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더 이상 ‘탈 LG’ 오명을 듣지 않으려면?

입력 2018-04-0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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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8회초 2사 2루에 LG 김현수가 투런 홈런을 때리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LG 트윈스는 수많은 팬들의 애증이 교차하는 팀이다. 1990년대 초반 2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 덕분에 일찌감치 서울을 대표하는 구단으로 터를 잡았고, 이는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프로야구 원년 구단인 MBC 청룡의 전통을 계승한 역사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2002년을 끝으로는 좀처럼 한국시리즈 문턱에도 오르지 못하자 팬들의 실망 또한 커지기 시작했다.

‘흑역사’로 불리는 침체기 동안 LG에는 몇 가지 부정적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 중 하나가 이른바 ‘탈 LG’ 효과다. LG에선 부진하다가도 이적하면 마치 물 만난 고기마냥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하나둘 늘면서 생긴 말이다. LG 프런트에나, 열성적 팬들에게나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LG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이 단어가 올 시즌에는 개막 직후부터 튀어나왔다. 하필이면 직전 시즌인 지난해 11월 방출 리스트에 올랐던 선수들 때문이다. 3월 25일 마산에선 NC 유원상이 한때 동료였던 LG 타자들을 1.1이닝 무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막고 팀의 7-1 승리에 기여했다. 29일에는 지난겨울 일부 LG 팬들의 릴레이 항의시위까지 촉발시킨 베테랑 정성훈이 광주 삼성전에서 KIA에 복귀한지 4경기 만에 시즌 1호 홈런을 포함한 3안타 2타점의 맹타로 단연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반면 타 구단 출신으로 LG 유니폼을 입은 뒤 더 빛을 발한 선수는 극히 드물다. 프리에이전트(FA)든, 외국인선수든 이상하리만치 LG로 옮겨와서는 옛 명성과는 동떨어진 족적을 남겼다. 심지어는 과거 다른 팀에서 ‘왕조’를 열었던 명장조차 LG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씁쓸하게 퇴장했다.

LG 류중일 감독. 스포츠동아DB


LG가 개막 3연패에서 벗어난 3월 28일 고척스카이돔. 경기 전 LG 류중일 감독은 상기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살구아재’란 별명처럼 평소에도 류 감독의 볼은 홍조를 띠곤 했지만, 이날은 ‘느낌상’ 좀더 강했다. 연장 10회 접전 끝에 끝내기안타를 맞고 4-5로 넥센에 패한 전날 경기의 잔상 때문이다. 속은 쓰라렸겠지만, 류 감독은 취재진의 곤란한 질문에도 큰 목소리로, 성의껏 답했다.

그 시각 덕아웃 한편에선 김현수가 홀로 섀도 스윙에 집중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스스로 타격 메커니즘을 점검하느라, 평소에도 진지하기만 한 그의 표정은 잔뜩 더 굳어 보였다. 4년 총액 115억원에 LG와 FA 계약을 한 김현수는 이날 경기 전까지 13타수 2안타의 빈타에 허덕이고 있었다. 팀에서 고대하는 장타는 고사하고 단타 2개에 삼진만 5개를 당하고 있던 그의 심경은 미루어 짐작이 갔다.

이날 경기에서 LG는 김현수의 장타 2방을 앞세워 9-3 완승을 거뒀다. 4-2로 쫓긴 4회 김현수의 1타점 2루타 때 짧은 기합을 불어넣었던 류 감독은 8회 다시 2점포를 터트린 김현수가 덕아웃으로 돌아오자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줬다. 류 감독이 LG 사령탑으로 거둔 첫 승은 이렇듯 역시 LG 소속으로는 이날 첫 타점과 첫 홈런을 한꺼번에 신고한 김현수에 힘입은 바가 컸다.

덕아웃에서 류중일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김현수. 사진제공|LG 트윈스


2일 현재 LG는 3승5패를 기록 중이다. 개막 직전의 기대감과 비교하면 다소 미흡한 편이다. 물론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6개월 뒤 LG의 자리가 어디쯤 놓여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개막 3연패 동안 드러난 대로 취약한 불펜과 내야가 시즌 내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주말 디펜딩 챔피언 KIA를 상대로 짜릿한 위닝 시리즈를 거둔 데서 확인되듯 긍정적 요소도 적잖다. 무엇보다 새 외국인타자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9안타 5타점 활약이 반가웠다.

그럼에도 LG를 둘러싸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조금만 삐끗해도 다른 한편에선 ‘탈 LG’ 효과와 같은 부정적 단어가 회자되는 현실이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다. 떠나보낸 선수들도 잘 풀리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팬들이 납득할 만한(혹은 감동할 만한) 성적을 통해 스스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그날 류 감독과 김현수가 보여준 것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아직도 136경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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