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송경섭 감독-U-23 대표팀 김학범 감독(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대한축구협회
올해 축구계는 채용 비리와는 정반대의 그림이 나왔다. 능력 위주의 감독 선임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학연과 지연이 연결고리가 되던 축구계의 어두운 과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요즘은 많이 깨끗해졌다. 이름값보다는 능력을 앞세운 트렌드가 확실히 눈에 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선 강원FC 송경섭(47) 감독과 U-23 대표팀 김학범(58) 감독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송 감독은 올 시즌 초반 가장 핫한 지도자다.
지난해 11월까지 그의 보직은 강원의 전력강화팀장이었다. 팀장에서 곧장 사령탑에 오른 깜짝 선임으로 주위에선 우려가 컸다.
그는 프로 무대에서 선수로 뛰긴 했지만 존재감은 없었다. 1996년 수원 삼성에서 2경기를 뛴 게 전부다. 29세에 지도자 교육을 받으면서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다. 이후 단계를 높여가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최고 단계인 P급 지도자 교육까지 마쳤다.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전임 교육 강사와 U-13, U-16, U-17, U-22 대표팀 코치를 했다. 유명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지도자로서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FC서울~전남을 거치면서 프로 무대를 경험했고, 2017년 강원의 전력강화팀장이 됐다.
당초 구단은 스스로 물러난 최윤겸 감독 후임으로 이름값 있는 지도자를 물색했다. 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결국 구단은 팀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송 팀장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사진제공|강원FC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구단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능력은 성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강원은 인천, 서울, 상주를 꺾으며 3연승이다. 모두 2-1 승리다. 예상을 뒤집는 행보다. 행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탄탄한 전력으로 연전연승이다.
강원은 지난해와 달리 올 시즌엔 대어급 영입이 없었다. 대신 송 감독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졌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는 패턴도 개선됐다. 송 감독의 전술 능력도 돋보인다. 상대에 따른 맞춤형 전술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강원은 상위스플릿 유지는 물론이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 획득이 목표다. 이 목표는 송 감독의 능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학범 감독은 선수 시절 태극마크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업팀에서 줄곧 뛰다가 코치까지 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러시아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 밑에서 선진축구를 배우면서 지도자로서 눈을 떴다. 무엇보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유럽이나 남미로 날아가 축구 공부를 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을 정도의 실력도 쌓았다. 차경복 감독 밑에서 코치를 하면서 성남의 3연패(2001~2003년)를 일궈냈고, 감독으로서도 정규리그 우승(2006년)을 경험했다. 그의 지도력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최근 대한축구협회가 U-23 대표팀 감독으로 김 감독을 낙점했을 때 우승 경험과 함께 전술능력과 선수파악 및 장악능력을 높이 샀다. 협회는 이름값 대신 오직 그의 능력만 보고 선택했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은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지도자 선발 시스템의 개혁을 시도한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 감독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선발 시스템의 틀이 갖춰지고 발전한다면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고 했다.
부천을 상대로 연습경기중인 U-23 대표팀.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기대에 부응해야하는 건 김 감독의 몫이다. 1월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에서 실망감을 안긴 우리 대표팀의 분위기를 바꿔놓기 위해 그는 밤잠을 설친다. 그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분명 어려운 도전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힘들다고, 두렵다고 피해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난 이 도전을 결단코 승리로 만들어 보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아시안게임이 김 감독의 1차 시험대다. 여기에서 성과를 낸다면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갈 수 있다.
과거의 명성보다는 현재의 능력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게 올바른 사회다. 한국축구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평소 ‘공부하는 지도자’로 소문난 이들 감독들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