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의 이병헌(유진 초이). 사진제공|화앤담픽쳐스
●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 (7월28일 7회) - 뜻도 모르고 ‘러브’를 하자는 애신의 제의에 불타는 복수심과 애신을 향한 사랑으로.
● “그렇게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려고 그랬나보오.” (8월12일 12회) - 더 이상 나란히 걸을 수 없다는 걸 알고 헤어졌지만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것을 좋아하며.
● “어제는 귀하가 내 삶에 없었는데 오늘 있소. 그걸로 됐소.” (8월12일 12회) - 애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총을 가르쳐주겠다는 이유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입찬소리는 하는 게 아니라 했다. 30∼40대 여성시청자라면 누구나 장담했을 거다. 그에게 절대 설레지 않을 거라고! 스무 살 차이 나는 ‘아기씨’ 김태리와의 부조화, 게다가 로맨스는 생각만 해도 소름끼쳤다. 하지만 그런 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해병대 장교 유진 초이는 너무나도 근사했다. 단 한번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자신감은 매력적인 남자의 필수덕목. 미국과 일본의 외교 분쟁을 넘어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에서도 그는 한 치 망설임이 없다. 강인한 눈빛과 중저음 목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까지 지녔다.
“목소리가 좋고, 인물이 좋고, 똑똑하고”라는 극중 대사처럼 그는 모든 걸 갖췄다. 영문, 일문, 한문은 되는데 딱 하나 언문(諺文)을 떼지 못해 사랑하는 여인이 건넨 서신 하나 읽지 못하는 것은 애교 수준. 허나 이 역시 똑똑한 두뇌와 눈치 백단의 기술로 어느 정도 닿소리와 홀소리를 익히고 ‘연서’를 쓰는 로맨티시스트다.
늘 조용하고 무겁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차갑지만 언제나 옳은 길을 걷는 그가 ‘러브’를 하자는데 마다 할 여자가 있을까. 때문에 ‘총보다 강하고 그보다 위험하며 그보다 뜨거운 것’에 고매한 ‘아기씨’도 ‘불꽃 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사랑 앞에서는 가끔씩 ‘바보’가 된다. 자유분방한 ‘미국인 나리’지만 외모는 영락없는 조선인이라, “보호요” “나를 걱정하는 거요” “질투의 끝자락”이라며 넌지시 사랑을 고백한다. 서툰 고백이라도 직설법보다는 은유가 먹히는 법이다. 한때 “일자무식”이라는 핍박을 받았을 때도 “난 조선의 노비였다”는 고백에도 그는 당당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