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에이스 손흥민, 와일드카드의 가치를 증명하라

입력 2018-08-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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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와일드카드(wild card)는 카드게임에서 자기가 편한대로 쓸 수 있는 비장의 카드다. 이 용어가 축구, 테니스, 야구 등 스포츠에서는 출전자격을 따지 못했지만 출전이 허용되는 선수 또는 팀을 지칭한다. 특별한 케이스다.

나는 이 와일드카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령 연령 제한이 있는 대회라면 거기에 맞춰 선수를 뽑고 경기를 진행하면 깔끔하다. 그게 공정한 룰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스포츠의 속성에 충실한 방식이다. 그런데 그 룰에 자꾸 예외가 붙는다. 거추장스럽다. 왜 그럴까. 흥행 때문이다.

주최 측이 주목도를 높이면서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런 예외 때문인지 선수 선발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예외와 논란, 이 두 가지는 결이 같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그 예외가 싫다. 물론 내가 반대한다고 해서 와일드카드가 없어질 리는 없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한국축구는 기왕에 있는 와일드카드를 제대로 활용했을까.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도움이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리 유쾌하지는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 와일드카드가 처음 등장한 건 2002년 부산 대회 때다. 아시안게임의 와일드카드는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24세 이상 3명을 선발할 수 있다. 당시 골키퍼 이운재와 수비수 이영표, 김영철이 가세했다. 안정된 수비에 방점을 찍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란과 4강전에서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5로 졌다. 믿었던 이영표는 승부차기에서 그 유명한 ‘이동국 군대가라 슛’으로 실축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선 이천수와 김두현, 김동진이 선발됐다. 공격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천수는 주장 완장을 찼다. 여기서도 이라크와 4강에서 0-1로 패했다. 기대가 컸던 김동진은 무릎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박주영과 김정우 2명이 합류했다. 남아공에서 거둔 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 진출의 여세를 몰아가려던 선택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준결승 UAE전에서 0-1로 무릎을 꿇었다. 이전 경기까지 각각 3골과 1골을 넣었던 박주영과 김정우는 4강에서는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한국축구는 2002년부터 3개 대회 연속으로 4강에서 쓴 맛을 봤다. 특히 와일드카드가 기대만큼 역할을 해주지 못한 게 뼈아팠다.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골키퍼 김승규와 수비수 박주호, 공격수 김신욱이 선발됐다. 균형이 잡혔다. 우리는 북한을 누르고 안방에서 정상에 올랐다. 1986년 이후 28년 만에 목에 건 금메달이다. 김승규와 박주호는 기대에 부응했지만, 김신욱은 조별리그에서 당한 정강이 부상으로 4강까지 결장하다가 결승에서 연장 후반에 투입됐다.

이번에 우리는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남자축구 2연패를 노린다. 멤버도 쟁쟁하다. 와일드카드는 러시아월드컵에서 활약했던 공격수 손흥민(토트넘)과 골키퍼 조현우(대구), 그리고 황의조(감바 오사카)다. 최전방과 최후방에 비장의 카드를 꺼낸 그림이다. 우승을 위해 이들이 해줘야할 몫이 크다.

동남아에서 국제대회가 열릴 때면 항상 나오는 우려는 환경적인 요소다. 날씨와 잔디, 숙박시설의 불리함을 극복해야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런 게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큰 걸림돌이 되곤 했다. 그래서 우승 변수가 늘어난다. 게다가 손흥민은 13일 현지에서 합류하기 때문에 팀워크가 걱정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살이라도 더 많고, 경험이 풍부한 와일드카드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줘야한다. 그게 와일드카드의 진짜 역할이다.

손흥민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다. 이번 대회에서 그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황의조는 엔트리 선발 때 논란이 컸다. 감독과의 의리가 아니라 실력으로 뽑혔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한다. 월드컵으로 뜬 조현우는 월드컵 이상의 활약이 필요하다.

3명의 와일드카드는 운명 공동체다. 이들은 모두 병역 미필이다. 이번에 우승해야 병역특례를 받는다. 소속팀에서 중단 없이 프로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시안게임은 없고 병역문제만 부각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정상을 밟는 길밖엔 없다.

한국 남자축구는 역대 17번의 아시안게임에서 4번 우승했다. 1970년엔 버마와 공동우승, 1978년엔 북한과 공동우승, 그리고 1986년과 2014년엔 홈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제 원정에서 단독으로 우승하는 일만 남았다. 이번 전력이라면 원정 대회 단독 우승도 가능하리라는 전망이다. 와일드카드 덕분에 통산 5번째 우승을 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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