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독일 축구인이 제시하는 한국축구가 나아갈 방향

입력 2018-06-0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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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뮐러 대한축구협회 수석 지도자 강사는 한국축구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유소년축구를 육성해야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한국 스타일에 맞는 유소년육성시스템을 개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축구대표팀의 경기력이 부진하면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당장의 쓴 소리가 아플지 몰라도 길게 보면 약이 된다. 그런데 그 수위가 도를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인신공격성 비난이 난무한다. 경기 좀 못한 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오랜 기간 부진했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따져보는 게 순서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9회 연속 출전했는데도 여전히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기를 기회로 바꾼 독일축구가 힌트를 준다. 독일은 역대 월드컵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각각 4번씩 기록한 강국이다. 그런 독일도 위기가 있었다. 2000년 유럽선수권(유로 2000)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충격이 컸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제경기에서 실력 이상의 성적을 내는 바람에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속에서 불만은 많았다”고 했다. 그 때 독일은 대대적인 개혁을 선언하고 시스템을 정비했다. 특히 유소년축구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전차군단의 위용을 되찾았다. 2014년 월드컵 우승은 그 성과물이다.


대한축구협회의 고민은 깊다. 홍명보 전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월드컵에 많이 나갔다고 해서 우리가 세계 수준에 근접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도전자고 우리는 자꾸 실패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스템을 바꿔야한다. 좋은 선수를 키워내는 것에 집중하고,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투자 하겠다”고 했다.


유소년육성에 대한 이견은 없다.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얼마나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또 지속적으로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다.


유소년육성시스템이 잘 갖춰진 독일 축구인에게 한국축구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미하엘 뮐러(53) 대한축구협회 수석 지도자 강사이자 유소년정책 수석을 만났다. 그는 U-18 독일대표팀 코치, U-21 독일대표팀 스카우트를 거쳤다. 4월말 입국한 그는 지도자 강사로 활동하면서 지도자 교육방향과 유소년 육성정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축구선진국으로 가는 첫 단추는 유소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다. 최근 프로축구연맹은 유스 트러스트와 준프로계약 등 유소년 육성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경주에서 열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 왕중왕전 장면.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그는 유소년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소년 육성이 없으면 그 나라의 축구미래는 없다. 독일이 2000년의 위기에서 유소년에 집중 투자했고, 그동안 유소년을 등한시한 잉글랜드도 대표팀 성적이 안나오자 유소년 쪽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최근 성적도 좋다. 이는 이익을 위한 투자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해 줘야한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들었다. 하지만 현재의 경기력은 좋지 않다. 뮐러는 이 점을 지적했다. “한국축구가 꾸준히 아시아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유소년에 투자해야 한다. 좋은 컨셉트를 가지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 나가야한다.”


그는 조급함을 경계하면서 현명한 접근을 제시했다. “한국의 어린 선수들은 정신력이나 기술에서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다그쳐서는 안 된다. 축구선수는 밟으면 곧바로 질주하는 고급차 페라리가 아니다. 성장의 과정이 길다. 어른들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생각이나 관점이 어른과 다르다. 아이들에게 맞는 소규모의 경기방식을 제공해 줘야한다.”


전북현대 유소년 축구 준비운동 모습. 사진제공|전북현대


그가 바라는 건 모든 연령 선수들이 경기를 뛰는 환경이다. 그는 골든에이지프로그램(연령별, 지역별 유망주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프로그램은 좋다. 하지만 거기에 12세가 없다는 건 아쉽다. 12, 13세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13세는 중학생(1학년)인데, 학교에서 경기를 못 뛴다. 2년간 축구 연습을 안 하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령에 맞게 모두가 게임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즐길 수 있는 분위기도 강조했다. “한국 아이들은 훈련 때 위축되고,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실수에 개의치 말아야한다. 즐기다보면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 성장과정을 어떻게 향상 시킬지를 연구해야한다.”


특히 그가 강조한 건 선수들의 개별 성장을 도와야할 지도자다. 지도자의 자질 중 사회성을 첫 손에 꼽았다. 선수들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한 것이다. 참을성과 동기부여 능력, 그리고 선수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앞둔 한국은 4년 뒤에도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그 때도 지금처럼 경기력 논란으로 뒤숭숭할 수 있다. 그런 불안 요소를 없애기 위해 지금부터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려야한다. 특히 뮐러 코치가 말한 ‘한국 스타일에 맞는 유소년 육성시스템 개발’에 관심을 갖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그게 한국축구가 살 길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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