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논란 집어삼킨 유병재, 그가 내뱉은 ‘B의 농담’ (종합)

입력 2018-04-30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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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리뷰] 논란 집어삼킨 유병재, 그가 내뱉은 ‘B의 농담’ (종합)

만지면 움츠러드는 식물, 미모사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무대 위 우뚝 선 유병재는 마치 끈끈이주걱 같았다. 잎을 오므려서 돌기에 붙은 ‘벌레’를 소화하는 끈끈이주걱처럼, 자신을 둘러싼 각종 ‘불편러’들의 시선을 모두 집어삼켰다. 그리고선 내뱉었다. ‘농담’으로 포장된 재기발랄한 ‘뼈 있는 유머’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유병재의 ‘B의 농담’이 열렸다. 지난해 8월 개최된 첫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 ‘블랙코미디’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 앞서 ‘블랙코미디’는 티켓 오픈 1분 만에 전석이 매진되고 관련 클립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천만 뷰를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B의 농담’ 역시 티켓 오픈 1분 만에 사흘에 걸친 공연 전석이 매진되고 서버가 다운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블랙코미디’의 10배에 가까운 규모(4000석)지만 이날 현장에는 약 22대1의 경쟁률을 뚫고 예매에 성공한 관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신 나는 드럼비트와 함께 시작한 유병재의 ‘B의 농담’. 유병재는 지드래곤 부럽지 않은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홀로 섰다.

쇼의 구성은 불쑥 흘러나오는 악플러들의 반응(이라 쓰고 원색적인 비난이라 읽는다)에 유병재가 피드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블랙코미디’에서는 유병재가 직접 악플을 읽었지만 이번에는 ‘불편박스’라는 아이템을 마련했다. 유병재의 황니를 형상화한 듯 한 무대장치가 푸르게 변하는 동시에 남성 성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악플을 읽어주는 형식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전하는 음성처럼. 소재를 자연스럽게 전환하고 관객의 순간 몰입도를 높이는데 효과적인 장치였다.


전반적인 주제는 ‘성급한 일반화’였다. 사전적 의미로 ‘성급한 일반화’란 일반적으로 모든 개체군 중에 비효율적이게 일부 집단만을 통계로 조사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폭넓은 결론에 도달하는 논리적 오류를 말한다. 즉, 하나의 현상에 대해 일부만을 보고 전부를 판단하는 것. 유병재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 “일반화라는 단어 자체에 ‘성급한’이 내포돼 있다. 일반화 자체가 성급하게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성급한 일반화’는 ‘성급한 성급한 일반화’인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지난 공연에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바꾸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예시로 “개소리 하고 자빠졌네”를 “선생님, 저희 집 반려견이 벌써 선생님처럼 짖는 답니다”라고 말했던 유병재. 이번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재치 넘치는 예로 객석에 웃음을 안겼다.

그는 “한국 힙합=분노조절장애자들이 효자가 되는 과정”이라고 일반화의 예시를 제시했다. ‘쇼미더머니’ 방송 초에는 온갖 욕을 통해 랩을 하던 참가자들이 결승전이 되면 부모님을 객석에 초대하고 가족과 인생에 대한 랩을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더불어 오늘의유머, 뽐뿌, 루리웹, 엠팍, 일베, 메갈리아 등의 온라인커뮤니티를 일반화한 표현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일베=남자 메갈’, ‘메갈=여자 일베’ 등의 표현이었다.

유병재는 “19금 공연인데 야한 콘텐츠가 없다”는 ‘불편박스’의 의견에 “나는 조루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일종의 ‘얼리어답터’라고 표현하면서 조루를 이겨내기 위해 섹슈얼하지 않은 순간을 떠올린다고 고백했다. 유병재는 “가장 섹슈얼하지 않은 순간으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입 주변을 정리하는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보수 인사가 언급되자 ‘불편박스’에서는 “전형적인 빨갱이”라는 악플이 흘러나왔다. ‘진보 인사는 까지도 못한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유병재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언급했다. 안 전 지사는 ‘미투 운동’을 통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된 진보 인사.

주제는 자연스럽게 ‘미투 운동’로 이어졌다. 안 전 지사와 더불어 ‘미투 운동’으로 자숙을 택한 조재현 등의 연예인들도 줄줄이 언급됐다. 유병재는 “용기내준 피해자 분들 덕분에 시작된 운동이다. 소중한 첫걸음을 다 같이 지켜나가야 한다”고 사뭇 진지하게 생각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실시간 검색어가 ‘미투 운동’에 집중되어야 할 시기에 홍상수-김민희, 롤 점검, 설날 지방 쓰는 법, 다산 신도시 등 엉뚱한 검색어들로 방해받고 있다고 ‘농담’을 내던졌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또한 토크 주제로 소환됐다. 유병재는 유독 이 주제를 두고 거듭 언급하고 사과했다. 때문에 토크쇼 자체가 자칫 ‘해명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아저씨’ 논란이야 말로 유병재가 직접 보고 체험한 일반화와 양극화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앞서 유병재는 자신의 팬카페에 “드라마를 이렇게 잘 만들 수 있나. 이런 대본과 대사를 쓸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나의 아저씨’의 감상평을 남겼다가 뭇매를 맞았다. 일부 누리꾼들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드라마 아니냐” “남녀 주인공도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유병재를 ‘나의 아저씨’의 작품성이 아니라 ‘내용’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몰았다.

당시 유병재는 하루 만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나에게 단순한 문화취향이었던 것이 어떤 분들께는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 속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유병재의 사과 이후에는 또 다른 누리꾼들이 유병재의 사과를 두고 못마땅해 했다. 이들은 “왜 굴복하느냐. 혼자 남자 망신을 다 시키고 있다” “실망이다. 왜 ‘나의 아저씨’ 보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들고 자기 소신까지 져버리나”고 비난했다. 의견이 비난으로 이어지고 사과가 또 다른 비난으로 이어지는 기괴한 현상이었다.

‘B의 농담’에서 유병재는 “살면서 내가 무슨 잘못으로 사과하게 될지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해봤다. 도박이나 음주운전, 아니면 소속사의 전통을 따라 마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 리뷰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나의 아저씨’를 재밌게 봤다고 해서 죄송하다. 죄송하다고 해서 죄송하다. 죄송하다고 해서 죄송한 것에 대해 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양측으로 갈린 불편한 시선들에게 꼬리를 무는 사과로 대응했다.

하지만 유병재는 “내가 어쩌면 젠더 권력을 가진 기득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진심을 담은 말도 잊지 않았다. 더불어 “나는 이렇게 드라마 리뷰로도 사과를 했는데 아직도 그 분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면서 지난 코미디쇼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B의 농담’을 다시 던졌다.


“소속사는 못 깐다”는 불편박스의 멘트에 “YG는 약국이다. 마약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마약은 그 분들이 했는데 욕는 내가 먹고 있다. ‘약 빤 코미디’를 하고 싶지 진짜 약을 빨고 싶지는 않다”고 응수했다. 인종 문제의 부재에 대해서는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내가 본 대다수가 황인종”이라며 “나는 ‘백인 남자가 무엇을 해도 불쌍해 보이지 않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유병재는 “한국에서 태어난 장남에, 학자금 대출을 2000만원이상을 가지고 있고, 남동생은 일베를 하고, 여동생은 메갈을 하고 있는 상황이면 불쌍해 보일 것 같다”는 ‘웃픈’ 농담으로 웃음을 이끌어냈다.

‘B의 농담’에서 소개된 악플은 이전보다 더욱 원색적이었고 유병재의 멘트는 한층 통렬해졌다. 누군가에게는 한바탕 웃고 증발하는 순간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 머무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유병재를 상대로 한) 고소 사유가 될 지도. 분명한 건 이번 토크쇼가 낳은 논란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위험해졌다. 하지만, 기대감 또한 커졌다. 유병재는 분명 끈끈이주걱처럼 논란들을 농담으로 집어삼킬 테니까.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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