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레슬러’ 유해진 “김민재, 보기 드문 후배…귀엽고 듬직해”

입력 2018-05-12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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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배우 유해진이 자리에 앉자마자 아침 식사를 했는지 물어봤다. 아침에 바나나를 먹고 왔다고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날씨가 좋아 광화문에서 인터뷰 장소까지 걸어왔다고 말했다. 봄 날씨가 좋아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부천에 있는 ‘말모이’ 촬영장까지 갈 때도 있다고. 인터뷰 내내 유해진의 이야기에는 소탈함이 묻어났다.

영화에서도 그의 이런 성격은 잘 묻어나있다. 영화 ‘레슬러’(감독 김대웅)는 전직 프로레슬러였지만 지금은 아들 ‘성웅’(김민재 분)이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인 ‘귀보 씨’의 이야기다. ‘귀보’ 역을 맡은 유해진은 편안함과 유쾌함으로 우리네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모습을 그린다.

여느 가족 영화와 다름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변수가 있다. 성웅이 짝사랑했던 오랜 친구인 ‘가영’(이성경 분)이 귀보를 오랫동안 좋아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중년의 남성과 갓 성인이 된 여성의 애정선이 생기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해진은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짝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전 이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한 번쯤 학교 선생님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지 않나요. 가영이의 사랑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웅이도 가영이를 짝사랑하고요. 아버지인 귀보도 아들 성웅을 짝사랑하는 것 같아요. 부모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잖아요. 제 어머니 역으로 나오신 나문희 선생님도 제게 잔소리 하시면서 챙겨주실 건 다 챙겨주시고요.”

그래서 유해진은 이성경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영이의 첫사랑은 이 영화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부모·자식 간의 사랑 그리고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영화를 보다보면 귀보와 성웅 부자의 애잔함이 묻어나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 역할을 많이 해봤지만 장성한 아들의 아빠 역할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한 방송에서도 “결혼을 한 조카가 있다”고 말한 유해진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부모의 입장’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홧김에 어머니께 했던 말을 생각하면 내가 가슴에 못 박는 말을 많이 했더라”며 “또 ‘삼시세끼’를 하면서 불 피우고 음식 구하는 일을 해보니 어머니가 엄청 힘드셨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 못된 아들이었죠, 무던히도 속을 썩였습니다. 나문희 선생님이 ‘넌 자식 키우기 쉽지 않은지 20년 됐지? 난 40년 됐어’라는 대사를 하시는데 이번 작품 하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연극한다고 할 때 어머니 반대가 심했었거든요. 그 때는 철이 없으니 허락을 안 해주시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지금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 반항도 심했고요. 가장 속상한 건 아들이 잘되는 모습 좀 보고 가시지.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좋은 아들이 못돼서 죄송하네요.”

작품에서 만난 아들 김민재에 대해선 극찬이 이어졌다. 촉망받는 레슬러 역할인 김민재는 ‘레슬링’을 100% 소화했다고. 김민재의 몸을 아끼지 않은 열연에 “몸 좀 사려가면서 하라”는 말을 하기까지 했다. 그는 “영화가 처음이니 얼마나 잘 하고 싶겠나. 그런데 잘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라며 “진짜로 그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저도 전직 레슬러로 나오기 때문에 여름에 체대에 가서 기초 훈련만 받았어요. 나이 먹은 탓도 있겠지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민재는 유망주로 나오니까 정말 잘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몸을 안 아끼고 하니까 걱정이 좀 됐어요. ‘이거 한 편으로 끝낼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또 몸 사리면 그것도 보기 싫지만. 하하. 정말 성실한 친구라서 진심으로 아끼는 후배가 됐어요. 그런데 민재는 지금 제 말 안 들릴 거예요. 젊으니까.(웃음) 저도 그랬거든요. 오랜만에 귀엽고 듬직한 후배를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


‘레슬러’에서 유해진과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배우 나문희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2007) 이후 나문희를 다시 만난 유해진은 “여전히 변함없으신 선생님이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을 보면 참 존경스러운 게 힘드시니까 리허설 안 하고 바로 촬영 들어가셔도 될 텐데 꼭 제게 ‘해진 씨 우리 다섯 번만 대사 맞춰봐요’라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이어 “볼 때마다 참 좋은 선배이신 것 같고 이번 촬영하면서 다시금 대단한 배우라는 걸 느끼게 해주신다”라며 “예전에 선생님께서 ‘해진 씨, 촬영 다니면 입은 속옷 여기에 두고 다녀’라시며 주신 파우치가 있다. 한 땀 한 땀 직접 꿰매셔서 만드신 파우치였다. 정말 감사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전부터 흥행하는 영화에는 유해진이 있었지만 그가 원톱을 맡았던 ‘럭키’가 697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공조’, ‘택시운전사’, ‘1987’ 등이 흥행 연타석을 치면서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더 견고해졌다. 그 만큼 유해진은 흥행에 대한 부담감, 이미지 고착화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를 보고 시나리오를 건네고 투자를 하는 분이 있기에 앞장서서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라고 말했다.

“매번 작품마다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전 운이 좋아서 됐다’는 말을 해요. 이번에도 그런 운이 좀 따라주면 안 될까요? 하하. 캐릭터 이미지도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관객들이 충분히 피로도를 느끼실 수도 있어요. 매번 새로울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그 캐릭터에 잘 녹아들 수 있을지 고민하죠. 그렇다고 연기에 목마를 때까지 작품을 기다리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웃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밖에는 없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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