을 만큼 누구나 알아주는 ‘될성부를 떡잎’이 바로 최재우다.

그렇게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천진난만했던 소년은 이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자가 됐다.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인물로도 잘 알려진 토비 도슨(40) 코치의 도움을 통해 부족한 부분도 채워 넣었다. 최근 올림픽 전초전으로 치른 2017~2018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선 예선을 전체 1위로 통과하며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 직후 만난 최재우는 “아직도 모굴을 넘나드는 자체가 짜릿하다. 모든 장애물을 통과한 뒤 결승선을 넘는 순간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평창올림픽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긴장이 될 법도 하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자체를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어차피 올림픽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며 당차게 말했다.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끊으며 누구보다 침착하게 올림픽을 기다리고 있는 최재우의 당돌한 출사표를 들어봤다.

남자 모굴스키 대표 최재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올림픽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어요”

-올림픽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컨디션이 궁금하다.


“너무 좋다. 직전 대회에서 크게 넘어져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다. 내가 보기에도 ‘스펙터클’하게 넘어졌더라(웃음). 그래도 잘 넘어진 덕분에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예선을 1등으로 통과했는데 결선에서 넘어져 아쉬움이 많았다.

“사실 국제무대에서 예선을 1등으로 통과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비록 최종 결과는 아쉬웠지만, 내 잠재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마지막 실수는 지금도 속상하다. 아무래도 결선에서 맨 뒤 순번으로 나오면서 조금 긴장을 했다. 올림픽 앞두고 ‘액땜’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선수단 결단식이 열렸다. 올림픽 실감이 나는가.

“사실 올림픽이 다가오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 많이 내려놓으려고 한다. 올림픽이라는 무대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최대한 즐기려고 하고 있다. 어차피 올림픽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평창올림픽 메달 신호탄을 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텐데.

“많은 분들이 (메달과 관련한) 자극적인 멘트를 원하신다. 그런데 메달은 따고 싶다고 해서 따지는 게 아니더라.”

남자 모굴스키 대표 최재우. 사진제공|CJ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림픽을 앞둔 선수 같지가 않다.

“그동안 많은 슬럼프와 부상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다져진 부분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가장 잘했을 때는 고등학생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스키를 탔을 때더라.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선수들과 나를 비교하고, 주위 환경을 신경 쓰게 되면서 흔들리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종교와 취미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정신력을 다잡고 있다.”


-토비 도슨 코치와 올림픽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코치님께서 가끔 해주시는 말씀이 있다. ‘Just ski your run’이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나만의 스키를 타라는 뜻이다. 사실 코치님은 내가 선수로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그만큼 지도를 통해 배우는 점이 많다.”


-둘의 호흡은 잘 맞는 편인가.

“처음에는 코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코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더라. 최근 마지막 대회가 끝나고 난 뒤에는 ‘수고했다’는 한 마디를 남겨주시더라.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이 아닌데 말이다(웃음).”

남자 모굴스키 대표 최재우. 사진제공|CJ



● “메달권 못 미친다고? 예상은 예상일뿐!”

-스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4살 때 아버지께서 형과 함께 스키를 타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때 처음 스키를 접한 뒤 빠져들게 됐다. 아버지께 야간스키를 타러가자고 조를 정도였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본격적인 스키 입문을 권유하셔서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중학생 때는 캐나다로 스키 유학을 떠났다.

“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이왕 운동을 시작했으면 세계무대에서 놀아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캐나다 휘슬러로 떠나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알파인스키를 탔는데 점차 모굴스키에 매력을 느꼈다.”


-모굴스키의 매력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눈 언덕을 넘나드는 자체가 짜릿하다. 아직도 재미있을 정도다. 특히 모든 장애물을 무사히 통과한 뒤 결승선을 넘을 때는 희열을 느낀다.”

남자 모굴스키 대표 최재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체대 2년 선배인 ‘체조 스타’ 양학선(26)과의 인연도 화제다.

“(양)학선이 형과는 학교와 태릉선수촌 생활을 통해 친해지게 됐다. 체조와 모굴스키는 전혀 다른 종목이지만 공중회전을 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공통분모가 있다. 그래서 형이 회전 타이밍에 관해 알려주는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지 않는가.”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특별한 조언은 해줬나.

“솔직히 이야기하면 학선이 형은 표현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다(웃음). 그저 ‘부담 갖지 말고 임하라’고 말해주더라. 그래도 선수촌에서 단백질 보충제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다시 올림픽 이야기로 돌아가자. 메달권 선수들과 최재우의 격차가 아직은 크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한 분석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예상은 예상일뿐이다. 올림픽은 일반 대회와는 또 다른 무대다.”


-그렇다면 ‘모굴 황제’ 미카엘 킹스버리(26·캐나다)는 최재우에게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킹스버리는 나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선수다. 그저 내 몫에 집중하다 보면 결과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다른 부분을 신경 쓰다 보면 리듬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인 SNS도 끊었다. 대신 카메라에 취미를 들여 쉬는 시간을 채우고 있다.”


-아직 많은 스포츠팬들이 모굴스키라는 종목을 낯설어 한다. 올림픽에 앞서 모굴스키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관전 포인트를 귀띔해준다면.

“모굴스키는 실수 하나가 치명적이다. 회전부터 점프, 착지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집중해야한다. 특히 내려오는 과정에서 다리가 벌어지면 감점이 되는데 이 부분을 유심히 지켜보시면 좋을 듯하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잘 타는 선수들은, 누가 봐도 다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모굴스키 국가대표 최재우가 고난이도 공중곡예를 하고 있다. 프리스타일은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공중기술로 인해 ‘설원의 곡예’, ‘설원의 꽃’으로 불린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최재우는?


▲생년월일=1994년 2월 27일(만 24세)

▲신체조건=키 177㎝·몸무게 72㎏

▲출신교=유현초~화계중~휘슬러 세컨드리 하이스쿨~청담고~한체대

▲소속사=갤럭시아SM

▲주요성적=2012년 FIS 휘닉스파크컵 우승, 2014년 FIS 레이스 우승, 2015년 FIS 레이스 3위,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준우승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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