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제공 ㅣ 구채연
구채연(44) 작가는 ‘사랑과 행복과 위로의 작가’로 불리는 구상미술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양이 작가’라는 별명을 선물하고 싶기도 합니다.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학과, 계명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나와 대구와 서울에서 주로 작품 활동을 해왔죠. ‘아시아 대표 100인전’, ‘인간의 숲-회화의 숲(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했고 이밖에도 개인전을 포함한 다양한 전시를 열어 왔습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이었던 이대형 아트디렉터는 구채연 작가에 대해 “구상화풍이 매우 톡특하다. 유럽 스타일에 한국적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유니크하면서 창의적이다. 드로잉은 대중적 인기 흡입력을 담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죠.
구채연 작가의 작품에는 고양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작가는 “작품 속 고양이는 고양이를 단순화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네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매개체”라고 설명합니다. 작가의 설명을 떠나 구 작가의 작품 곳곳에서 빼꼼 얼굴을 내미는 고양이들은 당장 집으로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정감이 갑니다.
가만히 가만히. 이미지제공 ㅣ 구채연
감상자를 고양이와 꽃, 나무가 살아 돌아다니는 동화의 나라 속으로 안내하는 듯한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그림을 그린 작가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작가에게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 요즘 많이 바쁘시죠?
“전시가 많았어요. 올해는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하는 그룹전과 단체전, 그리고 6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국내외 아트페어를 준비하고 있죠. 좀 바쁘네요(웃음).”
- 많았던 전시 중에 특별히 소개해주실 만한 전시가 있었다면요?
“100호 이상 작품들을 전시했던,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연 구채연 개인 초대전입니다. ‘가만히 가만히’, ‘새 봄이 오면’, ‘이상한 날’, ‘홀로서기’, ‘하늘보기’ 같은 대형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선보여졌습니다. 또 평소 작품 전시공간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기존의 일반적인 갤러리 공간개념에서 벗어난 전시도 있었죠. 대표적으로 서울 삼청로길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라플란드에서 연 전시가 생각나네요. ‘나비방 엿보기-일상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한 전시였습니다. 쇼핑과 문화의 거리인 명동의 명동로드 갤러리에서는 스토리를 더한 대중적인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관객들이 그림을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한 조형작품 ‘어디 한번’도 기억에 남습니다.”
- 연말까지 주목할 만한 전시가 연달아 계획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는 6월 12일부터 한 달간 서초동 화가조합 갤러리쿱이 화성상의와 전시협약을 맺고 화성상공회의소가 미술관으로 변신을 꾀하는 의미있는 전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27일에는 삼성동 코엑스D홀에서 열리는 ‘2018 조형아트서울(PLAS)’에 참가합니다.”
- 6월 한 달에만 두 개로군요.
“(웃음) 7월에는 5일 개최하는 경남국제아트페어(GIAF)가 있고요 18일부터 8월 16일까지는 갤러리쿱에서 ‘여름특별 3인 초대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콘래드 홍콩에서 열리는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쇼 2018’ 전시를 계획 중입니다.”
이상한 날. 이미지제공 ㅣ 구채연
-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쇼’는 어떤 전시인가요?
“올해 13회째를 맞은 아트쇼입니다. 전 세계에서 주목도가 오르고 있는 글로벌 미술전시무대죠. 런던, 뉴욕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아트시장인 홍콩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전시회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 구채연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의인화된 고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림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거죠. 때로는 부정적이었던 나와 타인의 시선을 긍정적인 모티브로 바꾸어 스스로의 바람처럼 이루어지길 희망하는 시점에서 (제 그림은) 출발합니다.”
- 어쩐지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오랜 시간 의인화된 고양이를 그려왔어요. 고양이의 삶이 우리들 삶과 닮은 구석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서로 공간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고,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다가도 때로는 시기질투하고 예민하게 굴죠. 제 작품 속에서 ‘나비’라고 불리는 고양이는 작가이기 이전에 그 누구도 될 수 있어요. 한 마디로 제 그림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이야기들의 매개체이자 치유, 소소한 행복을 감상자에게 전하는 전달자이기도 합니다.”
- 사실 고양이만 등장하는 건 아니죠. 나비, 나무, 꽃도 자주 작품 속에 의인화되어 등장합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는데요.
“작가들은 대부분 체험한 것 중 기억되는 것을 그립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작업의 주요 조형언어가 되어주는 나비와 나무, 꽃, 찻잔, 창문, 집, 비, 그릇들은 그저 제 가까이에 있는 일상의 소재들이고 물건들이에요.”
my beloved ones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2018. 이미지제공 ㅣ 구채연
- 일상의 소재들이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로 발화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 물건들을 나와 내 주변인들을 대신하고 있는 고양이들의 실루엣 안에 함께 채워 넣어 행복과 치유 에너지를 전하는 거죠. 평범한 일상조차도 버거운 시대잖아요.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고 싶은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형상들이지요.”
-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해집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이 ‘따뜻함’의 정체(?)가 궁금한데요.
“그렇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따뜻함이라고 말씀해주신 것의 정체는 바로 사랑하는 가족이 아닌가 싶어요. 전 평소 제가 마주한 현실이나 감정을 토대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그때그때 그림으로, 마치 일기처럼 기록하고 기억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일기 같은 작품’이로군요?
“그런데 작업하는 내내 ‘긍정의 힘’을 믿고 표현하다보니 자연스레 치유의 힘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작품들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웃음). 실제로 저도 작품을 그리다보면 행복하고 위로 받는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 작품 속에서 작가가 살짝 묻어둔 이야기(혹은 상징)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발견되지도 않지요. 그래서 보는 이의 발걸음을 잡아두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드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너무 쉽게 들켜버릴 것 같다는 거죠. 특히 의인화한 고양이의 마음이나 각각의 그림요소들이 숨기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쉬운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서울 삼청동 라플란드에서 전시한 작품 - 어디가니 1998. 이미지제공 ㅣ 구채연
- 그렇게 쉽지는 않던데요.
“다행이네요. 작가가 의도한 이야기가 감상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감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이야기 또한 무척 궁금하거든요.”
- 문득 든 생각인데, 좋은 감상자란 어떤 감상자일까요?
“제가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그림으로 누군가의 발걸음을 잠시 잡아둘 수 있고, 내 그림을 보며 미소를 짓고, 사랑을 읽어내고, 때로는 슬픔을 공감하며 희망을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작가에겐 최고의 감상자가 아닐까요?”
- 저도 좋은 감상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작품의 아이디어는 보통 어디서, 어떤 식으로 얻으시나요?
“제일 먼저 ‘사람’을 생각해요. 나와 내 주변의 인물들의 조합이죠. 그리고 그림으로 기록하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듯 일기처럼요. 기록하고 기억하면서, 가끔은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생활 속 에피소드를 집과 꽃, 나무, 비, 찻잔 같은 여러 대상들로 설정하고 나면 그리는 동안 더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흥미도 생기죠. 동시에 저만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
“그 세계에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깁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나 제목을 보면서 단어를 수집하기도 해요. 그렇게 적어놓았던 단어, 문장들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꿈을 많이 꾸는 편인데 잠을 자면서 모티브를 얻기도 해요(웃음).”
- 앞으로 해보고 싶으신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 삶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그 강물에 행복과 즐거움, 슬픔과 외로움을 함께 흘려보내고 그 물을 마시며 삶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손으로 맑은 물을 떠올리는 것처럼,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행복한 순간들을 캔버스에 담아가는 일을 열심히, 즐겁게 계속 하고 싶습니다.”
전망 좋은 방. 이미지제공 ㅣ 구채연
- 이른바 캔버스 위에 행복한 순간을 ‘박제’하는 작업이겠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제 그림으로 행복을 찾고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그림 속의 ‘구상(具象)’이 생각만큼이나 변화하듯 비록 완성되었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상태에 따라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되어지길 바랍니다.”
구채연 작가는 “행복과 사랑 그리고 위로를 전하는 따뜻한 화가로 남고 싶다”고 했습니다. 올해는 감성과 지성에 스토리를 담아 국내외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짧지만은 않았던 작가와의 인터뷰가 끝났습니다. 작가들과의 인터뷰는 늘 그렇듯 ‘뭔가 더 물어볼 것이 있었을 텐데’하며 끝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질문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작가의 작품을 좀 더 열심히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진짜 작가가 하고 싶은 답은 거기에 감춰져 있을 테니까요.
그 보물찾기게임은 지나치게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쉽지만도 않을 겁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이미지제공 ㅣ 구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