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전도사’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국내외 곳곳에 야구장을 만들고 있다. ‘야구로 번 돈은 야구를 위해 써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야구당, 체육당’을 자처하는 허 위원은 야구장 설립을 위해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과 꾸준히 격론한다. 허 위원이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 중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최근 야구가 아프다.
“새 야구단, 새 야구장을 계속 확장하는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파이가 커졌다. 그러나 호황에 취해서 미래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것 아닌가 싶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야구계가 착각하면 안 된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선배들의 희생정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의무감, 절제된 자기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KBO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 답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어릴 때부터 제도로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소양교육을 시켜야 한다. KBO 외에 대한야구협회,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까지 나서야 한다. 10년 후를 보고 중장기적인 목표로 잡아야 한다. 당분간은 (선수 개개인의) 갖은 일탈이 계속 나타날 수 있다. 야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체육계 전반의 과제다.”
- 선수 개개인의 일탈이기도 하겠지만 문화의 문제일 수 있다. 선배 세대에 이런 문화가 있었으니까 ‘해도 된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야구계에 ‘어른’이 없는 탓도 있다.
“선수들이 왜 사는가? 왜 야구를 하는가? 야구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이런 고민들이 없다. 기능 위주로 메달 따고 챔피언 되는 데만 목적이 있다. 안타깝다. 몇 명의 극소수 스타들을 위해 90% 이상의 선수가 희생해야 하는가? 아이들은 모른다. 어른들이 제도를 만들어줘야 한다. 주말리그만으로 될 상황이 아니다. 챔피언, 돈 이것만 좇으면 우리 스포츠는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물림하면 안 된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하다가 안 되면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MBC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가뜩이나 피지컬에서 밀리고, 저변이 협소한데 엘리트 체육 정책을 포기하면 국제 경쟁력의 저하는 어찌하나?
“맞는 말이다. 그러나 1%를 위해 99%가 희생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은 학업을 병행하며 운동한다. 세계적 선수가 나올 확률이 조금은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두는 것은 아니다. 일선 지도자 개개인 차원의 일이 아니다.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과 예산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어릴 때는 운동만 하고 싶다. 누가 수업하고 싶겠나? 애들은 모른다. 어른이 해줘야 한다. 지금 제도는 아이들이 가진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너무 잔인하다.”
- 야구선수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 넥센 히어로즈 문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걸려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 KBO가 정운찬 현 총재 때, (히어로즈 이장석 전 대표이사에게) 직무정지 명령을 내렸다. 그때가 ‘정학’이라면 이제는 ‘퇴학’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히어로즈 선수들이 왜 구단 잘못 만나서 같은 운동하는데 기죽어야 하나? KBO 사무국이 규칙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면 된다. 리그의 권위가 얼마나 실추되나. 메이저리그 피트 로즈의 승부조작 사건 이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 너무 엄격히 접근하다가 판이 깨질 수도 있다.
“설령 9구단 체제로 가더라도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런 각오로 임해야 된다.”
MBC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히어로즈 뒷거래 트레이드의 거래 상대였던 나머지 구단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클린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제재를 가해야 한다. KBO의 힘이 약해져서 구단 위주로 가다보니까 끌고 가지를 못한다. 합의제에서 구단들끼리 이해관계가 얽히니까 아무 것도 안 된다. 어느 분이 총재를 해도 어렵다. 구단과 등을 지더라도 밀어붙일 각오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 밖에서는 (새 총재에게) 기대를 거는데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운찬 총재가 힘들 것이다.”
- 야구의 산업화, 통합 마케팅만 봐도 구호에 비해 추진력이 약하다.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아마 정 총재도 와서 놀랐을 것이다. 통합 플랫폼 이야기는 9년 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선행투자를 해놓은 빅마켓 팀들이 따라올 일이 없다. 그러면 따라 오도록 해야지, 기다리면 답 없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데 다 맞추려면 언제 일이 되겠나?”
- ‘하드 인프라’에 관해 대전구장 발언이 화제였다.
“지자체 설득을 위해 3년 간 15만km를 뛰었다. 대전시처럼 소극적이고 무반응인 곳은 처음 봤다. 선거 끝나면 4년을 또 기다려야 하나. 반드시 (후보들이 야구장 개선을) 공약에 넣도록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강하게 얘기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구장 안 지어주면 연고지 옮기는 구단이 하나는 나왔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 허 위원이 정치인, 단체장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겠다.
“나는 야구당이고, 체육당이다.(웃음) 내가 얼굴 알려졌으니 발품 팔아야지.”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