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이 깨졌다…유통업계 여성 CEO시대

입력 2018-03-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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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첫 CEO 홈플러스 임일순 사장
롯데는 올해 선우영 롭스 사장 파격 임명

정수정 이랜드 사장·김주연 한국 P&G 사장
평사원서 사장 자리 오른 입지전적 CEO

‘섬세한 리더십’ 여성 임원들 잇달아 등장
“소비층 여심 꿰뚫는 女임원 당연한 흐름”


유통업계에서 오랜 세월 공고히 버티던 유리천장이 하나둘 깨지고 있다.

‘유리천장’은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이다. 물론 유통이나 서비스업계에 여성 경영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부진(48)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45)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정유경(46)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등 대부분 오너가의 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경우였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여성 경영인이 많지 않은 우리 산업계에서 특히 유통업계는 대표적인 유리천장의 분야였다.

그런데 최근 정기인사에서 여성 CEO나 임원들이 속속 배출되면서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 우선 지난해 10월 유통업계 최초로 여성 CEO를 배출한 홈플러스가 있다. 임일순(54) 사장이 주인공으로 CEO 취임 전 재무부문장과 경영지원부문장(부사장)을 맡아 홈플러스의 흑자전환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꼽힌다. 냉철하고 꼼꼼한 경영스타일이지만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 여겨 구성원 간 화합을 이끌어내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홈플러스는 CEO뿐 아니라 대형마트의 핵심인 상품부문장과 기업 운영의 중심인 인사부문장도 여성이 맡고 있다. 엄승희(54) 상품부문장(부사장)은 30여 년간 글로벌 유통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상품과 유통 전문가다. PB(자체브랜드) 상품을 개발하는 등 전체적인 경쟁력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최영미(53) 인사부문장(전무)은 고졸 공개채용, 전역 부사관 공개채용 등 청년 일자리 창출을 이끌고 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알려진 롯데그룹 역시 올해 인사에서 선우영(52) 헬스&뷰티숍 롭스 사장을 승진 임명하면서 그룹 첫 여성 CEO를 배출했다. 선 사장은 섬세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롭스의 상품 소싱과 온라인사업을 이끌고 있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선우영 사장 외에 여성 임원들을 대거 승진시켜 주목을 받았다. 검사 출신 김현옥(49) 롯데지주 전무, 인터넷면세점을 책임지는 전혜진(47) 상무보, 그룹의 인공지능 사업을 맡는 김혜영(47) 상무보 모두 전문성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아 승진했다.


● “핵심 소비층 여성 잘 이해할 여성 임원 발탁은 당연”


백화점계에서도 여성 임원 발탁이 큰 흐름이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인사에서 정경아(49) 이마트 헬스&뷰티담당 상무보 임명 등 여성 임원을 지속적으로 발탁, 여성임원 비율을 7∼8%로 유지하고 있다. 2012년 백화점업계 최초로 여성 점장 시대를 연 현대백화점그룹도 여성 임원 비중을 높이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여성임원은 현재 14명. 현대백화점(4명), 한섬(7명), 한섬글로벌(1명), 현대G&F(1명), 현대그린푸드(1명) 등이다. 특히 패션기업인 한섬은 각 사업부별로 브랜드 총괄 임원을 모두 여성으로 배치해 전문성을 강조했다.

패션, 생활용품 업계에서는 평사원부터 시작해 사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여성CEO들이 눈에 띈다. 정수정(46) 이랜드월드 사장은 1996년 이랜드그룹에 입사해 지난해 2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로엠 본부장, 중국 사업부 로엠 본부장, SPA 미쏘 본부장 등 20여 년간 패션사업부 현장 업무를 통해 전략과 경영 노하우를 습득해 왔다. 패션업계 CEO는 패션 트렌드의 흐름과 향후 변화를 빠르게 읽어야 하는데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지닌 정 대표가 제격이라는 평가다.

김주연(51) 한국P&G 사장도 1995년 사원으로 입사해 2016년 1월에 사장에 올랐다. SK-II, 질레트, 페브리즈, 팬틴 등 P&G의 다양한 브랜드를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았고 한국은 물론 아시아, 중동, 남미, 동유럽 시장까지 관장하며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키워왔다.

그렇다면 최근들어 이렇게 유통업계 전반에 여성 CEO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여성맞춤형 소비전략을 지향하는 기업 분위기에서 여성 경영진 등장은 당연한 결과로 보고 있다. 백화점 마트, 면세점 등의 유통채널부터 패션, 생활용품 등의 주력 고객이 대부분 여성인 만큼 그들의 입장에서 브랜드를 바라보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범준 경희대 국제캠퍼스 미래혁신원 겸임교수는 “주요 소비층인 여성을 잘 이해하는 여성 임원이 타 업종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유행에 민감하고 섬세한 여성 CEO 배출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현 정부가 공직 요직에 여성을 발탁하고 있는 기조와도 무관치 않다. 여성들의 적극적 사회 참여와 전문 역량 발휘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편견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균형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정정욱 기자 jja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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