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효희처럼 준비하고, 버티고, 즐겨라

입력 2018-07-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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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대기선수로 시작해 20년째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이효희는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위해 적지 않은 나이에도 헌신하고 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이었던 그는 2016리우올림픽에서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스포츠동아DB

38세에 대표팀 유니폼 입고 아시안게임 2연패에 도전하는 이효희
V리그 통산 4번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주역이 털어놓는 롱런의 비결
부상 없는 튼튼한 몸을 주신 부모님께 우선 감사드려
닭장멤버로 시작해 한 시즌씩 어떻게든 버티다보니 벌써 20년
포기하지 말고 준비하고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1998년 한일전산여고 졸업반 때 실업팀에 입단해 올해로 직업선수생활만 20년. 처음 5년간은 ‘닭장’이라 불리는 대기선수 자리에서 언니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다 차지한 주전자리. 화려하지는 않아도 세터로서 제 몫은 했다. 일정하게 잘 올렸고, 공격수들의 입맛에 맞았다. 누군가는 ‘분배의 여왕’이라는 칭찬도 했다. 우승반지도 받았다. 나이가 차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배구와 함께했다.

여고를 졸업하고 함께 KT&G에 입단했던 동기들이 “선수생활 얼마나 할래?”라고 물었을 때 그는 5년이라고 했다. 입단 때만 해도 컸던 꿈은 비주전의 현실 앞에서 줄어들었지만, “이번 시즌만 해보자”며 버티다보니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V리그 4개 팀을 거치며 모든 팀에 우승을 안긴 이효희(38)의 얘기다.


● V리그가 끝난 뒤 VNL과 우승여행으로 지구가 좁았다!

이효희는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무더위와 싸우며 뜨거운 땀을 흘리고 있다. 2017~2018시즌 도로공사의 창단 첫 챔피언 결정전 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그동안 바쁘게 살았다.

우승의 여운을 즐길 틈도 없었다. 국가대표로 소집돼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 출전했다. 중국~대한민국~네덜란드~태국~아르헨티나를 오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틈을 내서 도로공사의 우승포상 해외여행에도 참가했다. 임명옥, 배유나, 유서연과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대표선수들과 헤어져 미국으로 날아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면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봐야 하는 곳”이라는 말을 새삼 느꼈다.

우승기념 여행으로 다양한 곳을 가봤다. 2005년에는 KT&G 선수들과 유럽(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스위스)여행을 했다. 흥국생명 시절에는 홍콩과 마카오에 갔다. IBK기업은행 때는 제주도를 찾았다. 올 8월에는 자카르타-팔렘방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의 2연속 금메달을 위해 뛰어야 한다.

아시안게임 여자배구대표팀은 8일부터 진천선수촌에서 한창 땀을 흘리고 있다. 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훈련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이어진다. 수요일에는 오전운동만 한다. 주중운동은 오전~오후~야간훈련이 기본이다. 후배 세터 이다영의 허리가 좋지 못해 밤에도 베테랑은 훈련장에 있다.

이효희. 스포츠동아DB


● 여전히 대표팀에서 후배들과 경쟁하며 나이를 잊는다!

VNL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한 이효희는 세계랭킹 1위 중국과 러시아를 격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경기를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대표팀에서 이효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효희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감사하다.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보다 더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도 많았는데, 하다보니 이 나이에도 대표팀에서 후배들과 즐겁게 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중국, 러시아전이 내 인생경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만족하면 퇴보한다. 그는 아직 선수로서 보여줄 것이 많다.

대표팀 차해원 감독과는 인연이 깊다. 이효희가 고교 1학년 때 감독이었다. “당시 내가 배구를 못해 바닥에 있을 때인데 우리를 강하게 훈련시켜서 전국대회 1위로 만들어놓으신 분이다.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정말 존경하는 분이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셨다. 이 나이에 쉽게 불러주지도 않겠지만, 차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대표팀을 고사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지금 대표팀은 유난히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조카뻘 선수들과도 훈련하지만 아직은 체력에 자신이 있다. VNL 원정과 우승휴가를 마친 뒤 3주를 쉬었다. 피로가 쌓인 몸은 회복하는 과정이다. “지금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지 않으면 선수로서 끝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참고 한다”는 이효희다. 아직도 대표팀에서 몇몇은 체력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 대표팀과의 인연, 우승반지 4개의 사연

이효희와 대표팀 유니폼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연경이 고교생으로 처음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이효희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1년 잠깐 대표팀에 들어갔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34세의 나이로 3번째 대표선수가 됐다. 38세 생일을 자카르타에서 맞을 이효희는 이제 2연속 아시안게임 우승 도전에 나선다.

그는 우승과 인연이 많다. 이미 4개의 우승반지를 가졌다. 모두 사연이 있다. “2005년 KT&G에서 우승했을 때는 얼떨떨했다. 모두들 도로공사가 우승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예상 못해 우승티셔츠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실력은 우리가 떨어졌지만 팀워크로 우승했다. 어부지리였다”고 기억했다.

V리그 원년우승의 주역 이효희는 2008~2009시즌 흥국생명에서 2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김연경, 황연주 등 멤버가 화려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우승이었다. 빠른 내 세트와 가장 잘 맞는 카리나도 있었다”고 했다.

3번째 우승은 IBK기업은행에서 했다. 흥국생명에서 김사니를 데려오는 바람에 강제로 은퇴 당했지만, 신생팀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이 그를 불러줬다. “창단 2년 만에 어린 후배들을 데리고 우승했는데 피눈물 나는 훈련의 결과였다. 챔프전을 앞두고 슬럼프가 와서 가장 힘들었던 우승이다. 알레시아의 높은 타점에 맞춰 공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서 많이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시즌 도로공사에서 4번째 우승을 했다. “기적이었다. 1차전 5세트에서 다 졌던 경기를 이긴 덕분에 우승까지 했다. 시즌 내내 1위를 달리면서도 살얼음을 밟는 느낌이었다.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김종민 감독님이 부임한 첫 시즌이 힘들었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구설에 올라 마음을 다쳤다. ‘이제 새로운 세터를 키워야 한다’는 주변의 얘기도 들렸다. 김종민 감독님이 ‘밖에서 지켜봐라’고 하셔서 이제 선수를 그만둬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나를 잡아주셨다.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널 믿어줄 테니 나를 믿고 따라와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배구가 잘 됐다”고 했다.

이효희. 스포츠동아DB


● 이효희가 들려주는 롱런의 비결

이효희는 세 자매 가운데 둘째다. 자매가 모두 배구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큰 언니가 초등학교 때 배구선수를 했는데 힘들다고 포기했다. 그것이 아쉬워서 아버지가 이효희에게 배구를 권유한 것이 지금의 인생을 결정했다.

배구선수로 돈도 벌었다.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만큼의 엄청난 액수는 아니지만, 최소한 살 집은 장만했다. “실업배구에 입단할 때 IMF가 터져 계약금이 적었다. 선수생활 초창기에는 월급도 많지 않았다. FA선수가 된 뒤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혼자 살아야 할 날이 많아 돈을 잘 모아야 한다”고 했다.

남들보다 늦게 피어서 더욱 향기가 오래 지속되는 꽃으로 남은 그에게 배구선수로 오래 버틴 비결을 물었다.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선수는 많았지만 내가 더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좋은 몸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선수생활 동안 큰 부상도 없었고, 수술도 받지 않았다. 2014년에 왼 무릎 연골이 찢어졌지만 그 때도 수술하지 않고 나았다. 어릴 때는 성격이 불같았고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생각이 부드러워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또 배구가 갈수록 재미있었다. 20대 후반 흥국생명 때부터 배구가 재미있어졌다. 배구는 코트에 있는 때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더 힘든데 훈련 때의 고통도 즐거웠다. 숨이 턱턱 막히고 하기 싫은 순간도 버티는 힘이 생겼다. 나이가 드니까 ‘이 힘든 것도 끝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배구가 즐거웠다. 어린 선수들은 그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훈련장에 가는 것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일찍 포기한다. 다른 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참고 견디면 좋은 때가 분명 온다”고 했다.

지금 이효희를 롤모델로 삼아 운동하는 누군가를 위해 조언을 부탁했다.

“처음부터 최고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는데 그 잠깐의 힘든 시기를 못 버티고 포기하면 낙오자가 된다.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20대 초반이면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때다. 대부분이 이 때를 못 버티고 나갔다. 물론 기다리는 동안에 준비를 해야 한다. 나도 대기석에서 선배 세터가 하는 것을 보고 나라면 어떻게 할지 연구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때를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가 온다”고 했다.

혹시 포기를 생각하는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을 대신해 팬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물었다. “선수도 사람이다. 누구나 다 잘하고 싶어 하지만 안 될 때도 있다. 못하고 싶어 하는 선수는 없다. 잘할 때의 칭찬도 중요하지만 못할 때도 격려를 부탁한다. 비난과 악플은 선수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다.”

잊지 말자. 주먹보다는 말에 베인 상처가 더 깊고 오래간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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