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퍼스트 히스토리⑥] 나치 제안 거절한 진델라, 1939년 자택에서 의문사

입력 2018-06-27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35년 당시 오스트리아와 스코틀랜드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오스트리아 축구대표팀인 마티아스 진델라와 월터 나우쉬가 기자의 인터뷰를 받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제1·2회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와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개최국이 우승에 얼마나 유리한지 입증됐다. 1938년 제3회 대회를 앞두고 또 개최와 관련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가 개최신청을 했다. 독일은 나중에 철회했다. 1936년 FIFA의 54개 회원국 중 40개국이 프랑스에 찬성표를 던졌다. 유럽과 남미가 번갈아가며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원칙을 주장했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이 결정에 반발했다. 대회를 보이콧했다. 투표 결과는 FIFA를 이끌어온 줄 리메 회장을 향한 반발로 해석됐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는 1936년 올림픽도 차지했다. 포조가 이끄는 이탈리아는 이전보다 더 강력했다. 유럽의 불안정한 정치환경 때문에 변수가 생겼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히틀러는 월드컵 우승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주축 선수들을 독일대표팀으로 출전시키려 했다. 가장 탐낸 선수는 원더팀의 상징 마티아스 진델라였다. 호리호리한 체격이어서 별명이 ‘인간종이’였던 진델라는 오스트리아 황금시절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사랑 받았다.


원더팀은 1937년 1월 24일 프랑스와의 친선경기가 마지막이었다. 2-1로 이긴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회 대회에서 1골을 넣었던 진델라는 나치의 월드컵 참가 종용을 거부했다. 그는 36번째 생일을 며칠 앞둔 1939년 1월 23일 자택에서 여자친구 카밀라 카스타놀라 곁에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오스트리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형 미스터리 사건이었다. 나치는 조사 결과 사고사라고 발표했다. 물론 누구도 믿지 않았다.


FIFA는 오스트리아의 공백을 메우려고 잉글랜드축구협회에 월드컵 출전을 부탁했다. 잉글랜드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 아시아대표로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출전했다. 일본도 참가신청을 냈지만 중일전쟁으로 지역예선에 나가지 못해 몰수게임 처리됐다. FIFA는 동인도-미국의 승자가 본선에 나간다고 결정했다. 미국은 이 같은 방침에 반발해 출전을 포기했다. 결국 네덜란드령 동인도는 예선도 치르지 않고 제3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월드컵 본선을 경험한 첫 아시아국가가 됐다. <계속>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